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음 느낌 그대로 Apr 11. 2024

독서 모임 ① : 진행자의 역할

연초부터 시작한 독서 모임의 운영이 꽤 잘 되고 있다. 처음엔 참여자 모집에서 애를 먹었었는데, 이제는 많아진 참여자를 수용할 장소를 찾기가 힘들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다 보니 취미 영역에 있어야 할 독서 모임이 자꾸 내 삶을 침범하고 있다. 아무래도 마음이 맞는 참여자만 모아 소규모로 모임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


2016년부터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참여자들 중 한 명으로 살았다. 작년에 모임 진행자를 해보고 나서부터는 참여자보다 진행자가 훠얼씬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는 쭉 진행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같이 모임 하는 분으로부터 모임 진행이 별 거 있냐는 듯한 말을 들었다. (공격적인 어조가 아니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생각과는 달리, 모임 진행자는 별 거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독서 모임의 성패는 순전히 진행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진행자가 누구에게 마이크(발언권)를 주고, 언제 마이크(발언권)를 뺏을지 일일이 결정해야 한다. 모임의 분위기가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감지해야 한다. 오래 모임을 진행했어도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난감한 문제다.


독서 모임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혹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독서 모임에 온다. 하지만 내가 진행하는 모임에서 나는 오로지 책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책에 쏟는 편이다. 그런데 독서 모임을 처음 나온 사람들이 하는 실수 아닌 실수가 있다. 말을 어디에서 끊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 나와 오래 한 참여자들은 대개 짧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당히 말해야 다른 사람들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듣는 데에 사용된다. 분위기를 잘 모르는, 처음 온 참여자는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진행자는 (불편을 무릅쓰고서라도) 마이크를 뺏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임의 분위기가 처지게 된다.

독서 모임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에게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들으러 나왔어요."

이건 (귀여운) 변명에 가깝다. 독서 모임에 들으러 나오는 사람은 없다. 있다고? 그럴 리가. 그렇담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진행자가 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해서, 모임을 진행하는 내내 아무런 말도 시키지 않았다고 해보자. 이른바 병풍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과연 두 시간 내내 입 다물고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없다. 그냥 둘러대는 말이, '들으러 왔어요.'다. 그렇기 때문에 모임의 진행자는 그러냐, 해놓고서 난이도가 낮은 질문을 골라 처음 나온 사람들의 말문을 열어줘야 한다. 처음 온 사람들이 모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두 시간 내내 깨어 있어야 하는 게 진행자다. 이걸 아무나 할 수 있다고?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이 필요하다. 눈치도 필수다.


독서 모임이 본격적으로 재밌어지는 타이밍이 있다. 마음이 잘 맞는 참여자가 최소 3명 이상일 때다. 이 사람들은 모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진행자로서 이 사람들만큼 고마운 사람도 없다. 이 사람들은 진행자를 배려한다. 참여 인원이 많을 때는 말 수를 조절하려 한다. 다른 사람들도 말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잡은 물고기라고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진행자는 이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진행자와 그 사람들 간의 유대가 깊을수록, 처음 온 사람들은 배타적 감정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서 이런 질문이다.

"저번 주에 이런저런 이야기한 거 너무 재밌었어요."

저번 주에 오지 않았던 참여자는 소외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기존 참여자들 간의 유대를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진행자는 우리끼리만 아는 내용을 적당한 수준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모임을 진행할 때, 나는 소위 '두뇌 풀가동' 상태로 두 시간을 유지한다. 처음 온 사람도 챙겨야 하고, 기존 참여자들도 충분히 말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 진행자를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을지라도 제대로 하기는 힘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칭찬받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