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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be Lee Feb 22. 2019

도쿄는 맑음.

나에게 도쿄는 언제나 맑음.


초등학교 4학년 때 김민철이라는 친구가 일본에서 전학을 왔었다. 그 친구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쭈욱 일본에서 살았다고 했으며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다. 민철이는 내 앞에 앉았었는데 책가방부터 숟가락 세트와 필기류까지 - 모든 것이 일제였다. 민철이가 신세계를 열어준 건 점심시간 때였는데 갑자기 가방에서 약 봉투 같은 조그마한 봉지를 꺼내더니 그것을 뜯고 바로 밥에 뿌리는 것을 보았다. 정말 맛이 없어 보였는데 민철이가 너무 맛있게 먹길래 그것이 뭐냐 -라고 물었고 민철이는 '후리카키'라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밥에 뿌려서 먹는 건데 맛있으니 너도 집에 가서 한번 뿌려먹어 봐라며 나에게 그 후리카키가 담겨있는 작은 봉투를 주었다.


그 봉투에는 만화 캐릭터인 '도라에몽이' 그려져 있었으며 일본말이 굉장히 재치 있게 여기저기 박혀있었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일 본 것에 관한 환상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집에 가서 바로 밥 한 공기를 퍼서 후리카키룰 뿌리고 한 숟갈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엄마한테 나는 이것을 매일매일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수소문 끝에 남대문시장에 일본의 물건들을 파는 수입매장에서 이런 것들을 구입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 후로 엄마랑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남대문 시장에 갔었다.


민철이네 집에는 장난감부터 모든 것이 일제였다.

그 시절 민철이는 일본의 장난감들 건담, 미니카, 만화 캐릭터들의 피겨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서 민철이는 대장 아닌 대장이 되었다. 은근히 소심한 민철이는 그렇게 큰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친한 친구들 몇 명만 자기 집에 항상 초대했는데 그게 바로 나와 승훈이었다. 이렇게 셋은 항상 민철이에 집에 방과 후 모여서 민철이의 물건을 구경하며 가지고 노는 큰 재미가 있었었다.


자연스럽게 옷에 관심을 가지고 운동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중학교 때는 일본 패션 잡지를 모으는 게 큰 취미였다. 그렇게 일본은 내가 동경하고 좋아하는 서브컬처에 관한 정보와 볼거리가 항상 가득했으며 그런 것들이 조금 부족했던 한국의 중학생인 나는 어디론가 꼭 가고 싶었다. 결국 미국 유학길에 나는 오르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서브컬처를 정말 많이 보고 느끼며 나의 십 대를 미국에서 보내었다.


일본의 장인정신과 문화 하나를 정말 잘 간직하며 이어가는 전통 그리고 그들만의 고집을 나는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 그렇게 2013년도에 처음으로 혼자 도쿄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과 길거리에 수많은 멋쟁이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의 감동. 앉아서 두세 시간은 그냥 사람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일본은 나의 어렸을 때의 환상과 성인이 되서의 관심사까지 모두 충족시켜주는 나만의 판타지랜드였다.


결혼 후에 처음으로 다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역시 같았다.

다만 예전에 비해 멋쟁이들이 조금 줄었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멋을 부리는 사람들은 한국에 더 많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본은 언제나 나의 어린 시절의 환상을 다시 채워주고 생각하게 하며 내가 좋아하고 열광하며 십 대와 이십 대의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은 많은 요소들을 아직까지도 유지하며 잘 간직하고 있어서 나에게 도쿄는 언제나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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