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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Dec 12. 2020

그래도 희망하지 않을 순 없기에

'인간 불신'사회의 미래

 “희망의 ‘희’는 ‘드물 희’지. 그러니까 희망은 희미하고 드문 무엇을 바라는 거야.”

황경신 작가의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라는 책 속의 구절이다. 너무 자연스러워 알아채지 못한 사람들(나만 그러한 게 아니라 믿고 싶다)을 위해 말하자면, 사실 희망이라는 단어에는 ‘바랄 희’를 쓴다. 바라고 바란다는 뜻. 하지만 과연 누가 저 희망의 희소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적합하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희망이란 과거의 맑은 하늘도 아닌, 오늘날의 미세먼지 가득한 밤하늘 속에서도 사람들이 굳이굳이 별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과 같은 것 아닐까.


 우리는 당연한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12월 25일엔 반드시 크리스마스가 온다는 사실을 아는데 굳이 바라고 바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오는 것들엔 인내심만이 필요할 뿐이지. 반면, 사람들이 바라고, 희망하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이유는 그것을 현재 손 안에 쥘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 2월이 되자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 재난이 시작되었다. 이 재난은 사람들이 이때껏 손 안에 있을 거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희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질이 나쁘다. 3월이면 학교에 가기 시작하고, 오전 9시까지 출근하는 것. 기껏 공들인 화장이 마스크로 무너지지 않는 것. 친구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디저트를 먹으러 카페에 가서 매일 다를 것 없는 삶을 주제로 몇 시간씩이나 대화를 나누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애정을 나누는 일들. 작년까지만 해도, 아니 1월까지만 해도 전세계의 누구도 이러한 당연한 일상들이 간절해질 줄 몰랐다.


 이 재난은 결국 사람들 간의 불신을 초래했다. 지하철에서 내 옆에 앉은 사람이 겉으로는 귀에 에어팟을 꽂고, 유튜브를 보며, 슬쩍 옆 사람의 핸드폰을 한번씩 들여다보는 그저 평범한 사람 A로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바이러스를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대중교통에선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어차피 우리는 원래도 귀를 막고 서로의 목적지로 향하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대중교통만이 아닌 일상에서, 그리고 전인류의 관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자. 폭력을 혐오하는 나조차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폭력적인 마음이 마구 생겨버릴 지경이다. 또한 1시간 반을 기다려도 공적 마스크 2장을 구매할 수 없을 때가 생겼고, 마스크 판매 관련한 사기 행각들도 적지 않다. 지구인들은 이제 노란 피부톤의 사람들을 ‘바이러스 보균자’로 여기며 폭언과 폭행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뉴스와 SNS에선 아시아인들이 바이러스의 원인이라 말하는 동시에, 아시아인들을 향한 인종차별을 멈춰달라 말한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더 최악을 예상하기 힘들지만 역시나 ‘설마’는 오늘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2020년 3월 16일, ‘박사방’을 운영한 25세의 남성 조주빈이 체포되고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진다. n번방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을 상대로 협박해 찍은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을 통해 거래한 사건들을 일컫는다. 가입자가 26만명에 육박하고, 검거된 공범자들의 나이대가 20대 초중반의 남성들이라는 보도를 접한 20대 여성으로서 나는 사람을 신뢰하기 힘들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신뢰하고 싶지 않아졌다.


 겨우 이 정도로 인간 불신에 빠지는 건 과장된 거 아니냐고 스스로에게도 물어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공화장실에 가면 벽에 난 구멍들이 휴지로 막혀 있음에도 나는 볼일 보는 것이 여전히 불안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뚫을 정도의 뉴스 보도와 전국민의 대대적인 청원이 없었으면 n번방 박사의 신상이 공개될 일도 없었을 것을 한탄하며, 앞으로 새로 만날 사람은 물론, 수년간 알고 지냈던 지인들마저 n번방 사건의 공범이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더불어 이제 해외여행을 갈 때 피부가 좀 노랗다는 이유로 길가다 차별 발언은 기본이고, 거기에 폭행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나는 묻고 싶다. 이 사회에서 희망은 어디 있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윤리와 철학을 주제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굿 플레이스’에서 인간은 악한 존재들이라 믿는 인물이 말한다. “지금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전쟁, 살인, 그리고 요가 팬츠는 400달러 짜리를 입으면서 애들 예방접종은 안 해. 애플 직원들은 충전 케이블을 또 바꾸고. 대체 어디서 그런 희망이 생기는 건데? 인간은 구할 가치가 있다는 그런 어이없는 희망.”

 여기에 인간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인물은 대답한다. “우린 몇달을 논쟁해 왔잖아. 인간이 착한가, 나쁜가?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어. 정말 중요한 건 인간이 ‘착한지 나쁜지’가 아니야. 인간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고 하는가’지. 내 희망이 어디서 생기는지 물었지? 그게 내 대답이야.”


 그렇게 허무주의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게도 답이 내려졌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단순히 바라기만 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고, 바로잡으며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현재의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현실 역시 인간이 투쟁해 온 역사의 산물이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인정하자. 우리는 ‘n번방 박사’ 조주빈의 신상을 밝혀냈고,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법 개정을 촉구하도록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한국식 대처를 인정받아 진단 키트를 수출하게 되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두고 한탄하며 원망만 했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결과들이다. 그리고 거기엔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한 미국 작가(앤 라모트)의 말마따나 인간이 그동안 이룬 성과들은 바탕이 어두웠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역사책 속의 인간들에게든, 2020년에 살아 숨쉬는 우리에게든, 현실은 어둡고 습하고 축축 처진다. 하지만 어쩌면 과거의 사람들의 희망으로 이루어졌을 나는 역시, 그래도 희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조차도 어제의 나와는 달라지려 노력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우리의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을 거라는 것에 나의 모든 희망과 노력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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