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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Apr 06. 2020

전지적 유교 차녀 시점 육성(聖)일기

부모를 키우는 딸

 ‘육아일기’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관찰한 기록들이죠. 저는 반대로 자식 입장에서 부모를 관찰하는 ‘육성(聖)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학기는 끝냈지만 졸업은 안 한, 25살의 애매한 대학생인 저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성인으로서 부모님과 한 집에 사는 건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에요.


 전 특히 아빠와 정말 지독하게 싸웁니다. 지독하게요. 유교 사회 속 가장의 역할만을 바라보는 아빠를 보며 온전히 사랑하기엔, 밀레니얼 세대로서 용납할 수 없는 점들이 정말 많거든요. 점점 불만이 쌓인 저는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서서히 거리가 멀어졌고, 한 번 싸우면 이성의 끈을 놓고 서로에게 상처 주곤 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도덕’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칠 만큼 유교 사회인 걸 떠나서,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고 싶은 딸이 어디 있겠어요. (물론 폭언 및 폭행을 일삼거나, 알코올 및 도박 중독자 등의 몰상식한 경우들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흉만 남는 싸움을 하는 대신에 아빠에 대한 불만을 적어보기로 했어요. 글로 객관적으로 정리하다 보면 아빠가 조금이라도 제 말에 설득되지 않을까 해서요.


 폭군에게 간언 하는 신하가 상소문을 준비하듯,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아빠의 단점들과 바라는 점들을 적어나갔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물론 단점들도 많지만) 생각보다 아빠가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던 거예요. 아빠의 호의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놓고, 막상 제가 베푼 기억은 많이 없더라구요.





 부모님이 항상 옳고 무조건적으로 효도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한동안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라는 문장이 모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만큼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 서툴고 실수가 많다는 뜻인데, 사실 그건 자식들도 마찬가지예요. 자식 입장에서도 부모를 대하는 게 처음일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 모두 서로가 처음이라 행하는 실수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철없을 시절에야 나이가 어리니까, 자식이니까, 부모님이 저한테 다가오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저도 부모님께 한 발짝씩 내디뎌야 한다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집에서 퉁명스럽기만 하던 딸이 웃으며 건네는 한마디 말에 얼마나 좋아하시는지가 이젠 눈에 보이지 뭐예요.


 이 모든 게 부모님께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연하게 내 옆에 있을 존재들이 아니라, 노력해서 ‘관계’를 맺어가야 할 사람들로 인식하는 것. 이를 위해 전 ‘육성일기’를 쓰기로 했어요.


이젠 제가 부모님을 키워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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