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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Apr 13. 2020

아빠가 떡국을 태웠습니다

 아빠가 오늘 떡국을 태웠습니다. 방 밖으로 아빠가 ‘이런!!!’이라고 외치며 부엌으로 달려가시길래 놀라서 방 문을 열었더니 탄내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사실 아빠가 떡국을 태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몇 주 전에도 탄 떡국이 냄비에 들러붙어있어, ‘본인이 태웠으면 본인이 처리해야 되는 거 아냐?’라고 제가 투덜거리며 설거지한 기억이 납니다.(알고 보니 탄 떡국을 물에 불려놓고 있던 상황) 그때는 몰랐는데 최근 들어 건망증이 심해져서 떡국을 불 위에 올려놓은 걸 까먹어서 자꾸 태워버린다고 하시더라고요.


 평소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극도로 꺼리시기도 하고, 은근히 동안인 외모 때문에 저는 아빠가 어느새 환갑이라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아요. 아빠가 떡국을 태웠다며 잔뜩 자책하고 스스로한테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아빠가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열심히 달래봐도, 아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스스로가 답답하고 무서우신 듯 했어요.


 “요즘 건망증 때문에 미치겠다. 진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되는데..”라고 말하면서 또 탄 떡국을 아깝다고 먹겠다는 거예요. 그 미련한 모습이 보기 싫어서 떡국을 버리고, 바로 계란을 부쳐서 햇반, 김, 김치랑 같이 꺼내드렸어요. 겨우 계란 두 장을 부치고, 원래 있던 반찬들을 몇 가지 꺼내놓기만 하는 건데도 아빠한테 이렇게 차려드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떡국 탄 매캐한 냄새가 코가 아니라 제 마음을 찔렀는지 자꾸 가슴이 따끔거렸습니다.


 참 이상하죠. 나이가 들면 건망증도 심해지고 덤벙거리는 게 당연한 일인데, 내 아빠의 약한 모습을 보니, 괜히 일어나선 안될 일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어서 그냥 꼬옥 안아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왜 부모님도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요? 왜 사람이라 완벽하지 않아서 자식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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