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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Apr 20. 2020

가족애는 경제력에 비례한다?

우리가 힘들 때 웃는 이유

 며칠 전, “엄마, 돈이 없으면 역시 불행한 걸까?”라는 제 질문에, 엄마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연하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결혼하기 전엔 중소기업의 경리였고, 결혼한 이후론 전업주부가 된 엄마는 환갑에 다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 돈을 꽤 크게 만져봤다는 엄마의 자랑은 엄마의 옷장에 자리 잡은 무스탕 코트로 증명됩니다. 그 시절, 유명 연예인(이름은 기억 안 남)이 입었고, 한국에서 딱 3장만 판매됐다는 그 코트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우아하고 고급스러워요.


 결혼한 뒤로 평범한 중산층이 된 듯했고, 안정적이지 않은 아빠의 직업 때문에 불안한 적이 많았지만, 한번 일을 성사시키면 ‘크게 한탕’하는 덕분에 굶을 걱정 없이 분당의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고, 자식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허세가 엄마를 이루고 있었고, 경제력이 받쳐줄 땐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 근본 있는 자신감이었지요.


 하지만 건설 쪽에서 일하는 아빠의 직업은 IMF는 이겨냈지만, 경기가 침체할수록 빙하가 녹아가듯이, 천천히 가라앉았어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부모님은 점점 여유가 없어졌으며, 언성을 높여 싸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돈이 얽혀있는 싸움은 단순한 감정싸움보다 더 추하고, 절박하며, 가슴에 상처를 남기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생채기를 낸 마음은 쉽게 낫지 않고 흉터만 더해갔습니다.


 환갑이 된 엄마는 경제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몇십 년 동안 일을 하지 않은 엄마가 구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게도 현저히 적었어요. 그래서 엄마는 61년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다른 집 ‘이모님’이 되었습니다.

 

 원래도 관절이니, 신경이니 아픈 구석이 많던 엄마는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며 점점 병원에 다니는 횟수가 늘었어요.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은 뒤 바로 일하러 갔고, 관절 사이에 생긴 염증은 종종 엄마를 앓아눕게 만들었어요. 열이 펄펄 나는 엄마의 머리에 물수건을 적셔가며 간호해준 건 25년 인생 처음이라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부장제의 폐해를 말할 때엔 주로 목소리 낼 권리를 어느 정도 포기한 전업 주부가 등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집안의 모든 경제력을 책임지는 가장이 조용히 숨어있습니다. 힘든 티,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센 척하고 있는 이들은, 사실 경제력이 의심받을 때 가장 흔들리는 존재들이에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질수록, 아빠의 속은 타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버스 한 정거장의 거리도 타고 있기 힘들어 뛰쳐 내릴 때가 생겼고, 밤이면 밤마다 집 앞으로 나가 답답한 속을 달랬습니다.


 이렇게 힘들던 아빠는 엄마가 일을 나가며 점점 병이 나자, 그 걱정을 분노로 표출하기 시작했어요.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쉬지 않고 일하니까 차도가 없는 게 아니냐며 엄마를 다그쳤고, 엄마는 큰돈은 아니지만 스스로 버는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라는 아빠에게 실망하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결국 엄마는 더이상 일하는 건 무리라는 병원의 진단 하에, 일을 그만두시고 병원에서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더욱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엄마의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시큰합니다.




 저는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믿지 않은 지 꽤 됐어요. 하지만 대한민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팬데믹에 뭉쳐서 이겨나가는 것처럼, 힘들 때일수록 ‘내가 더 잘해보자’, ‘같이 이겨보자’라는 반동의 힘이 생기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상처 입었다고 불평하기에만 급급했는데, 결국 곪고 진물만 나더라고요. 차라리 드러내서 좋은 말을 하는 게 더 빨리 낫는 방법인 걸 최근에야 깨닫는 중이에요.


 오늘 하루가 힘들었어도 웃으며 딱 말 한마디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입은 옷 잘 어울린다.”같은 말이요.

물론 안 어울린다면 안 어울린다고 놀리며 웃어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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