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이사 온 집 바로 뒤에는 뒷산이 있습니다. 원래도 매일같이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시던 아빠는 뒷산의 존재를 굉장히 기꺼워하세요.
최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순이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광합성을 전혀 하지 않는 저를 보시더니 같이 등산 가자며 몇 번이나 꼬셨어요. 평소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텐데, 일기를 쓰며 아빠한테 좀 더 너그러워진 저는 같이 등산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겨우 뒷산 가는 거에 거창하게 차려입기 창피했던 저는 대충 긴 외투를 걸쳤는데, 아빠는 ‘불편해서 긴 건 안된다’, ‘너무 얇으면 추워서 안된다’며 계속 갈아입게 했어요. 잔소리하지 말라고 짜증 내는 대신, 아빠 옷장에서 전국의 5-60대 아버님들 옷장에 흔히 걸려있을 법한 형광색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습니다.
결국 아빠 말이 맞았습니다. 뒷산은 ‘겨우’ 뒷산 정도가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가파른 산을 영차영차 간신히 아빠를 따라 오르고 있었는데 잊고 있던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어렸을 땐 아빠랑 등산하는 걸 꽤 좋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속도가 빨라 앞서 나가는 아빠의 뒤를 정신없이 따르다 보면 금세 정상에 도착하고는 했거든요. 정상은 못 갈지라도 아빠가 가는 만큼은 가고 말겠다는 목표가 명확해서 등산이 지겹지 않았어요. 게다가 아빠가 밟고 지나간 자리를 똑같이 밟으면 미끄러질 위험도 없이 안전하고요.
거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빠의 뒷모습이 여전히 제 앞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머리가 좀 더 듬성듬성해지고, 옛날부터 쓰시던 등산용 모자가 좀 더 땀에 절었다는 걸 빼면요.
아무래도 매일 등산하는 아빠에 비해 아마추어이다 보니, 제가 따라가기 벅차 헉헉거리며 앞만 보는 반면, 아빠는 그 와중에 다양한 걸 시야에 담으셨어요. 강풍에 쓰러지던 나무를 옆 나무가 받쳐줘서 같이 자라나는 모습, 새싹이 움트는 모습, 등산객들이 등치기를 하도 하는 바람에 닳은 나무껍질들은 아빠가 말을 해줘야 겨우 제 시야에 담겼습니다. 매일 같은 산에 오르는 게 지겹지 않냐는 제 물음에 아빠는 시야에 잡히는 풍경이 변해서 괜찮다고 말하며 꽃 냄새를 맡으셨어요. 제가 따라 맡아보려고 하니 "아, 그거 냄새 안 나더라." 라며 멋쩍게 웃으시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아빠는 제 생각보다 시야가 넓고 감성적인 사람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아빠가 손바닥으로 치고 지나간 나무를 괜히 따라서 쳐보기도 하고, 나무의 크기 등을 자세히 둘러봤어요. 바람이 나무 사이사이를 스치며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어보고요. 힘들기만 하던 등산이 다채로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등산의 장점은 아름다운 풍경, 신선한 공기, 성취감 등 많지만, 그중에도 등산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이 다져 놓은 길을 그대로 오르다 보면 정상이 나온다는 점인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가는 평범한 길 외에,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는 꿈을 꿨는데 그건 그것 나름대로 스트레스받는 일이었거든요. 생각을 비우고 열심히 오르기만 하면 목표점에 다다랐을 때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요. 성취감을 느끼기 정말 쉬운 방법이랄까요.
언젠가는 산을 오르는 아빠의 속도가 저보다 느려지는 날이 오겠죠. 산을 오르지 못하실 날도요. 그때가 되면 저는 무엇을 바라보며 산을 올라야 할지 벌써 막막해져요. 산의 정순한 공기가 아빠를 최대한 붙들어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