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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쟝 몽 Jan 01. 2019

글씨가 좋았어요.

(1)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 "캘리그라피?  그게 뭐야?"

이유 있는 시작

아버지는 '글씨 세대'였다. 타이핑보다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자를 쓰는 일이 더 많았던, 그 옛날의 삶을 더 오래 사셨다. 오래 쓰셨던 만큼 필체가 좋으셨다. 늦둥이였던 나는 그 글씨를 보며 자랐다. 일찍 태어났더라면 조금 덜 완성된 그의 필체를 보지 않았을까? 


낙서를 자주 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림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미술시간에 간간히 터득한 게 다였다. 그림을 그리던 공부를 하던, 언제나 낙서는 빠뜨리지 않았다. 아버지 글씨를 자주 봐와서 그런지, 아버지 필체를 흉내 내며 낙서를 쓰는 일이 많았다. 흔히 얘기해 '어른 글씨'라고 불리던 필체였다. 자주 쓰다 보니 친구들 눈에 띄었고, 가정통신문에 부모님 사인을 빼먹은 친구들이 찾아와 대신 써달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흉내내기는 통했던 것이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글씨 사랑은 남달랐다.


학업에 집중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수능을 마쳐 비로소 긴 공백의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 건축학과와 경영학과에 지원했는데, 마음은 건축학과에 더 기울었었다. (슬프지만 결국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건축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에 건축 용어를 공부해보려 했다. 아무래도 시간 많은 때였으니 뭐든 해보고 싶었다. 막상 공부를 하려고 관련 자료를 찾았는데 한자가 엄청 많았다.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레 한자를 공부하고자 마음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자를 공부했다기보다, '한자 쓰기'에 더 집중했었다. 한자를 쓰다 보니 낙서가 늘었다. 급기야 한자를 그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좌우명을 한자로 그렸다

그 생각을 가진 후에 우연히 문구점에서 붓펜이란 도구를 발견했던 게 내 글씨 인생의 제대로 된 시작점이다. 그 당시 조그마한 문구점에 있던 붓펜은 모나미 한 종류였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붓펜으로 한자와 한글을 끄적이며 보냈다. 그렇게 탈락과 합격의 소식 끝에 입학했다. 또 그렇게 2015년이 되었다.


캘리그라피? 그게 뭐야?


'캘리그라피(Calligraphy)'란 용어를 알게 된 건 이때였다. 신입생 신분의 대학 생활은 만남으로 넘쳐났다. 만남 이후엔 대화가 흘렀고, 나를 소개하는 일이 잦았다. 남달랐던 글씨 사랑을 자연스레 표현했다.


"글씨를 이렇게 쓰는 게 취미예요."


캘리그라피란 단어조차 몰랐고 이러한 분야조차 문외한이었기에,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게 전부였다. 취미는 확실한데 설명이 모호했던 게 싫었다.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명확한 용어를 알게 되었다. 사실, 당시엔 캘리그라피보단 'POP(Point of Purchase Advertising)'가 더 친숙한 분야였다. 각종 매장이나 가게들의 메뉴판들이 대부분 POP로 이뤄진 글씨들이었기에, 사람들에겐 더 알려졌었다.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하고 있다고 얘기해도, 그게 뭐냐는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하고 있는 취미를 하나의 용어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만, 캘리그라피가 뭐냐는 질문에는 항상 이런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그들만의 리그랄까, 캘리그라피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많았다. 대중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알고 나니 보인다는 말을 새삼스레 느끼는 때였다. 몇 년씩이나 해왔던 분들부터 나와 같이 금방 시작한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많은 SNS를 통해 다른 분들과 소통하면서, 글씨에 대해 알게 되고 점점 더 재미를 느꼈다. 캘리그라피를 누군가한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독학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아무거나 쓰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작가들이 있고, 수업을 따로 진행하는 분들이 많다. 심지어 관련한 서비스 플랫폼도 마구 생겨나고 있어, 배우기에는 최고의 상태이다. 지금처럼 수업이 발전했더라면, 나 역시도 수업을 들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배웠다면 지금의 글씨를 쓰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한다. 아무래도 시작이 중요하니 말이다.


글을 맺으며


독학으로 밀고 보자던 나에게 2015년은 외로운 싸움이었고, 스스로도 발전이 없었다. 단지 글씨가 좋았기에 상관이 없었다. 약 1년 간의 그 외로운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연말엔 귀중한 존재를 만났다. 당시에 뜻밖의 기회로 학생회를 했는데, 신입생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인터넷 카페 글에서 캘리그라피가 취미라고 하는 후배를 보게 되었다. 앞서 글씨 인생의 시작점을 문구점에서 찾게 되었다고 얘기했다면, 이 친구는 내게 걸음마를 떼게 만들어 줬다고 말할 수 있다. 짧은 글씨 생활 중에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인연이어서, 앞으로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글씨를 쓰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최대한 담백하게 적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어쩌면 단순히 2015년도까지의 일을 썼을 뿐이니까. 캘리그라피에 대한 글을 적는다면 처음 글은 글씨를 쓰게 된 배경을 얘기하고 싶었다. 첫 걸음마는 누구나 다르니까. 가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떻게 시작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내가 묻곤 한다. '취미로 좋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옆에서 하는 거 보다가 재밌어 보여서 같이 해요.' 등의 얘기를 하거나, '서예를 원래 썼는데, 캘리그라피로 전향했어요.' 하는 분들도 있다. 수많은 글씨가 있듯, 수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는 독자 분들이 나의 질문에 잠시나마 옛 추억을 떠올렸으면 한다.


"글씨,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글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김가영 작가님과 브런치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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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몽 씀.

e-mail: jjangs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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