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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Aug 26. 2020

더 이상 꺾은 꽃을 사지 않는 이유

멈추지 않는 푸른 생명력

요즘 나에게는 새로운 취미 하나가 더 생겼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일이다. 내 회사 책상 선반에는 화분 네 개가 나란히 줄 지어 서있다. 아이비 하나, 필레아 페페가 셋.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푸른 이 존재들을 보고 있으면 아래에서 위로, 뿌리에서 잎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생명력이 전해진다.




작년 이맘때쯤, 아이비 화분 하나를 얻었다.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받아 들고서는 책상 한 귀퉁이 올려두었다. 아이비를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열흘에 한 번쯤 수돗물을 떠다 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새로 돋은 순을 발견했다. 물만 주고 한 구석에 대충 던져 놓았는데 어느새 자라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식물의 생명력을 처음으로 인지한 그 순간부터 화분을 들여다보는 것이 내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다. 한 번 새순이 돋고 나면 가녀린 아기 잎이 싱그러운 연둣빛을 자랑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다 또 잠깐 잊고 지내다 보면 아기 새끼손톱 만하던 새 잎이 어느새 내 엄지손톱 보다도 자라 있다. 잎이 영글수록 색은 더 짙어지고 넓었던 화분은 이내 풍성하게 채워진다. 식물이 자라는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화분 안에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 같은 이 녀석들도 알고 보면 잠시도 끊김 없이 생명이 흐르고 있음을 배웠다.


아이비가 잘 자라면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올해 봄, 엄마에게서 필레아 페페 화분 하나를 얻었다. 선반 위에서 홀로 지내던 아이비에게도 친구가 생긴 셈이다. 필레아 페페 로미오이데스. 길게 늘어지는 줄기 끝에 달린 동글동글한 잎이 앙증맞은 아이다. 둥근 잎이 동전을 닮아서 외국 어디에서는 돈을 벌어다 주는 식물로도 여겨진다고 한다. 이름 한 번 거창한 이 녀석도 놀라운 생명력의 소유자다. 햇빛이 들어도 들지 않아도, 물을 많이 줘도 적게 줘도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착한 성격 덕에 식물 키우기 입문자들도 실패 없이 잘 키울 수 있다. 필레아 페페의 진짜 매력은 왕성한 번식력에서 찾을 수 있다. 조금만 자라나도 무서운 속도로 자구를 맺는다. 자구를 분리하지 않고 치렁치렁 기르면 늘어지는 멋이 있고, 작은 잎을 분리해서 따로 심으면 어느새 필레아 페페 대가족이 만들어진다.


자구 분리 후 가족을 이룬 필레아페페


필레아 페페를 데려온 지 한 달쯤 되어 내 화분에도 새끼 페페 두 마리(?)가 열렸다. 어느 정도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자구를 분리해 유리병에다 한 열흘쯤 물꽂이를 해 두었다. 바로 이 지점, 물 꽂이에서 필레아 페페는 감탄할 만한 생명력을 또 한 번 보여준다. 물에 일주일만 담가 놓아도 댕강 잘린 꽁지 아래로 흰 수염 같은 가느다란 줄기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한 번쯤 병 속 물을 갈아주며 뿌리가 적당히 자라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크기별로 소형 토분과 중형 토분에 각각 심어주었다. 마사토를 먼저 얕게 깔고 그 위에 상토를 부어준 다음, 자구를 흙 속에 조심히 묻고 토닥토닥 손가락으로 눌러 준다. 마지막으로 물을 줄 때 상토가 둥둥 떠다니며 소실되지 않도록 마사토를 다시 한번 깔아주면 끝! 그렇게 심은 언니 페페, 아기 페페를 엄마 페페 옆에 나란히 세워두니,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물꽂이 후 예쁘게 자라난 뿌리


식물을 키우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꺾은 꽃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따금씩 한아름 꽃다발을 사들고 와 기쁨을 주던 연인에게도 이제 절화(切花)는 사양하겠다고 단단히 일렀다. 내게도 이름 붙은 기념일마다 절화 꽃다발을 장식처럼 곁들이던 때가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연인, 가족,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다발 꽃을 선물했다. 내가 다닌 대학교 정문 앞 굴다리 너머에는 오래된 노점 꽃가게가 있었고, 나는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그 길에 들어서면 늘 꽃가게 앞을 서성였다. 생화를 꺾어 만든 다발은 수만 원은 훌쩍 넘을 만큼 비싸지만, 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온갖 색이 한 곳에 모인 아름다움에 눈이 즐거웠고, 그 다발에 코를 파묻고 숨을 몰아 들이킬 때 느껴지는 아찔한 향기가 좋았다. 그런가 하면 또 어느 날인가부터는 말린 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말린 꽃다발, 말린 꽃을 붙여 만든 엽서, 하물며 '말린 꽃 비누'나 '생화 네일'이라는 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 연인만 하더라도 나에게 천일홍, 백일홍이며 목화, 스타치스 온갖 종류의 말린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참 폭력적인 사랑을 했던 것 같다. 좋아한다고 말하며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식물의 생명력을 빼앗고, 그 식물이 점점 시들어갈 때에는 생명이 꺼져가는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내 즐거움이 지속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땅에서 꺾은 꽃은 1~2주 내에 시든다고 한다.  화병 속 물에 얼음이나 설탕을 조금 타거나 극소량의 표백제를 조금 넣어주면 꽃의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다고도 한다. 물론 그래 봐야 잠시 뿐, 그 꽃들이 줄기에 붙어 흙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을 때의 수명에는 비할 수가 없다. 식물의 수명은 가늠하거나 측정할 수 없다고도 하니까.


사실 고백하자면 꽃을 사는 일이 내 삶에서 조금씩 잦아든 것이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절화의 수명에 비하면 그 값이 너무 비쌌고,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나 내 연인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졌다. 꽃을 사고 싶으면 꽃 가게 앞에서 실컷 구경하고, 그 돈을 따로 저축해 맛있는 거나 사 먹자고 연인과 타협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둘 다 벌이를 해 그깟 꽃 좀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지금에 와서, 꺾은 꽃은 사지 않겠다는 다짐은 더욱 확고해졌다. 자식 같은 마음으로 각자의 식물을 기르고 있는 우리 둘은 감히 이 작고 귀한 존재에게서 생명을 빼앗는 일을 이제는 결코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애완'의 목적은 내 즐거움을 위함이고 '반려'의 의미는 가족이라는데 나와 내 연인과 우리의 반려 식물들은 정말로 한 가족이 되었나 보다.





내게 온 지 일 년 만에 여름을 맞은 아이비가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다. 힘 없이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하게 마르더니, 남은 잎마저 얼룩덜룩한 자국이 남았다. 이러다 정말 영영 죽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어 한동안은 아이비만 들여다보며 지냈다. 물이 부족한가 싶어 물을 듬뿍 줘 보기도 하고, 아이비는 물이 많은 것을 싫어한다기에 혹시 과습인가 싶어 물을 말려도 보았다. 어느 날 발견한 잎 뒤 검은 점들을 보고, '응애'라는 해충이 생겼나 보다 싶어 동네 화원에서 산 천연 살충제를 뿌려 보기도 했다. 내내 아이비를 들여다보면서 '과습 + 해충'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아이비가 병든 것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천천히 흙을 말리면서 주기적으로 해충기피제를 도포해준 결과, 서서히 마른 가지에 새 잎이 돋으며 조금씩 살아날 기미가 보인다. 이 여린 식물이 다시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과정이 그렇게나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기 전까지는 조금 더 마음을 졸여야겠지만, 아이비의 생명 불꽃이 그렇게 쉽게 꺼지지는 않음에 안도가 된다. 반려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 생명을 잃어가는 꺾인 꽃의 슬픔을 이제야 어렴풋이 느끼는 모양이다. 이제 '애완용' 절화를 즐겼던 날들은 영원히 안녕이다. 더는 생명을 빼앗으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푸른 생명이 보여주는 매일의 기적, 내가 꺾은 꽃을 더는 사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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