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에 태어난 나는 어느덧 30년의 세월을 살고 2023년에 엄마가 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할 말 다 하는 소위 '요즘 것들' MZ 직원이었는데, 아기를 낳고 나니 나보다 서른 살 어린 상전 앞에서 쩔쩔매는 게 일상이다. 내가 태어나던 30년 전만 해도 서른에 초산이면 노산 소리를 들었다는데, 지금의 나는 대학 동기들 중 가장 빨리 엄마가 되었다. 우리 애가 15개월이 되는 동안에도 친구들은 아기는커녕 대부분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내게 육아의 경험을 나눌 동지가 없다는 것. 요즘 힙하다는 감성 공간과 디자이너 브랜드를 검색하는 싱글 친구들 사이에서 타요나 폴리, 코코멜론을 논할 순 없으니, 그 간극이 참 넓다.
크기는 작지만 전투력은 최대인 이 작은 존재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그 과정을 나눌 이 없음이 못내 아쉬워 글로 쓴다. 앞으로 쓸 글들은 말하자면 육아난 중에 써 내려가는 <육아난중일기>이자 워킹맘이 쓰는 <엄마 경력 기술서>이자 때때로는 육아고발서도 되었다가 어느 야심한 밤에는 구구절절 애끓는 짝사랑 러브레터도 될 예정이다. 목표는 계속 쓰는 것. 쓸 말이 없어도 쓰고 서툴러도 쓰고 일단 쓰는 것. 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미숙한 글일지라도 이 글들을 내 아이의 시간과 함께 30년 푹 묵히면, 그땐 또 제대로 발효되어 작품 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작년 봄, 나는 엄마가 되었다. 예정일이 지나도록 출산의 기미가 없어 진통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늦은 밤. 인스타그램 웃긴 동영상을 보며 낄낄 웃다가 양수가 터졌다. 그렇게 입원한 게, 월요일 늦은 밤. 아기는 목요일 밤 11시에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금요일을 딱 한 시간 남겨두고. 수술이 끝나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금요일로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를 낳기 위해 꼬박 사흘 밤낮 몸을 틀었던 것이다. 누구나 이 정도 출산담이야 다 있겠지만은(?) 자연분만을 고집한 적이 없단 점에서 몹시 억울했다. 산모가 긍정적이고 의사의 소견에 협조적이며 건강하단 이유로 담당 의사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며 자연분만 쪽으로 강행했고, 나는 분만 속도를 당기려고 무통주사까지 맞지 못하며 자궁문이 9cm 열릴 때까지 버텼다.
"엄마, 이대로라면 자연분만 가능하겠는데? 그런데 오늘은 안될 것 같아! 내일로 넘어갈 것 같아."
담당 의사의 마지막 설득에 나는 참아왔던 화를 터트리며, 소리를 빼액 질렀다.
"아니, 안 될 것 같으면 수술하고 싶다고요! 왜 제 의사는 무시하세요? 당장 마취과 연락해 주세요!"
양수가 터진 지 72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연분만을 설득하는 의사의 모습에 무지막지하게 화가 났다. 이틀이 넘도록 금식한 탓에 기력이 너무 없었고 촉진제와 수액을 때려 넣은 탓에 온몸이 퉁퉁 부어터졌으며,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양가 부모님의 애간장을 생각하면 죄송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하루를 더 앓을 생각을 하니 다 지겨워졌다. 남들은 몇 시간도 못 하겠다고 울부짖는다는데, 내가 너무 조용히 참았나 싶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까지 와 있었다. 죽을 고비 넘겨 낳는다는 말이 이런 말이던가. 수술대에 오르며 애만 낳으면 내가 이 병원이고 의사고 다 가만 두지 않으리, 다짐을 했다. 그렇게 오른 수술대 위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스스로 달랬다.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난다. 자고 일어나면 끝난다.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꿀벌이'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꿀벌이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말로 다 못할 만큼 특별한 경험임을, 갓 태어난 내 아이를 품에 안으며 느꼈다. 출산은 나에게 화해의 경험이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많은 것들과 화해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를 바득 갈 정도로 바짝 열이 올랐던 병원과의 일들도 순식간에 잊었다. 아이가 건강한 것에 감사했다. 종종 나를 서운하게 했던 과거 기억 속 부모님과의 일화와도 화해했다. 부모님도 이렇게 부모가 되었겠지. 임신 초 엄마가 될 준비가 아직 안된 것 같다며 두려워하고 우울해하던 과거의 나와도 화해했다. 그냥 저절로 말끔하게 화해가 되었다. 선도 악도, 희도 비도 없이, 말간 흰 도화지 같은 존재가 내 품에 안기는 그 경험만으로 모든 앙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될 준비는 애초에 완성형일 수가 없다. 따뜻하고 말랑한 생명을 품에 안으면, 그제야 비로소 엄마가 될 준비는 끝난다. 이미 엄마가 되었으니까. 이미 나는 엄마니까.
엄마 된 이후로 15개월 동안 타인을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같이 놀랐다. 오늘 아침만 해도 새벽 다섯 시부터 엄마를 부르짖으며 내 단잠을 깨운 우리 아이. 그런 아이에게 짜증이 잔뜩 올라오다가도, 일어나지 않는 엄마를 깨우려 안경을 주워다가 이마 위에 올려 주는 아이를 보며 웃었다. 동시에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유예하고 인내하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남편과 단 둘이 새로 나온 영화를 보는 일, 퇴근 후에 여유로운 저녁을 보내는 일, 맛집보다는 아기 의자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일, 가깝고 편한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볼일을 보는 편안함까지도 종종 버려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기쁨과 고됨을 비교하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이 둘은 완전히 독립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우 행복한 순간에도 어깨 위에 떨칠 수 없는 고됨이 내려앉고, 몹시 지쳐서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예상치 못한 아이의 행동에 기쁨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바로 그 지점, 내가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기쁨과 고됨이 공존하는 육아의 아주 작은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