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빅뱅과 골든에이지 (2/4)
- 안티 히어로, 네이머
다시 1939년 말의 가판대로 가보자. 도시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는 그 가판대. 우리는 거리를 지나가다가 가판대에서 읽을 만한 만화가 있는지 둘러본다. 수퍼맨은 엄청 재밌었고, 배트맨은 마음 속 무언가를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그 둘을 모방한 만화들도 새로 나온 나를 사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물론 수퍼히어로라고 불리는 최신 트렌드 장르 외에도 유머나 우화나 공포 내지는 모험물 같은 장르의 만화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트렌드는 트렌드다. 코믹스 사업을 하는 회사들마다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하나 이상은 내놓고 있다. 그렇게 우후죽순 생겨나는 새 만화 중에서 뭔가 끌리는 느낌의 제호가 있다. 왠지 미래에 크게 쓰일 것 같아 보이는 그 제목은 마블 코믹스. 직감을 믿어보자. 이걸 집어들어 10센트를 지불한다.
마블 코믹스 #1은 1939년 10월이 발매 날짜이며, 실제 배포는 유통에 드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그보다 한두 달 빨랐을 것이다. 어쨌든 마블 코믹스 #1에 실린 여러 편의 수퍼히어로 만화 중에서, 당신을 가장 쉽게 몰입시킨 작품은 아마 특정 두 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다른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열광한 작품이 그 둘이니까.
하나는 칼 버르고스가 만든 휴먼 토치 Human Torch 가 등장하는 만화이고, 다른 하나는 빌 에버렛이 만든 캐릭터가 등장한다. 현재에는 잘 쓰지 않는 히어로 네임은 ‘인간 잠수함’이라는 어감의 서브-마리너 Sub-Mariner, 본명 네이머가 등장하는 만화다. 그리고 네이머의 이야기 전개는 매우 신선하다. 시작부터 미국인 잠수부 두 명과 수중 전투를 벌이고 있다. 수중 인류인 네이머는 심해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종족 특성 덕에 강력한 힘과 민첩성과 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연변이로 인해 비행 능력도 갖고 있었다. 네이머는 자신의 무력과 초능력을 이용해 잠수부 두 명을 간단히 살해한다. 그는 자신이 죽인 시신을 트로피 삼아 집으로 가져가고, 그를 맞이한 어머니가 이 만화의 배경 스토리를 설명해준다.
그들 수중 인류는 아틀란티스라는 제국을 세워 잘 살고 있는 지상 인류의 형제 종족이다. 과거의 어느 날, 아틀란티스의 공주 펜 Fen 은 남극해에서 폭발물을 터뜨린 지상인들의 배에 승선한다. 폭발로 인해 다수의 아틀란티스인들이 사망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한 스파이 임무였다. 영어를 못하는 신비한 여성의 역할을 하며 정보를 수집하던 펜은 하필 착하고 자상한 선장과 사랑에 빠지고, 선상 결혼을 하여 임신도 하게 된다. 자신의 신분은 알려주지 않은 채.
지상인을 남편으로 맞았으니 적대감이 줄어들 법도 하지만, 어머니 펜이 가진 황족으로서의 책임감은 무척이나 강했던가 보다. 펜은 남편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의 부대를 불러 승무원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어머니가 지닌 전사의 심장은 아들 네이머 왕자에게도 이어졌다. 특히 지상에서 활동이 제한되는 다른 수중 인류와는 달리, 혼혈인 네이머는 지상에서도 무리 없이 활동이 가능하다. 이제 네이머는 조국을 염탐하고 공격한 지상인들에 대해 전쟁을 결의한다.
수퍼히어로 장르라는 것을 알고 이 이야기를 접하면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동기는 원한과 증오, 수단은 전쟁과 살인이다. 연출 또한 심해를 무대로 한 공포물 같다. 물론 공격당하는 미국이 아니라 공격하는 아틀란티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네이머는 정당한 보복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자랑스러운 왕자다. 하지만 만화를 읽는 미국인 독자에게는 미국을 향해 전쟁과 테러를 가하는 전범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묘한 쾌감이 있다.
네이머는 배트맨 이상의 통쾌함을 주는 안티 히어로로서 기획되었다. 당대 미국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가해온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방법 중 하나였다. 수퍼맨을 보면서 그 선하고 굳건한 모습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배트맨이 범죄를 파헤쳐 범인을 찾아내고 그를 징벌하는 모습에 즐거워할 수도 있다. 네이머는 배트맨이 사용하는 폭력보다도 더 진한 폭력을 사용한다. 그 모습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이놈의 망할 세상, 그래! 그렇게 다 죽여버려!’를 중얼거릴 때의 쾌감과 비슷하다. 문학의 치유 기능은 여러 형태가 있는 법이다.
이 안티 히어로를 만든 작가는 빌 에버렛이다. 에버렛 가문은 300년을 이어내려온 뼈대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하버드 학장과 메사추세츠 주지사와 메사추세츠 주 하원의원이 이 가문에서 배출되었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인 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도 있다. 미국인인 에버렛이 미국을 공격하면서 데뷔한 안티 히어로를 만든 것은, 영국 낭만주의 시문학의 첫 거물이었던 블레이크가 성경을 믿었지만 당대의 교회를 가열차게 비판했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 인간 횃불, 휴먼 토치
한편 마블 코믹스 #1에는 에버렛의 네이머 외에도 대중들이 열광한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었다. 에버렛의 동료인 칼 버르고스가 창조한 휴먼 토치다. 휴먼 토치는 마블 코믹스 #1의 표지에 실려 있는, 전신이 불타는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라 인조인간이다.
피니아스 호튼 Phineas T. Horton 박사가 개발한 안드로이드인 휴먼 토치는 뉴욕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취재진과 관중을 무섭게 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온몸으로 불을 뿜는 인조인간이라면 무서운 것이 당연하다. 콘크리트로 암매장 당한 휴먼 토치는 간신히 탈출하고, 범죄자들과 엮이는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된다. 자기 능력을 조절하는 방법, 사회를 어지럽히는 범죄의 존재, 범죄를 막고 싶은 자신의 선한 본성 등. 그리하여 제임스 해몬드 James Hammond 라는 가짜 신분으로 경찰이 되어, 휴먼 토치라는 히어로 활동을 병행한다.
후일 등장하는, 같은 이름의 더 유명해진 다른 캐릭터와 구별하기 위해서, 오리지널 휴먼 토치 혹은 1대 휴먼 토치로 부르는 이 캐릭터는 전통적 영웅에 속한다. 즉, 안티 히어로인 네이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네이머가 테러 공격을 가하는 도시는 뉴욕이었는데, 하필 휴먼 토치가 사는 도시도 뉴욕이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1940년, 수퍼히어로 장르 최초의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졌다. 수퍼맨과 배트맨의 크로스오버 이슈가 1941년에 발간되었으니 1년이나 빠르다. 마블 코믹스는 #2부터 마블 미스테리 코믹스 Marvel Mystery Comics 로 제호를 바꾸었는데, 휴먼 토치와 네이머는 #8과 #9 이슈에 걸쳐 전투를 벌인다. 네이머가 지상 세계를 어느 정도 학습하고 적대 행위를 자제하게 된 후에도 둘은 친해지지 못하고 앙숙 관계를 유지한다. 각자의 능력부터가 물과 불 아닌가.
1939년 말부터의 빌 에버렛과 칼 버르고스는 커리어 성공을 누리고 있었지만, 연초에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반대로 기구한 신세를 한탄하며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엑소더스의 종착역, 타임리 코믹스
1938년의 에버렛과 버르고스는 센타우르 퍼블리케이션즈 Centaur Publications 라는 회사와 계약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센타우르는 말콤 휠러-니콜슨의 내셔널 얼라이드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사람들이 차린 신생 회사였는데, 이 퇴사자들 중 한 명인 로이드 재킷 Lloyd Jacquet 이라는 사람이 이 둘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에게 은밀한 제안을 건넸다.
만화 출판 일이라는 거, 해보니까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내가 센타우르에서도 나가서 우리만의 회사를 차리고 싶거든요? 딱히 클 필요도 없고, 배급사에 작품을 공급하는 생산 전문 회사를 생각하고 있어요. 센타우르 창립자 중에서도 나랑 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들도 함께 할래요?
모름지기 이렇게 쉽게만 얘기하는 사업가를 조심해야 하지만, 에버렛과 버르고스를 비롯한 센타우르의 작가들과 직원들은 오케이를 해버렸다. 얼마나 낭만적인 얘기인가. 작가들만 모여서 열심히 만화를 만드는 단란한 회사라니. 이런 허황된 비전을 제시한 재킷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퇴사자들의 회사에서 다시 퇴사해 새 회사인 퍼니즈 Funnies INC. 를 만들었다. 이름만 보면 Famous Funnies 를 출판하는 유서 깊은 회사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생 중에서도 신생인 회사였고, 자본금이 적은 탓에 환경은 좋지 않았다. 사무 공간만 간신히 구했을 뿐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할 공간이 없었다. 작가들은 주로 집에서 일을 해야 했고, 원고는 한 작가의 집에서 다른 작가의 집으로 왔다갔다했다.
재킷의 장담과는 달리 유통 라인 또한 찾기가 힘들었다. 이래서 낭만적인 비전만 제시하는 사업가는 경계해야 한다. 재킷은 이전 고용주인 휠러-니콜슨의 고생에서 참고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유통망을 따내기 위한 퍼니즈의 첫 번째 시도는 극장 가판대에 홍보용 만화를 배포하는 것이었다. 모션픽처 퍼니즈 위클리 Motion Picture Funnies Weekly 라는 제목의 이 잡지는, 그러나 출판만 되고 유통이 되지 못했다. 이걸 받은 극장주들이 가판대에 배포를 하지 않고 무시해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상황이 이러니 결국 직원들과 작가들은 직접 출판본을 차에 싣고 거리와 극장의 가판대를 돌아다니면서 즉석 판매를 시도하기도 했다.
빌 에버렛은 몇몇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만들어 실험하던 중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네이머의 초기 버전을 모션픽처 퍼니즈 위클리 #1에 실었다. 물론 배급에 실패한 탓에 #2부터는 표지 기획만 있었을 뿐 실제 제작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1974년에 기적적으로 남아있던 판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소수의 구전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던 잡지였다. 그래서 빛도 보지 못한 #1 이슈의 출판 시기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오직 1939년 초라는 것만 알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의 데뷔인 3~4월보다 빨랐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네이머는 역사상 두 번째 수퍼히어로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 유통되지 않은 이슈 덕분에 네이머는 함께 마블 코믹스 #1에서 데뷔한 다른 수퍼히어로 캐릭터들보다 데뷔가 빠르다. 그래서 네이머는 마블 역사상 최초의 수퍼히어로다.
후일의 역사적 영광은 차치하고, 당시 시점에서는 퍼니즈의 앞날이 어두웠다. 게다가 재킷은 계속해서 작가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당시 퍼니즈와 계약했던 작가들 다수가 창작 과정에 재킷이 미주알고주알 참견했음을 증언했다. 에버렛과 버르고스가 후회할 만도 하다.
작가 숫자는 충분하고 그 평균 실력도 높아서 컨텐츠는 충분한데 판매 루트가 없어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퍼니즈에게 어떤 사람이 접촉해와서 ‘내가 그 코믹스 팔아보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는 후일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가 되는 마틴 굿맨 Martin Goodman 이었다.
1908년에 태어난 마틴 굿맨은, 증언을 신뢰한다면, 무려 17남매(!)의 장남이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족이다.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해온 수퍼-대가족은 당연히 극도로 가난했고, 일자리와 거주지를 찾아 미국 전국을 돌아다니는 유랑의 삶을 보냈다. 굿맨은 이 가난의 경험 때문인지 야망이 컸고, 거대가족의 경험 덕분인지 사람을 잘 다뤘다. 성인이 되어 잡지 출판계에 입문한 굿맨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경영 파트너 겸 공동 소유자까지 승진했다. 고작 30대에 도달한 위치였다. 공동 소유자 다음으로 승진할 위치는 하나였다. 독립된 회사를 혼자 소유하는 것. 그래서 굿맨은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즈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퍼니즈가 제공하는 만화의 출판과 판매를 담당했다. 에버렛과 버르고스가 후회를 멈출 때가 됐다.
에버렛은 네이머를, 칼 버르고스는 휴먼 토치를 제공했다. 그 외의 여러 작가들이 만든 여러 만화를 엮어서 퍼니즈와 타임리의 합작 만화 잡지인 마블 코믹스 #1이 1939년 10월에 발매되었다. 당시 굿맨은 다수의 펄프 픽션 잡지를 발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제호가 마블 사이언스 스토리즈 Marvel Science Stories 였다. 여기서 마블 코믹스의 제호가 유래했다는 추측도 있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는 성공을 거뒀다. 네이머와 휴먼 토치가 데뷔한 이 이슈는, 출처가 불확실한 증언에 의하면 초판 8만 부가 매진되었고 이에 #1을 11월에 추가 출판하자 8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1이 두 달 연속으로 발간되었기에 #2 이슈는 12월에 발간되었다.
이 성공에 크게 고무된 재킷은 사업 파트너를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이 성공에 크게 고무된 굿맨은 컨텐츠와 작가들을 모두 자기가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굿맨은 퍼니즈를 집어삼킬 준비를 마치고 실행에 옮겼다.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즈는 직원 없이 마틴 굿맨과 그의 동생 하나만 소속되어 있는 페이퍼 컴퍼니였다. 회사의 모든 직책을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굿맨은 이 페이퍼 컴퍼니를 타임리 코믹스라는 이름의 실제 회사로 확장시켰다. 1939년 말부터 1940년 한 해의 시간 동안, 그는 퍼니즈의 직원들과 작가들을 포섭하고 재킷을 압박하는 한편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즈를 타임리 코믹스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인력 확보는 매우 쉬웠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로이드 재킷의 간섭에 신물이 나있었고 직원들 다수는 재킷의 허세와 성질머리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봉급 측면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퍼니즈의 직원 급여 수준은 현재 알 수 없지만, 작가 급여의 경우는 기존의 출판사나 스튜디오가 지불하던 금액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다. 당시의 중견급 작가인 조 사이먼 Joe Simon 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아이즈너-아이거의 스튜디오와 계약을 하고 일했을 때는 그림 파트만 맡았고 페이지당 원고료는 3.5달러에서 5.5달러였다. 사이먼이 퍼니즈에서 일을 받을 때는 스토리에서 레터링까지를 모두 해야 페이지당 7달러를 받았다. 굿맨은 사이먼에게 이렇게 말했다. “페이지당 12달러! 원고 받는 즉시 현찰 박치기로!” 스카우트에 응하지 않으면 바보였다.
직원들도 작가들이 하나둘 타임리 코믹스로 넘어갔다. 에버렛도, 버르고스도, 재킷의 눈치를 살짝 본 후 타임리와 계약을 했다. 그 중 가장 빨리 넘어간 최고의 거물은 12달러에 혹한 조 사이먼이었다. 1939년 말에 넘어간 사이먼은 편집장 자리를 맡았다. 물론 사소한 함정은 있었다. 당시 막 시작한 타임리가 채용한 편집 인력은 사이먼 하나뿐이었다. 그 외의 작가들은 작가로서 계약했고, 계약 보유 작가가 넘쳐나게 된 굿맨은 이 인력들을 만화 외에도 자신의 기존 펄프 픽션 회사에서 발간하는 소설의 삽화 인력으로도 유용하게 써먹었다.
내셔널 얼라이드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만든 센타우르, 센타우르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만든 퍼니즈, 퍼니즈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입사한 타임리. 최초의 수퍼히어로 출판사에서부터 시작된 엑소더스의 끝에는 두 팔 벌린 마틴 굿맨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로이드 재킷은 결국 1940년 말에 모든 만화 컨텐츠의 권리를 타임리에 매각했다. 1939년 말에서 1940년 말에 이르는 1년 동안, 타임리는 수퍼히어로 시장의 다크 호스로 떠올랐다.
조 사이먼은 커리어 내내 프리랜서 계약만 맺으며 떠돌던 유목형 작가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정착할 마음을 먹고 직원으로서 정식 계약을 맺은 회사가 타임리다. 그리고 사이먼은 첫 정착지인 타임리 코믹스에 훗날 큰 자산이 될 두 사람을 연결시킨다. 이 두 사람은 이후 수퍼히어로 장르의 최고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한 명은 굿맨의 처사촌, 어떤 증언에서는 처조카라고도 하는 스탠 리 Stan Lee 다. 본명이 스탠리 마틴 리버 Stanley Martin Lieber 인 1922년 출생의 이 10대 소년은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1937년, 15세의 스탠 리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주간 작문 콘테스트에서 3주 연속 우승을 했다. 처조카가 글을 좀 쓴다는 것을 굿맨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939년, 막 이직해온 편집장 조 사이먼에게 스탠 리의 삼촌이 찾아와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17세의 조카를 채용해달라고 청탁했다. 실제로는 16세 반이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사이먼은 그를 편집 보조로 채용했다. 당시의 사이먼은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 선택은 회사에겐 신의 한 수가 된다.
다른 한 명은 조 사이먼의 인맥인 잭 커비 Jack Kirby 였다. 두 사람은 출판용 코믹스와 신문 연재용 코믹 스트립의 제작과 유통을 하는 폭스 피처 조합 Fox Feature Syndicate 에서 처음 만나 절친이 되었다. 당시 사이먼은 프리랜서 계약직이었고, 커비는 소속 작가였다. 잭 커비는 당시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중견 그림 작가로 현재는 DC 코믹스 소유가 된 블루 비틀을 포함해, 커비는 여러 회사에서 여러 수퍼히어로 캐릭터와 폭넓은 장르의 만화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를 대표하는 업적은 마블 코믹스에서 조 사이먼과 함께 캡틴 아메리카를 만든 것과, 스탠 리와의 오랜 협업으로 마블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을 만든 것이다.
물론 1940년 시점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 대공황의 끝, 2차대전의 시작
타임리가 등장하고 약진한 1940년쯤 해서, 미국인들은 차츰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공황이 끝난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온 힘을 쏟아 편 뉴딜 정책이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서 서서히 건져내고 있었다.
1933년부터 재임한 루스벨트는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금본위제를 중단해 통화 안정성을 마련하고, 균형 발전을 꾀할 겸 강제적으로라도 자본 유통을 부추길 겸 정부 주도 하에서라도 일자리를 만들 겸 하여 테네시강 유역을 시작으로 대규모 토건 사업을 벌였다. 이 정책 방향은 곧 복지 사업과 예술 진흥 투자를 확대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미국 복지 제도의 대표격인 사회보장법이 루스벨트 재임 기간에 생긴 제도다. 한편 시장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해 증권법을 추진하고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했다. 소득세율의 상한이 79%까지 올라간, 일명 부유세가 도입된 것도 이 시대의 일이다.
정부가 나서서 안정적인 자본 유통을 돕고,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와 노동권을 강화하는 뉴딜 정책의 결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 말이었다. 탈출 속도는 느렸고, 국민들이 어느 정도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경이 되어서였다. 거시적인 시각에서는 아직도 대공황과 완전히 작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가 약간씩이나마 좋아지고 영화와 코믹스 시장을 비롯한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하는 상황은 다시 희망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1941년 12월이 되면 대공황으로부터의 완벽한 졸업을 알리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비극적인 사건이 터진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다. 미국은 2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시 경제를 돌리면서 부활의 마침표를 찍게 되지만, 공습 자체는 비극적 전쟁의 한 페이지다. 무수한 생명이 사라진 전쟁이 국가 경제를 구했다는 점은 역사 속의 잔인한 아이러니다. 그 점은 수퍼히어로 만화에게도 동일했다. 전시 상황에서 수퍼히어로는 좋은 프로파간다 도구였다. 그래서 미국 전역의 모든 계급에게로 닿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치 그런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진주만 공습 한 달 전인 1941년 11월까지도 수퍼히어로 시장에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마구 쏟아졌다. 특히 최초 캐릭터들의 뒤를 이어 DC와 마블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진 초창기의 핵심 캐릭터들이 1940년과 1941년에 출생 신고를 했다.
그리하여 수퍼맨이 탄생한 1938년부터 2차대전의 뒤처리가 마무리되는 1950년까지의 시기를 수퍼히어로 장르에서는 골든 에이지 Golden Age 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토대가 형성된, 빅뱅의 시대였다.
- 준비된 2차대전용 문화산업
미국 사회가 대공황의 터널을 거의 다 통과한 1941년. 연말을 향해 가던 12월 7일에 일본 제국은 미국의 오아후 섬 진주만에 있던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를 공습했다. 선전포고문이 사전에 송신되긴 했지만, 난해한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어 미국으로선 ‘해독’을 해야 했다. 미국이 알아먹을 수 없는 난문(難文)의 내용이 선전포고임을 이해하기는커녕 전달받기도 전에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이는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태평양 전쟁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해서는 안 될 전쟁이 결의되자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진주만 공습 작전을 입안했고, 이를 성공시켰던 비운의 유능한 제독이다. 이소로쿠는 진주만 공습을 지휘할 때 선전포고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작전 이후에야 간신히 미국에 전달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예정대로 전해졌다 하더라도 전달 예정 시각은 작전 결행 20분 전이었다. 당연히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고, 의미를 꼬아놓은 문장을 이해하고, 마지막 장에 숨겨둔 선전포고 내용을 이해하고, 대응 방법을 결정해 그 소식을 진주만에 전달하기까지 20분이라는 시간은 부족한 시간이다. 상대가 최대한 늦게 해석하도록 애쓴 싸구려 책략이다. 마지막 문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제국 정부는 여기에 합중국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 금후 교섭을 계속할지라도 타결에 이를 수 없다고 인정치 않을 수 없음에 관하여 합중국 정부에 통고함을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
이런 엉망진창의 선전포고문이 그나마도 늦게 전달되었음을 알게 된 이소로쿠 제독은 격노했다고 한다. 이소로쿠의 격노 따위는 미국의 격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공습 보고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가 일본이 들고 온 상식 밖의 꼼수를 목도한 국무장관은 일본 대사를 내쫓았다. 미국 전역이 국무장관의 분노를 공유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치욕의 날 연설’을 하고 2차대전에 참전했다. 미국인들의 자진입대율은 90%에 육박했다.
양측이 맞붙는 전장은 당연히 사이에 있는 태평양. 넓고 넓어서 태평(太平)이 붙은 바다다. 해군과 공군 전력이 필수인데 해군과 공군의 전력은 공장에서 나온다. 미국은 뉴딜 정책으로 인해 간신히 소생한 공장들로 배와 전투기를 생산했다. 그 생산력의 규모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2차대전 당시 영국이 생산하거나 타국에서 지원받거나 수입한 수송선을 다 합치면 1500만여 톤 정도다. 미국은 혼자서 2500만여 톤의 수송선을 생산해냈다. 수송선만 이런 정도다. 이소로쿠 제독의 걱정은 옳았다. 일본은 미국의 상대가 아니었다.
전쟁은 국가 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대재앙이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이자 납세자인 사람들을 대량으로 실어날라 전장에 던져넣고 죽도록 내버려두는 행위다. 하지만 대공황과 뉴딜 막바지에 있었던 미국에게 2차대전, 특히 태평양 전쟁은 좀 달랐다. 전력에서 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해군과 공군 위주의 전쟁이니 인력 공백이 많지 않았다. 또한 생산하는 장비가 배와 전투기 등의 중공업 품목이다. 공장과 연구소가 가동된다. 경제 주체들이 죽어나가 경제를 박살내는 전쟁보다는 경제를 강제로나마 활황으로 만드는 전쟁에 조금 더 가까웠다. 입대하지 않은 남성이나 가정에 있던 여성들이 공장을 돌렸다. 임금이 지급되고 가계 경제가 탄탄해졌다. 뉴딜과 전쟁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미국을 대공황에서 졸업하도록 만들었다. 전쟁의 영향으로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국가는 단결 총화해야 유리하다. 비록 진주만 공습 때문에 전국이 단합하긴 했지만 이 단합의 효과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북돋아야만 한다. 이럴 때 문화 산업은 전쟁 프로파간다에 컨텐츠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시 40년대 초중반의 미국에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코믹스 시장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는 수퍼히어로 시장이 있었다. 장르의 특성에서도 수퍼히어로는 전쟁 프로파간다에 쓰이기 유리했다. 주인공과 반동인물의 대립이 기초 구도이니, 반동인물의 자리에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이라는 악을 갖다놓으면 되는 것이다.
반면 전쟁 프로파간다 참여를 수퍼히어로 장르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 국방부의 후원으로 시장의 넓이를 확장하는 기회가 된다. 문화 산업이라는 신생 산업 분야에서도 신생 분야인 코믹스 중에서도 신생 장르인 수퍼히어로가 미국 전역의 거의 모든 계층에게 가닿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에게,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국채를 사는 투자자들에게. 게다가 참 절묘하게도 이 장르에는 마침 전쟁용으로 쓰기 딱 좋은 캐릭터들이 막 태어나있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수퍼히어로가 캡틴 아메리카였다.
- 타임리 빅3의 마지막 멤버, 캡틴 아메리카
1941년 초의 조 사이먼은 막 타임리에 편집자로 입사한 상태였다. 오랜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입사한 첫 직장이었고, 보수도 좋았으니 사기는 높았다. 그래서 친구인 잭 커비를 불러와 작품 하나를 같이 해보자고 꼬드겼다. 사이먼은 자기가 그린 캐릭터 스케치를 보여줬다. 이름은 ‘수퍼 아메리칸’이었다. 커비와의 의논 후, 사이먼은 이름에서 ‘수퍼’를 떼냈다. 시장에 차고 넘치는 수퍼보다는 캡틴이 더 나아 보였다.
이렇게 캡틴 아메리카가 탄생했다. 군의 실험에 참여한 스티브 로저스 Steve Rogers 가 혈청을 주사 받고 수퍼솔저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무기는 덜 공격적으로 보이는 방패로 결정되었고, 코스튬은 성조기를 활용해 만들었다. 배트맨의 사이드킥 로빈이 저연령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을 참고해 버키 Bucky 라는 이름의 소년 사이드킥도 만들었다. 버키의 이름은 사이먼의 고등학교 시절 농구팀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친구의 이름에서 따왔다.
완성된 캐릭터를 본 마틴 굿맨 사장은 캡틴 아메리카의 잠재력을 깨달은 것 같다. 기존 잡지 라인업에 넣는 대신 독자적인 셀프 타이틀을 만들기로 했다. 다른 만화를 추가하지 않고 오직 캡틴 아메리카의 이야기만 실리는 잡지였다. 당시 거의 모든 발행 이슈는 여러 편의 만화를 앤솔로지 형식으로 싣고 있는 ‘잡지’였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처음부터 솔로 타이틀로 시작했다.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Captain America Comics 의 이슈 #1이 1941년 3월호로 처음 출간되었고, 판매는 1940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진주만 공습 1년 전이다.
이 이슈는 한 캐릭터가 한 이슈를 독차지한 시도로서는 최초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한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서도 최초로 추정된다. 캡틴 아메리카에는 친나치 여론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2차대전 참전 이전 시점의 미국에서 무시할 만큼의 비중은 아니었던 친나치 여론은, 비록 참전과 동시에 나치 독일의 선전포고로 인해 쏙 들어가긴 했지만, 당시에는 반전 여론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만화 작가들의 상당수는 유대계였다.
당시 활동하던 유대계 작가들의 이름을 읊어보자. 조 사이먼, 칼 버르고스, 스탠 리, 잭 커비, 제리 시걸, 조 슈스터, 밥 케인, 빌 핑거, 제리 로빈슨 등등이 전부 유대계다. 지금까지 소개 및 언급했던 작가들 중에서 빌 에버렛을 제외한 전부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유대계 중에서도 동유럽계다. 동유럽계 유대인은 혈통과 문화상 ‘백인 중의 흑인’인 유대계에서도 비주류였다.
사회 시스템 주류에 들어가려는 노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분야에 종사하는 선택은 인기가 높았다. 갱도 그 중 하나다. 후일 흑인 계층도 같은 수순을 밟아 마약상과 음악과 스포츠 위주로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 20세기 초의 유대계들에게 가능했던 분야 중 하나는 문화 산업이었다. 작가는 인기에 좌우되는 인생이어서 하이 리스크이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에 성공하면 하이 리턴인 직종이다. 20세기 유대계 이민자들의 2, 3세대 중 꽤 많은 수가 이 신생 산업 분야에서 바늘구멍을 노렸다. 조 사이먼과 잭 커비 또한 그 중 하나였고, 유대계 중에서도 후발주자로서 당대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한 결과가 나치를 등장시키는 캡틴 아메리카였다.
나치 독일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북돋고 2차대전 참전 여론을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캡틴 아메리카는, 첫 이슈부터 센세이션을 만들었다. 단숨에 높은 판매고를 올리면서 타임리가 보유한 수퍼히어로 캐릭터 중 인기 상위권으로 데뷔한 것이다. 친나치 여론 또한 이에 반응했다. 어디 보이지도 않는 동유럽계 유대인 따위가 위대한 게르만인의 제3제국을 욕하다니! 작가들에 대한 테러 예고가 있었고 이 때문에 경찰 병력이 회사와 작가들의 집을 경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뉴욕의 라 구아르디아 시장은 작가들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회사에겐 아주 좋은 정치적 마케팅 기회였다.
캡틴 아메리카는 단숨에 기존의 메이저 캐릭터인 네이머와 휴먼 토치를 능가하게 되었다. #1 이슈는 한 달 동안 1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는 같은 기간 타임지가 올린 판매고를 넘는 수치였다. 심지어는 팬클럽도 생겨났다. 이렇게 타임리를 대표하는 3인방의 라인업, 일명 빅3가 완성되었다.
한 캐릭터로만 한 이슈를 채우려니 문제도 있었다. 사이먼은 커비 혼자서 그림을 그려서는 그 분량을 매달 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을 펜슬러와 잉커로 참여시켰는데, 커비는 이 처사에 황당해했다고 한다. 마감에 맞춰 분량을 만들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 사이먼은 보아의 노래가사 같은 말로 커비를 달랬다. “You’re still No. 1.”
잭 커비는 작가진에서 넘버 원이 맞았다. 캡틴 아메리카를 전후해서 커비가 보여준 스타일은 이후 만화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1 표지에서 그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포즈, 이를 강조하기 위해 쓰인 동작선과 충격파의 활용이다. 소설 삽화의 유전자로 인해 정적인 삽화의 느낌이 짙었던 만화가 드디어 독자적인 그림 미학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이었고 잭 커비는 그 중 대표적인 경우였다. 이 성과를 이어받은 일본 만화는 잭 커비 부류의 방식을 추가 발전시켜 오늘날 만화 표현 기법에 이르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의 코스튬 또한 유행을 만들었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의 작법을 요약하면 ‘국가의 의인화’다. 이름과 코스튬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이런 캐릭터 유형에서 최초는 아니지만, 메가 히트 상품으로서는 처음이다. 따라서 캡틴 아메리카 이후로 등장한 성조기 테마의 수퍼히어로들은 모두 캡틴 아메리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아류 캐릭터 중에서 대표적인 경우가 이름에서부터 성격이 드러나는 스타 스팽글드 키드 Star-Spangeld Kid 와 사이드킥인 스트라입시 Stripsey 다. 국가의 의인화는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보기도 한다. 첫 캐릭터인 수퍼맨의 코스튬 배색도 성조기에서 따온 빨강과 파랑의 대비였으니 말이다.
만화는 성공했지만 조 사이먼은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의 대히트를 쳤지만, 그에 대한 회사의 보답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봉급이 낮은 것도 아니고 업계의 관행까지 고려해보면,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도 딱히 선택지가 되기 힘들었다. 결국 조 사이먼은 역마살이 낀 유목형 작가답게 다시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때는 캡틴 아메리카의 #10 이슈가 발매된 후인 1942년 1월경이었다. 잭 커비 또한 그와 함께 타임리를 떠났고, 그래서 스탠 리와의 결합은 20년 후로 미뤄졌다.
사이먼이 떠난 후 공석이 된 편집장 자리는 그의 보조였던 스탠 리가 승계했다. 고작 17세의 입사 1년차였다. 마틴 굿맨은 조카를 임시 편집장으로만 쓸 생각이었지만, 아무도 심지어는 스탠 리 자신도 예상치 못하게 업무에 대한 천재성이 발휘되었다. 스탠 리는 1942년 징집되어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까지 편집장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
- DC의 빅3의 마지막 멤버, 원더우먼
미래의 마블 코믹스가 될 타임리 코믹스가 자사의 간판 캐릭터들인 빅3를 내놓는 동안, 미래의 DC 코믹스가 될 세 형제 회사 또한 같은 수순을 밟고 있었다. 수퍼맨과 배트맨은 시장을 만들었고 폭발시켰지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혹은 이들을 받쳐줄 캐릭터들은 계속 필요했다. 그러던 중 어떤 중년의 학자가 젊은이들 투성이인 올 아메리칸 코믹스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었다. DC에게 세 번째 대표 캐릭터를 안겨줄 사람이 될 이 학자의 이름은 윌리엄 몰턴 마스턴 William Moulton Marston 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인생은 매우 흥미롭다.
어머니 쪽이 매우 유서 깊은 귀족 집안이었던 윌리엄 몰턴 마스턴은 어려서부터 약간의 마더컴플렉스 기질을 보였다. 여성성에 대한 환상이나 숭배 감정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1년에 하버드에 입학했는데, 그의 성향에 걸맞게도 1910년대 미국의 메인 이슈는 여성참정권이었다.
1차대전 직전인 이 시대에는 영국의 에멀린 팽크허스트 Emmeline Pankhurst 나 인도의 소피아 둘립 싱 Sophia Duleep Singh 과 같은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적극적이고 과격하게 변화하던 시기였다. 의회 난입용 위장전술로 몸을 쇠사슬로 건물에 묶는다던가, 우체통을 폭파한다던가, 방화를 한다던가. 역사에 서프러제트 Suffragette 혹은 여성참정권 운동이라는 명칭으로 남은 페미니즘 운동 조류다. 서프러제트는 노동자 계급과 유색인종을 배제한 상류층 백인 여성들만의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 과격성 덕분에 여성 문제를 사회 전면에 부각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여성운동가들이 투쟁을 사회 전면으로 끌고 나오자 남성 지식인 사회에서도 지지자들이 생겨났다.
하버드대 남성연맹은 대표적인 여성참정권 지지단체였다. 이들이 기획한 연속 강연 이벤트의 강연자 중 한 명이 에멀린 팽크허스트였다. 하버드대 당국이 교내 강연을 불허해버려 근처 맥주집에서 열린 팽크허스트의 강연에는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이 강연에 참석한 사람 중에 하버드대 심리학과 신입생인 마스턴이 있었다. 그가 맥주집 안에 들어가서 강연을 들었는지, 바깥의 담장에 매달려 강연을 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마스턴에겐 12살 때부터 사귄 엘리자베스 할러웨이 Elizabeth Holloway 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마스턴과 동갑인 할러웨이가 진학한 대학은 미국 최초의 여대인 마운트홀리오크였고 전공은 남자친구와 같은 심리학이었다. 그녀는 할러웨이 가문에서 4대 째에 나온 귀한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동생을 부하처럼 거느리고 다녔고, 옆집 아일랜드계 형제들에게 남동생이 맞고 들어오면 반드시 그들을 박살내는 것으로 복수를 해주곤 했다. 할러웨이는 그리스 문화의 팬이었고 특히나 시인 사포의 광팬이었다.
당시 여성운동의 조류에는 오랜 차별에 대한 반대항인지 여성우월 정서가 묻어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초기 여성주의 문학에서 자주 다뤘던 소재인 아마존 파라다이스이다. 고대 그리스를 좋아했던 할러웨이 또한 이런 설정을 즐겼다. 1910년대 중반부터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여성우월 정서보다는 평등 가치에 집중하는 조류가 여성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는데 마스턴은 앞선 쪽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마스턴 자신은 원더우먼을 “세상을 지배해 마땅한 여성상으로서의 심리학적 프로파간다”였다고 해설했다.
마스턴과 할러웨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고 각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런데 1917년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했다. 마스턴은 입대하여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거짓말탐지기의 활용 방안을 군에서 시험해볼 기회로 이용했다. 그리고 군에서 어떤 여성을 만나게 된다.
마저리라고도 하는 마가릿 윌크스 헌틀리 Margaret Wilkes Huntley 는 몇 년 전 남편과 이혼한 열성적인 여성참정권 지지자였다. 여자가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하면 징역 혹은 벌금형에 처해지는 주가 대다수였던 시대에 헌틀리는 여성들이 투표소를 향해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사람이었다. 헌틀리는 병사들의 셸쇼크 치료를 위해 한 군부대로 파견을 나왔고, 거기서 유부남 마스턴을 만나 연인이 된다. 헌틀리의 성향 중에는 본디지를 비롯한 SM 취미가 있었다. 헌틀리는 이를 “사랑의 구속”이라 불렀다. 후일 그녀는 할러웨이에 의해 “원더우먼의 제작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히게 된다. 마스턴이 전역할 때까지의 6개월 동안 둘은 집중적인 데이트를 즐겼고 할러웨이와 헌틀리도 안면을 텄다. 헌틀리의 표현에 의하면 이때부터 ‘3인조’가 되었다고 한다.
1차대전이 종전된 1918년에 전역한 마스턴은 철학 박사 과정을 2년만에 졸업하여 학위를 세 개 보유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시킨 거짓말탐지기와 그 활용법을 가지고 학계에서 주름 좀 잡아보려 시도하게 된다. 그가 만든 버전은 혈압 변화를 측정하는 것으로,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데이터를 누가 측정/해석하느냐에 따라 정확도 편차가 컸다. 그리고 마스턴의 법학과 제자들이 변호사가 되어 맡은 살인 사건 재판에서 거짓말탐지기의 증거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학계의 지지를 받아내지도 못했고, 의뢰인은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며, 자기 사업 때문에 사기죄로 고소까지 당해버렸다. 야심찬 첫 도전은 화려한 실패였다. 그리고 다시는 이 실패를 만회하지 못했다.
계속 자신의 거짓말탐지기를 띄울 기회를 엿보며 강단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던 마스턴은 1925년에 세 번째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기 수업에 학생으로 들어온 올리브 번 Olive Byrne 이라는 여성으로, 올리브는 마스턴의 수업 3개에서 모두 A를 받고는 마스턴의 연구조교가 된다. SM 취향을 먼저 내보인 쪽이 마스턴인지 올리브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두 사람은 이후 대학 동아리의 SM스러운 입단 절차 등을 관찰 및 체험하면서 즐거운 연애를 했다.
이듬 해 올리브가 졸업하고, 할러웨이도 졸업식에 참석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셋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바깥 세상에 내세울 올리브 번의 남편 역은 가상 인물로 대체했다. 마스턴이 윌리엄 리처드라는 이름을 만들어 남편 이름으로 서류에 올렸고, 그는 금방 죽은 것으로 설정했다. 그렇게 외부인들에게는 일찍 남편을 잃은 올리브가 마스턴 집안에 얹혀서 함께 사는 것으로 보이게 됐다. 가끔 집에 놀러와 며칠 자고 가는 헌틀리와의 관계가 끝난 상태는 아니었다. 한 명의 남자와 2+1명의 여자가 구성한 그룹결혼, 폴리아모리 가족이었다. 혹은 세 명의 여자들이 남자 한 명을 공유하는 가족이기도 하다.
자녀 넷이 장성한 후에 찍은 마스턴 패밀리의 가족사진.
가장 좌측이 할러웨이, 가장 우측이 올리브, 마스턴과 할러웨이 사이가 헌틀리다.
세 여성은 자신들끼리도 사이가 매우 각별했다.
마스턴은 이후 원더우먼으로 뜨기 전까지 학자로서 꾸준히 망해간다. 거짓말탐지기를 띄워보려는 노력은 계속 실패로 돌아가다 못해 라이벌까지 등장한다. 현재의 거짓말탐지기에 마스턴이 끼친 영향은 별로 없다. 할러웨이는 남편과 반대로 좋은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3자 결혼을 시작한 다음 해인 1927년, 할러웨이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4판 개정에 집필인과 편집인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육아 때문에 커리어는 끊길 것이고 가족의 주수입원은 사라질 것이다.
이 부분을 올리브가 메워주었다. 올리브가 육아를 책임지고 할러웨이가 주수입을 벌어오고 마스턴은 하렘을 성취했다. 하지만 가끔 놀러 혹은 빌붙으러 방문하는 헌틀리까지 합하면 성인만 4명에 아이들까지 합치면 8명인 가족을 부양하려면 할러웨이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무리일 테니 부수입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올리브 번 역시 잡지 필진으로 데뷔해 수입을 벌어왔다. 올리브의 오빠 잭 번은 펄프 픽션과 만화를 출판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성능이 의심되는 거짓말탐지기와 SM의 심리적 요소를 연구하는 마스턴의 학자 커리어는 해가 갈수록 하강했고, 그런 그가 안쓰러웠는지 올리브와 잭은 각자가 일하는 잡지에 마스턴의 글이나 인터뷰를 실어주는 등 도움을 주려 애썼다. 그런 인터뷰 중 하나가 당대의 신매체로 떠오른 출판 만화, 코믹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올리브는 자신이 기고하는 잡지에서 ‘모르는 사람인 척’ 마스턴을 인터뷰했고 여기서 마스턴은 만화에 우호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런데 이 기사가 올 아메리칸의 사장 맥스 게인즈의 눈에 띄었다.
게인즈는 학교 교사였던 적이 있었고, 그래서 만화와 수퍼히어로 장르가 받고 있는 ‘아동들에게 해가 되는 비교육적 매체’라는 비판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마스턴은 방어 논리를 만들어줄 학자로 적절했다. 마침 마스턴은 영화계에서 비슷한 종류의 자문 역할을 한 경험이 있었다. 마스턴 자신 또한 잭 번의 어깨 너머로 보았던 출판 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문 학자가 아닌 작가로서 데뷔했다. 마스턴의 파트너가 된 그림작가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만평을 그렸던 해리 피터 Harry G. Peter 였다. 페미니즘 전사의 이상향으로 기획된 이들의 캐릭터가 원더우먼이다.
속세에서는 다이애나 프린스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다이애나, 통칭 원더우먼은 그리스 신들의 축복을 받은 아마존들의 섬에서 온 전사다. 최소한 반신(半神)이기 때문에 신성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비행 능력을 제외하고, 그리스 신들이 관장하는 주요 분야에 대한 모든 초능력이 있다. 여기에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장비까지 착용해 무적의 능력을 자랑하는데, 티아라 - 방패 - 검 - 팔찌가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원더우먼의 상징이 된 장비는 채찍인 ‘진실의 올가미’로, 여기에 묶인 존재는 진실만을 말하며 따라서 거짓된 상태인 환각이나 세뇌 등도 일시 무효화된다. 코스튬은 고대 그리스 전사의 복장을 노출 많은 여성형으로 고치면서 배색은 성조기에서 따왔다.
원더우먼이 데뷔한 이슈는 올 아메리칸에서 발행하는 올 아메리칸 코믹스 #8이다. 1941년 12월호였으니 발행날짜는 진주만 공습과 같은 달이며, 실제 판매는 10월부터 진행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 아메리칸 코믹스에 있는 다른 선배 수퍼히어로들을 제치고 수퍼맨과 배트맨에 육박하는 인기를 얻어냈다. 타임리와 마찬가지로 DC에게도 빅3가 생긴 것이다.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빅3는 현재 트리니티 Trinity 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호명되고 있다. 이 셋은 현재 DC 코믹스의 근간을 쌓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더우먼의 초기 설정에는 ‘남자에게 묶이면 힘을 상실하는’ 약점이 있었다. 마스턴의 성적 취향을 감안하면 단순히 서사적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장치이기만 할 리가 없다.
원더우먼의 테마 중 한 축이 ‘여성의 힘’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여성의 결박’이었다. 작중에서 묶이는 여자는 원더우먼만이 아니었고, 캐릭터들은 매 이슈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묶였다. 마스턴의 스토리 원고에는 원더우먼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이 묶이는 방법을 쓸데없으리만치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묶이는 방법뿐 아니라 얻어맞는 장면에 대한 설명도 매우 자세하다. 물론 페미니즘 운동에서 그린 만평이나 써낸 글에서는 결박과 구속구가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의 상징물로 자주 쓰이긴 했다. 특히나 여성이 그 구속을 끊어내는 장면은 여성해방을 담을 수 있는 강렬한 컷이다. 하지만 원더우먼과 마스턴 일가의 역사를 추적해온 역사학 교수 질 르포어 Jill Lepore 는 이렇게 해석했다. “이건 페미니즘이라기보다는 페티시다.”
그 페티시의 결과물 중 하나다. 원더우먼은 묶거나 묶이기 딱 좋은 캐릭터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페미니즘과 SM 미학 양쪽을 다 이해한 작가들만이 좋은 퀄리티를 낸다.
이제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기원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요소는 1번 아내인 할러웨이의 영향이다. ‘진실의 올가미’와 매회 묶이는 원더우먼의 고난에서 읽을 수 있는 페티시는 마스턴 – 헌틀리 - 올리브가 즐기던 성적 취향에서 왔다. 특히 본디지를 좋아했던 헌틀리의 영향이 더 컸을 것이다. 올리브의 경우엔 자주 했던 팔찌가 원더우먼의 것과 똑같다. 이상은 할러웨이가 노년에 모두 긍정한 내용이다.
마스턴 패밀리의 가족사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원더우먼은 사랑의 수퍼히어로로 기획되었고, 그렇게 만들어보라고 조언한 사람이 마스턴의 아내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서술은 모두 참이다. 다만 그들이 생각한 사랑에 SM과 본디지가 포함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7년의 영화 [원더우먼 스토리], 원제는 '마스턴 교수와 원더우먼들'로 만들어졌다.
네 사람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점은 성적 취향 외에도 페미니즘이 있었다. ‘드센 여자’로 분류되었던 할러웨이는 당연하거니와, 투표소로의 행진 이벤트를 기획한 바 있는 헌틀리 또한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올리브 번의 가족사는 20세기 초반 가장 파괴력이 강했던 여성운동 이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산아제한운동 혹은 피임법 운동이다.
- 올리브 번, 산아제한운동의 성골
올리브 번의 어머니는 에설 번 Ethel Byrne 으로, 11남매 중 막내였다. 에설의 여섯째 언니는 후일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에 남게 되는 간호사 출신의 마가릿 생어 Magaret Sanger 이다. 자매의 어머니는 총 18번 임신을 했고 49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20세기 초는 피임법이나 가족계획 따위는 교육되지 않던 시대였다. 비록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17남매의 장남이었다고 하는 마틴 굿맨의 가족 이야기도 가능성이 충분한 이유다.
자매는 여성운동, 특히 산아제한 운동에 투신했다. 에설은 주정뱅이 남편에게서 도망친 후에 언니 생어와 함께 뉴욕 주에서 피임법 교육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당시 피임법 교육과 피임은 모든 주에서 범죄였다. 신이 정하신 출생의 섭리를 어기는데다가 교육 내용이 음란하다는 것이 법의 이유였다. 때문에 자매의 어머니처럼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건강을 해치거나 죽거나 극도의 경제적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였다. 자매는 체포되었고, 에설이 먼저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되었다.
에설은 팽크허스트의 적극적 투쟁법을 본받아 수감 중에 단식 투쟁을 시작했고, 이는 단숨에 언론을 탔다. 당시 굵직한 여성운동가 앨리스 폴 Alice Paul 도 팽크허스트의 예를 본받아 강력한 시위를 하기로 하고 1917년 1월, 전미여성당원 1만 명을 모아 백악관 앞에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 팻말에는 “대통령님, 여성들은 언제까지 자유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센세이션의 측면에서(최소한 뉴욕 주에서는) 에설 번이 앨리스 폴과 1만 대군을 압도했다. 물론 어린 잭과 올리브 남매는 이 모든 투쟁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너무 어렸기에 올리브의 경우엔 흐릿한 기억이었다고 하지만.
앨리스와 에설 양쪽에 대한 여론의 분위기는 대체로 동정적이었고 특히 어린 남매가 어머니를 찾고 있는 에설의 경우는 더했다. 생어는 이 분위기를 이용하기로 마음먹고는 뉴욕 주지사와 에설의 사면을 놓고 거래를 했다. 에설이 앞으로 ‘위법행위’를 하지 않으면 사면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생어가 승낙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판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30일을 살았다. 풀려나온 에설은 언니를 용서하지 않았으며 사면 조건을 대충 지키면서 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어가 소득 없이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재판 중에 생어는 ‘피임약을 배포할 권리가 의사에게 있다’는 뉴욕 주의 유권 해석을 끌어냈고, 이를 이용해 의사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동맹체를 1921년에 결성해냈다. 미국산아제한연맹의 탄생이다.
그런데 여기엔 우생학에 근거해 ‘열등한 유전자라면 피임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그룹 때문에 생어는 연맹 회장직에서 내쫓겼다. 이후 생어는 저술 활동을 하면서 H.G. 웰즈와 평생 갈 연인 관계를 맺는 한편, 석유 재벌과 결혼해 운동자금도 마련했다. 생어는 남편의 돈으로 조카 올리브와 잭의 학비를 대는 한편, 경구피임약 개발 연구에도 투자해 성과를 냈다. 1998년 타임지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 100인’의 한 사람에 마가릿 생어를 넣었다. 생어의 저작인 “여성과 신인종”은, 올리브의 언급에 따르자면 원더우먼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다. 다만 자신의 커리어에서 동생 에설 번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던 이력과 산아제한협회 내 우생학 그룹의 주장에 수동적으로나마 동의했던 인종차별 혐의는 생어의 명백한 흠이다.
이런 마가릿 생어의 조카인 올리브 번과 잭 번이 마스턴의 2호 아내이고 처형이었다. 그러니 원더우먼은 단순히 페미니즘 사조를 유행으로서 받아들인 정도가 아니다. SM과 본디지 성애가 원더우먼의 외적 표피에 영향을 주었다면, 마가릿 생어를 비롯한 20세기 초 미국 페미니즘 자체가 올리브 번을 통해 재조직되어 원더우먼의 설정 안으로 들어갔다. 올리브 번은 마스턴 문하에서 원더우먼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이모 생어의 책을 권하며 "여기에 원더우먼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마스턴의 진짜 성과는 당대의 사조를 한 캐릭터 안에 편집하여 녹여낸 점에 있다. 그의 독특한 가족사에 가려져 쉽게 알아채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그리고 성조기를 따라 별이 그려진 하의를 입은 원더우먼 역시 캡틴 아메리카와 함께 전쟁 프로파간다에 동원되었다. 마스턴은 남성우월주의자에다가 권위적이었으며 독일 스파이라는 마타도어도 겪은 적 있던 자신의 대학 시절 스승을 토대로 빌런인 닥터 사이코를 만들었다. 닥터 사이코는 가끔 추축국 지도자들의 가면을 쓰기도 했다. 2017년의 영화 “원더우먼”에 등장하는 빌런 중에서 서브 빌런의 위치에 있는 닥터 포이즌도 마스턴이 만든 빌런으로, 당시 설정으로는 일본 텐노인 히로히토의 여동생이었다.
원더우먼의 인기는 전쟁 스토리를 타면서 크게 상승했고, 1944년에는 신문의 코믹 스트립으로도 연재되었다. 신문 코믹 스트립에서 독립한 코믹스의 태생상, 다시 신문지면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금의환향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DC의 세 회사에서 1940년대에 이를 이룩한 캐릭터는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셋뿐이다. 반면 경쟁자인 타임리에는 신문으로의 금의환향에 성공한 캐릭터가 아직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유능한 여성을 일컬을 때 원더우먼에 비유하곤 한다. 비슷한 남성을 일컬을 때 수퍼맨을 비유로 가져오는 것처럼.
1940년대의 수퍼히어로 시장은 빅뱅을 터뜨렸고, 후일 문화사에 기록될 캐릭터들을 만들었고,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당대 사회의 담론을 흡수하고 때로는 선도했다. 2차대전은 이 시장이 장기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1940년대 시장의 진짜 1등은 수퍼맨도 네이머도 캡틴 아메리카도 원더우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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