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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n May 31. 2020

거의 완전한 슈퍼히어로 통사 2. 3/4

2. 빅뱅과 골든에이지 (3/4)


어린이용 수퍼히어로캡틴 마블     


  40년대 당시에는 포셋 퍼블리케이션즈 Fawcett Publications 라는 회사가 있었다. 스페인 전쟁 참전 군인 출신의 윌리엄 포셋 William Fawcett 이 설립한 잡지 출판사였다. 이들은 수퍼맨과 배트맨의 성공을 보자마자 곧바로 만화부서로 포셋 코믹스를 설립했다. 포셋은 유머, 호러, 범죄, 판타지 등등의 장르도 출판했지만, 수퍼히어로도 하나쯤은 있어야 만화 출판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셋은 계약한 작가들 중에서 아이디어 있는 사람을 찾았다. 회사가 원하는 컨셉을 당시 유통 담당자였던 로스코 켄트 포셋 Roscoe Kent Fawcett 이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수퍼맨을 주세요. 성인이 아닌 10~12살 이상의 소년으로 바꿔서.

  포셋에서 일하던 작가 빌 파커 Bill Parker 는 번개를 특징으로 하는 캡틴 썬더 Captain Thunder 라는 캐릭터를 구상했다. 그림작가인 찰스 클라렌스 벡 Charles Clarence Beck, 통칭 C. C. 벡이 흰 망토에 황금색과 붉은색을 섞은 코스튬과 번개 모양의 로고를 디자인했다. 캐릭터의 본명은 회사 설립자의 별명이었던 캡틴 빌리를 따서 빌리 뱃슨 Billy Batson 이 되었다. 캡틴 썬더라는 이름은 출시 직전에 캡틴 마블 Captain Marvel 로 바뀌었다.


  이 이름은 마블 코믹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타임리 코믹스가 현재의 사명으로 바꾼 것은 먼 훗날인 1961년이다. 4, 50년대의 '마블 코믹스'는 타임리 코믹스가 발행하는 만화 잡지의 제목일 뿐이었다. 당시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우연이 후일 문제의 씨앗이 된다.


  캡틴 마블의 컨셉은 어린이가 특정 키워드를 외우면 어른 몸의 수퍼히어로로 변신하는 설정이다. 변신 마법 소년소녀 캐릭터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그 키워드, 주문은 샤잠 SHAZAM 인데 이는 신으로 추앙받은 고대 영웅 6명의 이니셜이며 보유한 능력의 분류명이기도 하다.


1. S / 솔로몬의 지혜 : 기억력과 지적 능력이 강화된다지만, 전개상 묘사가 잘 안 되는 능력이다.

2. H / 헤라클레스의 힘 : 왠만해선 초인 수준의 완력이 빠지지 않는다.

3. A / 아틀라스의 체력 : 스테미너와 인내력 외에도 강한 내구도가 여기에 들어간다.

4. Z / 제우스의 권능 : strength가 아닌 power라서 권능/권위로도 해석된다. 변신 상태의 수명이 불멸이며, 제우스의 능력답게 전자기의 조작이 가능해져 전기를 흡수하고 번개를 만들 수 있다.

5. A / 아킬레스의 용기 : 용기와 정신력이 충만하단다.

6. M / 머큐리의 속도 : 원한다면 음속 혹은 광속에 가깝게 이동할 수 있다. 비행 능력도 여기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7번째 잃어버린 능력 설정도 있었지만 초기에나 쓰였고 현재는 거의 사장된 설정이다.


  빌리 뱃슨은 고아 소년이다. 회사명에서 지명을 가져온 포셋 시티에 살며,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가 대마법사에게 소환되었다. 대마법사는 선한 심성의 소유자인 빌리를 자기 후계자로 정하고는, 자신의 이름이자 초능력의 요약인 주문인 ‘샤잠’을 가르쳐주며 힘을 넘겨주었다. 빌리가 샤잠을 외치면 하늘에서 번개가 쾅 떨어져 빌리에게 닿고, 그러면 어른 형태의 수퍼히어로인 캡틴 마블이 된다.


  이렇게 설정이 만들어진 캡틴 마블은 1940년 2월에 발매된, 판매는 1939년 12월부터 시작된 위즈 코믹스 Whiz Comics 의 #2 이슈에서 데뷔했다. 제호인 위즈 역시 회사의 창립자인 윌리엄 포셋이 발간했던 잡지 ‘캡틴 빌리의 벼락출세’ Captain Billy’s Whiz Bang 에서 따왔다. 위즈라는 단어는 작중에서 빌리 뱃슨이 라디오 리포터로 진로를 선택할 때의 방송국 이름에도 쓰였다.


캡틴 마블의 첫 데뷔 표지. 자동차를 던지는 모습이 액션 코믹스 #1 표지의 수퍼맨과 유사한 점에 주목하라.


  위즈 코믹스라는 제호는 원래 플래시 코믹스나 스릴 코믹스로 정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플래시 코믹스라는 제호의 만화를 올 아메리칸에서 1940년 1월 예정으로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포셋에 들어왔다. 다른 후보였던 스릴 코믹스 역시 어떤 회사에서 스릴링 코믹스라는 만화를 준비 중이라기에 급히 바꾼 제호가 위즈 코믹스다. 캡틴 썬더라는 이름 역시 같은 제목의 영화가 30년대에 있던 것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바꾼 것이다. 이름의 경우엔 너무 늦게 바뀌어서, 최종 출판 원고에도 이름이 캡틴 썬더로 쓰여 있었기에 급하게 식자를 덧써서 바꿔야 했다.



40년대의 최고 승자     


  재미있는 점은, 위즈 코믹스는 #2부터 유통 판매되었다는 점이다. #1 이슈는 판매도 유통도 생산도 되지 않고 법적으로만 존재한다. 미국 출판만화의 초기엔 애쉬캔 카피 ashcan copy 라는 수법이 있었다. 새로 만드는 잡지의 빠른 상표 등록과 그로 인한 빠른 홍보를 위해 #1 이슈를 극소량만 출판하는 것이다. 보통 다섯 부 이하, 대부분 2부 정도만 인쇄하고 채색도 하지 않아 흑백이다. 한 부는 당국에 보내 상표권을 만들고 그 외의 출판본은 직원들이 기념품으로 가지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목조난로를 때던 당시 난로의 재를 담아 버리던 쓰레기통을 ash can이라 불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재는 독립출판 만화가 테스트베드, 킥스타터 용도로 출판 혹은 업로드하는 베타 버전에 이런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애쉬캔 카피에 대응되는 한국어 번역어는 없다. 홍보야 광고를 미리 내면 되는 것이고, 상표권을 빨리 등록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법무팀을 꾸리는 쪽이 더 매끄럽고 편하다. 그래서 포셋과 올 아메리칸에서 몇 번 사용한 후에 애쉬캔 카피 수법은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굳이 한국어로 의역이라도 해보자면 ‘파기할 예정의 출판본’이라는 의미를 현지화시켜 세절본이라는 식으로 단어를 만들 수 있고, 더 의역하면 의도는 약간 다르지만 존재하는 단어인 가제본 정도가 가능하다.


현존하는 애쉬캔 카피 대다수는 보존이 되지 않아 표지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위즈 코믹스 #2의 이전 이슈는 플래시 코믹스 제호로 한 부, 스릴 코믹스 제호로 한 부, 총 2부의 애쉬캔 카피가 남아 있다.


  위즈 코믹스 #2는 첫 발매부터 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화려한 데뷔를 했다. 이후 지속적인 판매고 성장을 보였기에 캡틴 마블은 1941년에 캡틴 마블 어드벤처 Captain Marvel Adventures 라는 제목으로 솔로 타이틀을 받았다. 캡틴 마블 어드벤처는 계간 이슈 느낌으로 시작해 금방 월간 이슈로 자리잡았다. 이 프로젝트에는 당시 타임리를 막 떠나서 다시 유목 작가 생활로 돌아간 조 사이먼 - 잭 커비 콤비라는 거물들도 투입되었다.


  또한 캡틴 마블은 최초로 영상화된 수퍼히어로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1941년에 12개의 옴니버스 연작 단편이 엮인 ‘캡틴 마블의 모험 Adventures of Captain Marvel’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극장 개봉을 했다. 1944년에는 캡틴 마블 어드벤처가 최고 1400만 부 가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포셋 코믹스의 플래그십 상품이 된 동시에 판매량에서 수퍼맨을 앞질러 버린 것이다.


  포셋 코믹스가 노린 타겟층은 철저히 아동이었다. 이 지점이 성공의 비결이다. 수퍼맨 또한 불살 컨셉을 갖고 배트맨 또한 범죄탐정물답지 않게 분위기가 밝아지는 등 아동 독자들을 노린 측면이 있지만, SF 설정보다는 동화적인 마법 설정이 아동들에게는 훨씬 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입에 착 붙는 주문 하나로 단번에 어른이, 그것도 수퍼히어로가 된다는 설정은 아동들에게 큰 어필 요소가 되었다. 또한 그림작가 벡의 스타일은 묘사와 전개에 있어 사실적 방향 대신 동화적인, 요즘식으로 해석하면 ‘만화적’인 방향을 선호했다. 이것이 캡틴 마블만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냈다.


  특히 2차대전이라는 붐업 기회는 캡틴 마블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였다. 전쟁이라는 것이 원래 전쟁 범죄를 어느 정도 포함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추축국이 저지르고 있는 전쟁 범죄는 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인종 청소에서 생체 실험까지 하여 미증유의 전쟁 범죄를 가능하게 한 이념인 파시즘은, 악이라고 가치판단을 내려도 무리가 없었다. 이권 위주로 충돌하는 전쟁은 선악 구도의 가치판단이 어렵지만, 2차대전은 그렇게 이해해도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캡틴 마블은, 당대의 수퍼히어로 장르가 대부분 그랬지만, 동화 특유의 선악 구도로 짜여져 있다. 아동 독자들이 2차대전을 당시의 나이로 이해하기 쉬운 미디어 프레임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성인 독자들에게도 편한 구도다.


  그리하여 빌리 뱃슨, 캡틴 마블의 브랜드는 마블 패밀리라는 형태로 확장을 시작했다. 이는 원작자인 빌 파커의 의도이기도 했다. 파커는 원탁의 기사를 모델로 삼아, 캡틴 마블을 원탁이 리더격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담당 작가들은 빌리 뱃슨이 가진 샤잠의 힘을 공유하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마블 패밀리로의 확장     


  1941년 위즈 코믹스 #21에서는 부관 마블 Lieutenant Marvel 이라고 불리는 3인이 등장했다. 이들은 빌리 뱃슨과 동명이인인 세 사람이었는데, 빌리가 샤잠의 힘을 얻게 되면서 이름이 같은 탓에 덩달아 능력을 얻었다는 설정이었다. #25에서는 빌리의 친구 중 하나인 프레디 프리먼 Freddie Freeman 이 같은 능력을 얻어 캡틴 마블 주니어 Captain Marvel Jr. 라는 이름으로 수퍼히어로가 되었다. 1943년 캡틴 마블 어드벤처 #18에서는 빌리의 자매인 매리가 같은 능력과 함께 매리 마블 Mary Marvel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확장을 위해 발전된 설정은 이렇다. 캡틴 마블 이전에 힘을 받았던 후계자는 블랙 아담 Black Adam 이라는 사람이었다. 초기 설정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왕자, 후기 설정으로는 칸다크라는 중동의 가상국가 출신의 전직 수퍼히어로다. 블랙 아담은 계승받은 힘을 독차지했다. 사이드킥이 있는 경우라 해도 아내와 처남 정도였고, 후기에는 그나마도 없다. 블랙 아담의 타락에 좌절하고 타격을 입은 대마법사는 현대가 되어서야 빌리 뱃슨을 새 후계자로 고른 것이다. 그 선택에 부응하듯 캡틴 마블은 블랙 아담과 달리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 및 친구와 힘을 나누었다. 이 가족이 혈연 기준이 아니라는 점은 이민자 국가인 미국의 속성과 비교해보면 의미심장한 부분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수퍼히어로 패밀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가족을 마블 패밀리라고 부른다.


  매리는 빌리 뱃슨과 쌍둥이 남매 혹은 수양자매다. 이름도 매리 뱃슨 Mary Batson 과 매리 브롬필드 Mary Bromfield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보통은 어려서 헤어진 이란성 쌍둥이에 입양 후 성이 브롬필드가 된 설정이 메인이다. 프레디 프리먼은 빌리의 친구이자 신문팔이로 처음 등장했는데, 캡틴 마블의 적 중 하나인 캡틴 나치 Captain Nazi 에게 공격 받아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프레디의 팬이었는데, 그래서 엘비스가 프레디의 헤어스타일과 망토, 로고 디자인을 따라했다는 것은 증명된 얘기다. 그리고 프레디는 빨간색을 쓰는 빌리/매리과 달리 달리 코스튬의 색이 파란색이고 매리 또한 곧 흰색을 쓰게 되어 차별화가 되었다. 매리와 프레디는 성인의 형태로 변신하는 빌리와 달리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다. 보통 빌리는 CM1, 매리는 CM2, 프레디는 CM3로 지칭하기도 한다.


  전대물이나 합체로봇물의 1호기, 2호기 같은 느낌이 든다면 기분탓이 아니다. 원탁의 기사 류의 팀업 영웅서사가 전대물의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 어딘가에 마블 패밀리가 있다. 어쩌면 전대물의 1호기 캐릭터를 상징하는 색이 붉은색인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후 엉클 마블 Uncle Marvel 이라는 당황스러운 아저씨 수퍼히어로도 마블 패밀리에 합류했고, 호랑이인 토키 토니 Tawky Tawny 와 토끼인 호피 더 마블 버니 Hoppy the Marvel Bunny 까지 데뷔했다. 엉클 마블은 동화의 구도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어린이들을 잘 이해하고 같은 편이 되어주는 좋은 어른의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만든 버전이고, 토키 토니와 호피는 동화에 등장하는 ‘말하는 동물’ 캐릭터를 수퍼히어로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모든 면에서, 아동을 주타겟층으로 공략하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CM1~3에 엉클 마블, 부관 마블 3인, 토키 토니까지 합한 최초의 마블 패밀리 멤버들.

호피를 제외하면 완전체로, 40년대 당시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현대식으로 그려냈다.

당시 디자인과 다른 점은 매리 마블의 코스튬이 후일 리뉴얼된 버전인 흰색이라는 점과

캡틴 마블 주니어의 헤어스타일이다.


엘비스는 캡틴 마블 주니어 - CM3 - 프레디 프리먼의 팬이었다.



수퍼맨과의 법정 공방     


  캡틴 마블 브랜드의 이런 대성공을 지켜보는 DC, 그러니까 후일의 DC 코믹스가 되는 세 회사 - 내셔널 얼라이드, DC 코믹스 INC., 올 아메리칸은 기분이 딱히 좋지 않았다. 특히나 이들이 보기엔 캡틴 마블은 수퍼맨의 표절 캐릭터였다. 사실 캡틴 마블만이 아니었다. 수퍼맨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캐릭터는 폭스 피처 조합이 내놓은 원더맨 Wonder Man , 역시 포셋 출판사가 내놓은 마스터맨 Master Man 등이 있었다. (이 캐릭터들과 이름이 같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히어로와 수퍼빌런 캐릭터가 있지만, 무관하다.)


  당시 내셔널 얼라이드 밑에는 수퍼맨의 저작권과 판권을 종합 관리하고 있는 자회사 수퍼맨 INC.가 있었는데, 이 법인을 중심으로 원더맨과 마스터맨에 대한 소송이 들어갔다. 이 경우엔 폭스와 포셋이 쉽게 캐릭터를 접고 판매를 중지했다.


  그리고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는 1941년 6월, 캡틴 마블의 만화와 영화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이 접수 되었다. 이전 건에서는 접어주었던 포셋이지만 최대 히트 상품인 캡틴 마블에 대해서는 양보를 해줄 수가 없었다. 결국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은 실패했다. 그러자 수퍼맨 측은 바로 직후인 9월에 정식 소송에 들어간다.


  이 소송의 1심은 1948년까지 7년을 끌었다. 소송의 주된 쟁점은 “캡틴 마블은 수퍼맨의 표절작이다.”였다. 수퍼맨 측의 주장은 이러했다.

설정된 초능력이 같다. 데뷔 이슈 표지의 액션 장면도 같은 테마다. 코스튬의 디자인도 비슷하다.

  캡틴 마블 측, 즉 포셋의 입장은 이러했다.     

설정상 SF와 판타지라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건 같은 장르에 속하는 작품이니 아류작이나 모방작이라고 봐야 한다.

  양측의 작가들과 편집자들이 증인으로 나왔고, 포셋의 직원들도 증인으로서 법정을 출석해야 했다. 현재 정리되어 있는 증언록이 150페이지가 넘는다. 수퍼맨 측은 캐릭터의 설정과 디자인 외에도 수퍼맨의 액션 장면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비교점들을 증거로 제출했고, 포셋은 그 이전의 다른 영웅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에도 유사한 장면들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방어했다.


  해가 갈수록 소송은 점점 복잡해졌다. 수퍼맨 측은 캡틴 마블과 함께 위즈 코믹스 #2에서 데뷔한 빌런, 닥터 시바나 Doctor Sivana 가 렉스 루터와 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인 것을 보니 표절이 맞다고 공격했다. 캡틴 마블 측은 수퍼맨의 저작권 자체에도 복잡한 스토리가 얽혀있는 점을 발견했다.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가 여러 신문 조합에 원고를 제출했던 역사, 제리 시걸이 다른 그림작가와 협업하여 비록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슈를 제작한 적이 있는 역사가 발굴되었다. 포셋 쪽 변호사는 ‘따라서 내셔널 얼라이드와 수퍼맨 INC.가 수퍼맨의 저작권을 독점적으로 대표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는 공격으로까지 나아갔다.


  1심은 캡틴 마블의 승리였다. 포셋 변호사들이 파헤친 수퍼맨의 출판 스토리에 기반한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수퍼맨 측은 항소했다. 이때는 더 이상 세 회사가 아니었다. 1946년, 내셔널 얼라이드 퍼블리케이션즈와 DC 코믹스 INC.와 올 아메리칸 코믹스의 세 회사는 하나가 되었다. 먼저 내셔널 얼라이드와 DC 코믹스 INC.가 통합하여 내셔널 코믹스 퍼블리케이션즈 INC. National Comics Publications INC. 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고, 그 다음에 올 아메리칸을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내셔널 코믹스는 이후 1961년에 내셔널 피리어디컬 퍼블리케이션즈 INC. National Periodical Publications INC. 로 사명을 변경하고, 1977년에는 다시 DC 코믹스 INC.로 변경하게 된다. 이 합병이 있은 후인 50년대 초반부터 이 회사는 수퍼맨과 디텍티브 코믹스를 내세워 ‘수퍼맨-DC’라는 홍보 라인을 내세웠기 때문에 편의상 1946년부터를 DC 코믹스로 친다.


  아무튼 세 회사를 하나로 합친 DC 코믹스의 항소를 담당한 2심 법원은 제2연방항소법원이었다. 주요 쟁점에 대한 공방 논리는 1심에서 거의 다 나왔기에 2심은 3년만에 마무리되어 1951년에 판결이 나왔다.


  포셋의 부분패소였다. 핸드 판사는 캐릭터의 유사성에서는 표절을 판단할 수 없지만, 스토리 전개와 연출에 있어서는 표절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남은 것은 3심. 하지만 포셋은 3심 상고를 포기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시장 환경이 변했다. 1950년대가 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가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40년대처럼 기를 쓰고 이 상품을 지켜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둘째, 소송 비용이 부담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DC는 전신인 세 개 회사에서 만들어낸 많은 히트 캐릭터가 있었지만, 포셋은 아무리 그 인기가 컸다 한들 히트 캐릭터가 캡틴 마블 하나, 확장해봐야 마블 패밀리의 세 명 정도였다. 더 이상은 만화의 수익이 소송비용을 만들어내주지 않았다. 결국 포셋은 수퍼히어로 만화 사업을 더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손해배상금 40만 달러를 지불하고 캡틴 마블 브랜드의 발행을 순차적으로 중단해 나갔다.



캡틴 마블의 몰락골든 에이지의 황혼     


  포셋이 발간하던 수퍼히어로 출판 만화 중에서 마스터 코믹스가 제일 먼저인 1953년 3월에 폐간되었다. 주력이었던 위즈 코믹스는 6월에, 캡틴 마블 어드벤처는 9월에 폐간되었다. 매리 마블이 메인이었던 와우 코믹스는 이와는 별개로 1948년에 이미 끝나 있었고, 마블 패밀리가 1954년 1월에 폐간되면서 포셋 출판사의 캡틴 마블 브랜드는 완전한 캔슬로 결론났다. 이 과정에서 호피 더 마블 버니는 찰튼 코믹스 Charlton Comics 라는 회사에 판매되었다. 찰튼은 구매해온 호피를 캡틴 마블이나 수퍼히어로와는 무관한 캐릭터로 발전시켰다.


호피 더 마블 버니. 시리즈 캔슬로 헤어진 마블 패밀리의 멤버들은 후일 DC 코믹스 산하에서 재회한다.


  40년대의 수퍼히어로 탄생과 호황의 황금기, 그 과실을 가장 많이 누린 승자는 캡틴 마블을 대히트시킨 포셋 코믹스였다. 이 시기, 즉 수퍼맨이 데뷔한 1939년부터 2차대전의 전후 처리와 사회적 극복이 끝나간 1950년까지의 시기를 골든 에이지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연도를 학자들이 정의하긴 했지만, 골든 에이지를 최초로 명명한 문헌은 1963년 11월에 마블 코믹스에서 발간된 스트레인지 테일즈 Strang Tales 의 #114 이슈 표지였다.


캡틴 아메리카와 휴먼 토치의 대결을 황금기의 귀환으로 규정한 이 표지에서 골든 에이지라는 시대 구분명이 처음 시작되었다.


  이 황금기는 2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 점차 하락세로 들어섰다. 모든 만화의 판매량이 하락했다. 2차대전으로 인해 대공황도 졸업했고 2차대전 자체의 비극도 극복해나갔다. 수퍼히어로들이 추축국에 대항해 정의의 전쟁에 참여하는 이야기는 이제 재미가 없었다. 미국은 이제 분노나 좌절을 위로하며 어느 방향이 선한 것인지 가리켜 보일 영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수퍼히어로를 필두로 하여 만화 산업 전체가, 매우 많은 만화 출판사와 만화를 다루는 조합들이, 2차대전 이후에 사라지거나 사업 영역이 크게 좁아졌다. 50년대 초중반은 미국 출판 만화의 거품이 걷힌 암흑기였다.


  이 암흑기를 제대로 버텨낸 출판사는 DC와 아틀라스, 둘이 대표적이다. DC는 세 회사를 합쳐 내셔널 피리어디컬인 상태였고 아틀라스는 타임리 코믹스가 사명을 처음 변경한 1951년부터의 이름이다. 현재의 양대 산맥은 이 암흑기를 견뎌내고 제2의 부흥기인 실버 에이지를 연 회사들이다.


  두 회사가 수퍼히어로의 암흑기를 지나 실버 에이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각자 다르다. DC는 빅3인 트리니티의 막강한 존재와 이들을 뒷받침하는 2군급 히트 캐릭터들이 많았다. 마블은 빅3조차도 암흑기에서 맥을 못 췄지만 스탠 리라는 수퍼히어로급 작가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스탠 리는 젊은 편집자 겸 작가에 불과하다. 그의 재능이 꽃을 피워 거장으로 성장하며 회사를 급성장시키는 시기는 60년대부터다. 그리하여 40년대 골든 에이지의 이야기는 DC의 나머지 토대가 되어줬고 지금도 살아있는 캐릭터들로 이어진다.



DC의 확장과 가드너 폭스     


  1940년대의 왕으로 빌리 뱃슨이란 어린이가 군림하고 있는 동안, 왕좌를 빼앗긴 DC 코믹스의 전신 3회사는 수퍼히어로 장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그들은 이 시장의 선구자들이었고, 1위의 자리는 내줄지언정 프론티어의 위치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양질의 면에서 가장 큰 영역을 개척한 회사들이기도 했다.


  디텍티브 코믹스를 발간하는 DC 코믹스 INC.는 배트맨 프랜차이즈로 채워졌다. 이들의 주력 상품은 배트맨, 로빈, 그리고 조커 이하 다양한 빌런들로 충분했다. 배트맨의 빌런들을 늘여가는 것이 이들의 확장 전략이었다.


  올 아메리칸 코믹스의 경우엔 가드너 폭스 Gardner Fox 라는 의욕 넘치는 작가가 등장했다. 본래는 법학을 전공했으나 대공황 시기에 취직이 잘 안 됐는지 만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해 대성한 사람이다. 폭스는 상당한 지식광으로, 늘상 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습득한 역사, 과학, 신화 등의 지식을 자기 작품에 주요한 테마나 소재로 집어넣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그런 폭스가 만든 수퍼히어로 중 올 아메리칸에서 만든 둘과 내셔널 얼라이드에서 만든 하나, 합쳐서 셋은 지금도 생명력을 갖고 있다.


 올 아메리칸에서 폭스가 만든 캐릭터는 여러 캐릭터 중에서 대표격은 플래시 Flash 와 호크맨 Hawkman 이다. 폭스가 만든 플래시는 본명이 제이 개릭 Jay Garrick 이고 통칭 1대 플래시, 올드 플래시, 오리지널 플래시 등으로 불린다. 빛에 근접한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는, 당시 시장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초능력을 보유했다. 그림작가는 해리 램퍼트 Harry Lampert 였다. 제이 개릭은 위즈 코믹스로 하여금 제목을 바꾸게 했던 플래시 코믹스 Flash Comics 의 #1 이슈에서 1940년 1월자로 데뷔했다. 제목만 보면 플래시의 독립 타이틀로 보이지만, 1년 뒤에 진짜 솔로 시리즈인 올-플래시 All-Flash 가 발간됐다.


  제이 개릭이 오리지널 플래시로 불리는 이유는, 암흑기가 지난 이후 실버 에이지에 등장한 플래시의 이름은 제이 개릭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스튬 디자인도 다른데, 제이 개릭은 붉은 셔츠에 블루 진, 그리고 날개 달린 철모를 쓰고 있다. 실버 에이지에 리뉴얼된 새 플래시는 그때 이야기하기로 하자. 아무튼 리뉴얼 되었다는 이야기는, 제이 개릭은 암흑기를 버티지 못한 캐릭터라는 의미다. 물론 현재는 올드 플래시로 계속 출연하고 있다. 이 리뉴얼의 방식으로 인해 암흑기에서 재부흥기인 실버 에이지로 넘어가고 이후 수퍼히어로 장르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할 이야기다.


플래시 코믹스 #1의 표지. 왼편에는 함께 연재되고 있는 캐릭터들이 있는데, 가장 위에 호크맨이 보인다.


  SF 계열의 상상력이 발휘된 플래시와 달리 호크맨 Hawkman 은 신화 계열의 수퍼히어로다. 역시 가드너 폭스의 작품이며, 그림작가는 데니스 네빌 Dennis Neville 이다. 플래시와 함께 플래시 코믹스 #1에서 데뷔했으며, 고대 이집트 신화를 반영했다. 그리스 신화를 반영한 원더우먼보다 1년여 가량 빨랐다. 그러고 보면 미국의 주요 도시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는 미국에 이집트 문명의 영향이 일부나마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품일지도 모른다.


  호크맨은 매를 본뜬 헬멧형 마스크를 쓰고, 날개를 달고 있으며, 노랑-빨강-초록을 조합한 코스튬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무기는 주로 철퇴를 쓴다. 초능력의 핵심은 벨트인데, N번째 금속 Nth Metal 이라 불리는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져 비행 능력을 부여한다.


  호크맨은 고대 이집트의 쿠푸 왕자로, 연인 샤이아라와 함께 한 사제에게 저주받은 단검, N번째 금속으로 만든 단검으로 살해당하고 영원히 환생하는 저주에 빠지고 만다. 1940년대에 쿠푸는 카터 홀 Carter Hall 이라는 남성으로, 샤이아라는 시이라 손더스 Shiera Saunders 라는 여성으로, 사제는 안톤 하스터 Anton Hastor 라는 남성으로 환생한다. 직업이 고고학자인 카터 홀은 자신의 전생인 쿠푸를 죽인 그 단검을 만져 전생의 기억을 회복하고는 하스터가 납치해간 손더스를 구출하기 위해 N번째 금속으로 벨트를 만들고 날개 코스튬을 입어 호크맨이 된다. 구출된 시이라 손더스는 연인의 사이드킥이 되어 호크걸 Hawkgirl 이 된다. 호크맨과 호크걸은 암흑기의 힘겨움을 이겨내지 못했고 60년대에 리뉴얼 된다. 설정이 대대적으로 변경되었는데, 그 변경 또한 가드너 폭스가 담당했다.


  창작력이 넘쳐났던 가드너 폭스는 올 아메리칸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내셔널 얼라이드에서도 만화를 연재했다. SF 색채 하나, 신화와 역사 색채 하나를 만들고 있던 1940년 5월, 내셔널 얼라이드에서 신화와 오컬트 색채의 닥터 페이트 Doctor Fate 를 만든 것이다. 닥터 페이트는 모어 펀 #55 이슈에서 데뷔했다.


  켄트 넬슨 Kent Nelson 과 그의 아버지는 고고학자 부자로, 고대 유적을 발굴하던 도중 나부 Nabu 라는 고대 마법사의 무덤을 열어 나부의 영혼을 깨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넬슨이 사망하는 바람에 미안해진 것인지, 나부는 자신의 힘과 코스튬을 켄트 넬슨에게 전수해준다. 그 코스튬이란 투구, 망토, 아뮬렛이다. 이제 켄트 넬슨은 초자연적 힘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미국에 돌아와서는 메사추세츠의 범죄와 영적 세계의 위협을 막는 수퍼히어로, 닥터 페이트가 되었다.


닥터 페이트가 표지에 등장한 모어 펀 코믹스 #66 이슈의 표지. 트레이드마크인 노란 망토와 나부의 헬멧, 목에 건 아뮬렛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닥터 페이트의 솔로 스토리는 1944년에 완결 단계로 들어서고, 이후에는 다른 캐릭터들을 뒷받침하는 서브 캐릭터로 후퇴했다. 그렇게 뜸해지다가 암흑기에 사라지고, 먼 미래인 1980년대에 부활해 DC의 마법 계열 캐릭터의 대부격 위치로 대우받게 된다.



스펙터와 그린랜턴     


  오컬트 계통의 수퍼히어로는 닥터 페이트만이 아니었다. 닥터 페이트의 데뷔 직전인, 1940년 2월에 스펙터 The Spectre 라는 이름의 안티 히어로가 데뷔했다. 짐 코리건 Jim Corrigan 이라는 형사가 약혼식장에서 참극을 당한다. 갱들에 의해 약혼녀를 살해당하고 자신은 시멘트 통에 갇혀 물에 던져진 것이다. 죽어버린 코리건은 복수심으로 인해 사후세계로 가는 것을 거부했고 어떤 목소리에 의해 반 유령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이제 코리건은 스펙터라 불리는 징벌자의 영혼의 숙주가 되어 살아가며 범죄와 같은 악에서 본질적 악까지 모든 종류의 악을 징벌하게 되었다.


스펙터의 첫 등장, 모어 펀 코믹스 #52. 이미 죽어보았기에 징벌자로서의 수위와 과단성은 배트맨 이상이다.


  스펙터 – 짐 코리건을 부활시킨 목소리는 신으로 추정되고, 그래서 제한적이나마 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이런 오컬트 계통의 설정은, 신기하게도, 수퍼맨의 창조자인 제리 시걸이 만들어냈다. 그림 작가로 버나드 베일리 Bernard Baily 가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미미했다고 한다. 스펙터는 암흑기를 버텨내지는 못했지만 닥터 페이트보다는 훨씬 빠른 1966년에 가드너 폭스의 손으로 재발굴된다. 현재 스펙터는 솔로 시리즈가 없는 대신 닥터 페이트와 함께 마법과 오컬트 계열의 캐릭터들 중 최상위로 취급받고 있다. 가드너 폭스는 이렇게 폭주에 가까운 창작을 마구 해내면서 2군 캐릭터의 로스터를 양질로 채웠다.


  한편 올 아메리칸에 가드너 폭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작가 마틴 노델 Nartin Nodell 은 맨해튼 34번가 지하철에서 선로를 순찰한 순찰꾼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순찰꾼이 선로를 점검하기 위해 터널로 들어갈 때 손에 드는 랜턴, 즉 등불을 보고 그에 기반한 디자인이 떠오른 것이다. 여기에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보았던 니벨룽겐의 반지 이미지를 결합해보았다. 마법 반지를 끼고 이 반지를 랜턴에서 충전하는 수퍼히어로의 모습이 나왔다. 이름은 전화번호부에서 마음에 드는 이름 두 개를 조합해서 앨런 스콧 Alan Scott 으로 정했다.


  이 아이디어가 편집부를 통과했고, 스토리 작가로 배트맨의 빌 핑거가 정해졌다. 그렇게 1940년 7월, 철로 엔지니어 출신의 수퍼히어로 그린랜턴이 올 아메리칸 코믹스 #16에서 데뷔했다. 반지의 능력은 딱히 구체적으로 명시된 적은 없지만 작중 묘사로 보면, 비행 능력과 염동력과 초록색 빔을 발사하는 등의 능력을 부여해준다. 다만 약점으로 나무 재질의 물체에 약하다는 설정이 주어졌고, 최소 24시간에 한 번 이상 충전해야 한다는 제약도 생겼다.


최초의 그린랜턴, 앨런 스콧의 첫 데뷔인 올 아메리칸 코믹스 #16의 표지. 초록 위주에 빨강, 노랑, 보라가 섞여들어간 복잡한 배색을 하고 있다.


  앨런 스콧은 수퍼히어로 암흑기를 제대로 견뎌내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실버 에이지에 플래시와 같은 방식으로 리뉴얼 되는데, 이 역시 곧 하게 될 이야기다.



최초의 히어로 팀, JSA     


  이상의 캐릭터들을 모아서 하나의 팀으로 조직하자는 아이디어가 올 아메리칸의 편집부에서 나왔다. 마블 패밀리의 성공 사례를 참고했을지도 모른다. 팀업을 맡을 작가는, 역시나 주체할 수 없는 창작력의 가드너 폭스였다. 최초의 수퍼히어로 팀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 오브 아메리카 Justice Society of America, 통칭 JSA가 탄생했다.


역사상 최초의 수퍼히어로 팀이 된 JSA


  JSA가 소집된 올스타 코믹스 #3는 1940년 겨울호였다. #1과 #2는 각 캐릭터들의 개별 스토리를 모은 합본이었고, #3부터 팀명이 정해지고 멤버들이 함께 등장하는 팀업 스토리가 시작된 것이다. 스토리는 폭스가 맡았고, 폭스를 컨트롤할 편집자는 셸든 메이어 Sheldon Mayer 가 배정됐다. 메이어 또한 베테랑이었다. 휠러-니콜슨 시절의 내셔널 얼라이드에도 있었고, 이후에는 그 유서 깊은 델 출판사와 맥클루어 조합을 거쳤다. 맥스 게인즈가 DC 경영자 라인업에 합류할 때 함께 올 아메리칸으로 옮겨, 회사의 첫 편집자가 되었다. 그리고 원더우먼의 기획 단계에서도 개입한 적이 있다.


  #7에서는 수퍼맨과 배트맨도 잠시 동참하고, #12에는 원더우먼도 JSA에 합류하는데, 메이어의 경력을 고려해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원더우먼이 리더나 메인 멤버가 아닌 비서 포지션으로 정해진 것이다. 원더우먼은 세상을 지배하고 선도할 자격이 있는 캐릭터로 디자인되었기에 비서 역할은 철저하게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다. 게다가 설정상 반신이기에 스펙터를 제외하면 신성도 갖고 있지 않아 자신보다 하급의 존재들, 심지어는 시장에서의 판매량도 훨씬 적은 캐릭터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이 된 것이다. 폭스와 메이어를 비롯한 기획 및 스토리 담당들의 원더우먼에 대한 몰이해를 짐작해볼 수 있다.


  올스타 코믹스가 올 아메리칸에서 발간하는 잡지였기에, JSA의 멤버들은 대부분은 올 아메리칸 소속의 캐릭터들로 꾸려졌다. 오컬트 계열의 스펙터와 닥터 페이트만이 내셔널 얼라이드 소속에서 출장 나온 경우다. 따라서 JSA의 주요 멤버들은 곧 올 아메리칸의 주력 상품이기도 했다. 플래시 제이 개릭, 호크맨 카터 홀, 그린랜턴 앨런 스콧, 그리고 원더우먼.


  한편 수퍼맨과 스펙터와 닥터 페이트가 소속되어 있는 내셔널 얼라이드에서는 다른 상품으로 어떤 캐릭터들이 있었을까.



모방작들아쿠아맨과 그린 애로우     


  올 아메리칸에 가드너 폭스라는 다작 작가가 있었다면, 내셔널 얼라이드에는 모트 와이징어가 있었다. 수퍼맨의 SF적 설정을 다듬은 편집자이기도 했던 와이징어는 작가로서 두 수퍼히어로를 만들어 후세에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둘 다 모방작이다.


  1941년 11월호인 모어펀 코믹스 #73에서 나란히 데뷔한 아쿠아맨 Aquaman 과 그린 애로우 Green Arrow 가 모트 와이징어의 작품이다. 아쿠아맨은 타임리의 네이머를 모방했고, 그린 애로우는 형제 회사의 배트맨을 모방한 결과물이다.


모어펀 코믹스 #73에 수록된 아쿠아맨의 첫 페이지. 아쿠아맨은 데뷔 직후에 2차대전을 맞게 되었다 보니 나치의 악명높은 U보트를 주로 상대했다.


  아쿠아맨의 첫 그림 작가는 폴 노리스 Paul Norris 가 맡았고, 이견의 여지가 없는 네이머의 모방작이었다. 아틀란티스를 등장시킨 점, 주인공이 그 아틀란티스의 왕위 계승자인 점, 해저 문명과 지상 문명의 혼혈인 점이 완벽하게 같다. 다만 다크 히어로 내지는 안티 히어로로 전개된 네이머와 달리 아쿠아맨은 전통적 영웅상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되며 대부분의 경우엔 비웃음의 용도가 된 능력, ‘바다 생물과의 대화 가능’이라는 능력이 부각되었다.


  그린 애로우는 로빈 후드를 배트맨식으로 응용한 캐릭터였다. 여기에 에드가 월레스 Edgar Wallace 의 1932년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40년 영화 ‘녹색 궁수 The Green Archer’의 영향도 들어가 있다.


모어펀 코믹스 #73에 수록된 그린 애로우의 첫 페이지. 배트맨과 같은 계열의 비초능력자 도시 자경단 캐릭터다.


  첫 그림 작가는 조지 팹 George Papp 이 맡았다. 본명이 올리버 퀸 Oliver Queen 인 그린 애로우는 이름 그대로 녹색 복장에 활을 주무기로 삼으며, 도시에서 자경단 활동을 하는 갑부에 비초능력자다. 배트맨과 똑같이, 붉은 복장을 한 스피디 Speedy 라는 소년 사이드킥을 두고 있는데다가, 배트 접두사가 붙은 배트맨의 장비들을 본따서 애로우카나 애로우 플레인, 애로우 케이브 등도 등장했다. 활동 지역은 배트맨의 고담 시처럼 스타 시라고 명명된 가상의 도시다.


  관련자들이 남긴 증언을 토대로 추측해보자면, 이 두 캐릭터는 스펙터와 닥터 페이트가 주력이던 모어펀 코믹스의 남는 지면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추측에 따르면, JSA는 트리니티 3인방을 받쳐준다고 볼 수 있고, 이 두 모방작은 JSA를 받쳐주기 위한 백업 캐릭터로 볼 수 있다. 그에 어울리게 아쿠아맨과 그린 애로우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고, 인지도도 트리니티와 JSA 멤버들에 비해 많이 뒤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트리니티와 함께 암흑기를 버틴 캐릭터는 JSA에 들어가지 못한 이 둘이었다. 아쿠아맨과 그린 애로우는 연재 잡지를 변경해가면서 명맥을 유지했고, 그래서 설정 변경이 많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다.


  약간의 변경은 기원 스토리에 있다. 아쿠아맨의 골든 에이지 시절 설정은 아버지가 수중도시 아틀란티스를 발견해 거기에 정착한 탐험가였는데 이 설정은 실버 에이지에 등대지기로, 아쿠아맨의 혈통 역시 지상인과 해저인의 혼혈로 바뀐다. 그린 애로우는 변경 이전 골든 에이지 버전에서는 올리버 퀸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고고학자로 등장했다. 이 설정은 실버 에이지 다음의 시대인 브론즈 에이지에 회심한 백만장자 버전으로 바뀌게 된다.


  이상의 캐릭터들은 1946년의 세 회사 합병을 통해 한 회사로 집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통합회사 내셔널 피리어디컬, 편의상 DC 코믹스 산하에는 수퍼맨-배트맨-원더우먼의 빅3에 JSA 라인업, 그리고 아쿠아맨과 같은 마이너 캐릭터들까지 하여 수퍼히어로의 만신전이 꾸려졌다.


  DC가 이렇게 영역을 늘려가고 한편으로 포셋이 시장에서 왕좌를 차지할 동안, 타임리 코믹스 외의 다른 회사들도 앞다투어 수퍼히어로 시장에 참여했다. 몇십 개의 회사에서 가히 수백 명에 달하는 캐릭터가 쏟아졌는데, 그중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의미가 있는 캐릭터는 둘뿐이다.



군계이학블루 비틀과 플라스틱 맨     


  잭 커비가 조 사이먼을 만나 그를 통해 타임리 코믹스로 옮겨가기 전의 일이다. 커비가 사이먼을 만난 곳인 폭스 피처 조합에 있을 때였다. 잭 커비는 폭스 조합에서 일하면서 수퍼히어로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이름이 블루 비틀 Blue Beetle 이다. 댄 개럿 Dan Garret 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 캐릭터는 비타민 2-X라는 특수한 비타민(!)을 먹고 초능력을 얻으며, 후에는 설정이 변경되어 고대 이집트스러운 아이템인 ‘성스러운 풍뎅이’에서 힘을 얻는 것이 되었다. 이름답게 풍뎅이와 파란색이 테마가 된다.


1939년 발매된 블루 비틀 #1의 표지.


  첫 등장은 1939년 10월의 미스터리 멘 코믹스 Mystery Men Comics 의 #1 이슈였으니 상당한 고참 캐릭터다. 이후 자기 이름이 걸린 셀프 타이틀이 생겼으나 솔로는 아니었다. 다른 만화도 함께 실리지만 잡지 이름이 블루 비틀인 경우였다. 다만 블루 비틀의 경우엔 라디오 시리즈가 생기기도 했다. 평균 이상의 인기는 얻었던 것이다.


  특이한 점은, 블루 비틀의 창조자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폭스 피처 조합에는 소속 작가들로 하여금 사용하게 한 필명이 있었다. 찰스 니콜라스 Charles Nicholas 라는 필명이었다. 만화가 윌 아이즈너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즈너 & 아이거 스튜디오에서 처음 사용했고, 이 관습이 폭스 피처 조합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폭스 조합에서 찰스 니콜라스 명의를 사용한 작가는 세 명이고 그 중에서 둘은 실제 찰스 니콜라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 명이 모두 블루 비틀에 참여했다.


  척 퀴데라 Chuck Cuidera 는 실명이 찰스 니콜라스 퀴데라였고 초기 블루 비틀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잭 커비 또한 찰스 니콜라스 필명으로 블루 비틀의 코믹 스트립 버전을 작업했다. 찰스 워즈코스키 Chares Wojtkoski 는 찰스 니콜라스 워즈코스키가 풀네임인데 역시 블루 비틀에 참여했다. 현재 최초 창조자의 크레딧은 워즈코스키에게 가있고 이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잭 커비가 최초 창작 작업에 중요하게 참여했을 가능성도 많다.


  한편 퀄리티 코믹스 Quality Comics 라는 회사가 있었다. 아이즈너 & 아이거가 만든 만화를 많이 유통한 회사인데, 이 회사의 만화 중에도 수퍼히어로 만화가 있었다. 그중에서 플라스틱 맨 Plastic Man 은 역사에 잠깐이라도 언급되는 캐릭터다.


  수퍼히어로 장르가 가장 많이 참고한 장르는 내용상으로 고려했을 때, 펄프 픽션 중에서도 모험물과 범죄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SF 소재가 추가되고, 오컬트의 형태로 공포물 요소가 들어왔다. 아무리 아동 독자를 지향하려 해도 일단 기본적인 스탠스는 진지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장르들이다. 반면 캡틴 마블의 설정과 전개는 그런 장르로 전개해도 유쾌해질 수 있다는 힌트를 주었다. 이 힌트를 받아 아예 유머 만화와 수퍼히어로를 기초 단계부터 섞은 사람이 퀄리티 코믹스에서 일하던 잭 콜 Jack Cole 이다.


  플라스틱 맨은 본명이 패트릭 오브라이언 Patrick O’Brian 으로, 고아 출신으로 거리 범죄자였다. 전문 분야는 절도였고 금고 해체와 도주 능력이 좋아 뱀장어 Eel 라고 불렸다. 강도 업무가 크게 실패하여 동료들은 도망가고 자신은 어깨에 총을 맞은 채 화학 물질 통에 빠진 어느 날, 그는 간신히 도망쳐서 도시 근처 야산에서 기절한다. 기절한 오브라이언을 수습해간 사람들은 산에 위치한 수도원의 수도사들. 수도사들은 오브라이언을 잘 간호해주었고 경찰에게서도 숨겨 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본 오브라이언은 크게 개심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화학 물질의 영향 때문에 자신이 몸을 고무나 반쯤 녹은 플라스틱처럼 길게 늘이거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재질은 바꿀 수 있어도 색은 바꿀 수 없다. 어쨌든 별명에 어울리는 초능력을 갖게 된 그는 이제 범죄를 막는 자경단인 플라스틱 맨이 되었고, 일본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 D. 몽키의 조상이 되었다.


  이 기원 스토리는 조커의 착한 버전처럼 보이는데, 플라스틱 맨 또한 10살 때부터 거리 생활을 한 사람이라 일반인과는 다른 발상을 자주 보여준다. 그가 떠올리는 기발한 제압 방법과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 초능력 덕에 플라스틱 맨 만화는 장르의 기본 전개가 유머와 코믹이다. 현재 유머 장르에 기반한 계열의 수퍼히어로로는 플라스틱 맨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플라스틱 맨은 퀄리티 코믹스가 1941년 8월에 발간한 폴리스 코믹스 Police Comics 의 #1에서 데뷔했다.


플라스틱 맨의 특성을 가장 설명하는 폴리스 코믹스 #15의 표지.

한구석에는 아이즈너 & 아이거의 작품인 더 스피릿 The Spirit 이 ‘저런 놈에게 신경 쓰지 말고 내게 관심점’을 외치고 있다.     


  플라스틱 맨을 만든 잭 콜은 그 이전까지 센타우르를 비롯한 여러 회사를 전전해온 유목형 작가였다. 퀄리티에서 만든 플라스틱 맨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50년대 후반부터는 플레이보이에서 만화를 그리다가 신문 지면으로 넘어갔다.


  플레이보이 시절에 그린 만화와 일러스트는 섹시한 여성이 유머러스한 상황에 처해있는 그림이 많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남성을 보고 웃는 용도 양쪽으로 해석된다. 걸작 ‘쥐’로 유명한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 Art Spiegelman 은 잭 콜의 전기를 쓰기도 했는데, 여기서 “콜의 여신은 에스트로겐으로 만든 수플레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런 효과는 없지만 사람들이 홀리는 종류의.” 라고 콜을 평한 바 있다. 여성의 성적 매력과 그것이 발휘되는 상황의 유머 코드는 잭 콜의 스타일이었고, 플라스틱 맨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이후에 플라스틱 맨을 묘사하는 작가들 또한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1999년 11월호인 JLA #33 이슈의 장면.

원작자의 스타일과 캐릭터의 성격을 잘 이해하여 계승한 경우다.

“멋진 드레스네, 바르다. 어디서 났어?”

“어디서? 방에 배달되어 있던데. 너희 중 하나가 보낸 거 아니었-” (깨달음)


  블루 비틀과 플라스틱 맨은 암흑기를 충분히 버텼지만, 완전히 이겨내지는 못했다. 1950년대 중반이 되면 폭스 조합은 블루 비틀을 찰튼 코믹스 Charlton Comics 라는 회사에 매각했고, 퀄리티 코믹스는 폐업하고 플라스틱 맨을 DC 코믹스에 팔았다.



속빈 강정타임리 코믹스     


  포셋과 DC가 선두를 형성하고 퀄리티 코믹스 등의 회사가 그 뒤를 따라가던 40년대 골든 에이지. 타임리 코믹스의 위치는 퀄리티 코믹스보다는 더 위에 있었지만 DC에 비하면 상당히 아래였다. 폭스와 퀄리티 같은 강력한 추격자들을 상대하려면 양질의 만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타임리는 수퍼히어로 외의 다른 장르로도 많은 확장을 벌였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당시의 정확한 통계가 없어 분위기와 각 회사가 주장하는 판매고에 근거해 추측해보면, 출판 만화 시장에서의 타임리는 3~4위 정도는 하는 안정적인 중상위권 회사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을 수퍼히어로로 좁혀보면 중상위권이긴 하지만 안정적이진 않았다. 더 성적을 내어 안정적인 재정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네이머, 휴먼 토치, 캡틴 아메리카 외에도 더 많은 캐릭터가 필요했다. 40년대 중후반에는 조짐만 보였지만, 암흑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빅3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타임리는 장수할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을 다수 만들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리하여 암흑기의 타임리 캐릭터들은 처참한 성적표만을 생산하게 된다.


  당시의 타임리 캐릭터 중에서 그나마 훑어볼 가치가 있는 캐릭터는 둘이다. 하나는 비전 The Vision 이고 다른 하나는 디스트로이어 The Destroyer 이다.


  골든 에이지의 비전은 현재 마블 코믹스의 비전과는 다른 캐릭터지만, 이름과 디자인 컨셉을 물려주긴 했다. 1940년 11월에 마블 코믹스, 이제는 마블 미스터리 코믹스로 이름을 바꾼 잡지의 #13 이슈에서 처음 등장한 이 캐릭터는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타임리를 떠나기 전에 남겨놓은 유산 중 하나다. 본명이 아르쿠스 Aarkus 인 비전은 스모크월드 Smokeworld 라 불리는 차원에서 온 외계인 경찰이다. 비행 능력이 있고 추위와 얼음,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연기를 통해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 2차대전에서는 나치에게 속아 추축군 편을 들어 싸우다가 히어로들에 의해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가 그나마 흥미롭다. 암흑기를 버티지 못했고, 2010년에 와서야 잠시나마 재등장하게 된다.


잭 커비가 그린 아르쿠스 비전의 최초 등장컷.


  디스트로이어는 골든 에이지 버전과 7, 80년대 버전들을 합해 세 가지 버전이 있는데, 골든 에이지 버전의 본명은 케빈 킨 말로우 Kevin “Keen” Marlow 이며, 미스틱 코믹스 Mystic Comics 의 #6 이슈에서 1941년 10월자에 데뷔했다. 비전에 비하면 리뉴얼이 된 적은 있기에 그나마 대접을 받고 있는 골든 에이지 시절의 마블 캐릭터다. 특히 케빈 말로우의 경우엔 10대 후반으로 일하고 있던 편집보조 스탠 리의 작품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다뤄진다. 아마도 그의 첫 작품일 것이다.


  그림 담당은 누구인지 확실치가 않다. 스탠 리도 당시 이야기를 증언하지 않고 세상을 떴으며,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채집되지도 않았다. 역사가들은 잭 바인더 Jack Binder 혹은 알렉스 셤버그 Alex Schomburg 를 유력한 후보로 추측하고 있다.


비초능력자 수퍼히어로인 디스트로이어의 데뷔 이슈 표지. 처음부터 적이 나치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전쟁의 영향일 것이다.



좋은 건 따라서올위너스 스쿼드


  한편 타임리의 사장 마틴 굿맨의 경영 철학은 확고했다. 1) 대세를 따른다. 2) 1 다음은 없다.


  DC 코믹스의 JSA가 성공하는 것 같자 마틴 굿맨은 스탠 리를 비롯한 편집자들과 작가들을 불러 같은 형태의 수퍼히어로 팀을 만들어내라고 지시했다. JSA가 처음 등장한 올스타 코믹스 #3이 나온 지 반 년 후인 1941년 여름호로 발간된 올위너스 코믹스 All Winners Comics #1에서 그 결과물이 나왔다. 이 팀의 이름은 몇 년 동안 정식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가 막판인 1946년 가을의 #19 이슈에서 올위너스 스쿼드 All-Winners Squad 로 정해졌다. 이 이름을 달고 발행된 이슈는 #19와 #21 두 개뿐이고, #21이 마지막 발행 이슈라는 것은 함정이다. (#20 이슈는 발행되지 않았고 전혀 다른 청소년 만화가 #20을 이어받아 이어졌다.)


  JSA가 저스티스 리그의 선배격인 것처럼, 올위너스 스쿼드는 어벤져스의 선배격인 팀이다. 캡틴 아메리카와 그 사이드킥인 버키, 휴먼 토치와 그 사이드킥인 토로, 네이머 등이 주축 멤버가 되었고, 당시 타임리가 보유하고 있던 수퍼히어로 대부분이 등장했다. 디스트로이어도 잠시 참여했다.


  하지만 올위너스 코믹스는 JSA가 등장하는 올스타 코믹스에 비하면 속빈 강정이다. 매 이슈마다 긴 분량의 팀업 스토리가 하나씩 있는 올스타 코믹스와는 달리, 올위너스 코믹스는 팀업 스토리가 거의 없었다. 팀업 스토리는 #1과 #2에 하나씩 있을 뿐이고, 팀명이 생기고 레귤러 멤버가 규정된 #19와 #21에 와서야 2개씩 수록되었다. 나머지는 서로 연결성이 별로 없는 각 캐릭터들의 개별 스토리였고, 고로 올위너스 코믹스는 팀업 이슈라기보다는 합본 이슈에 가까웠다. 가드너 폭스와 셸든 메이어처럼 여러 캐릭터들의 개성을 한 팀 속에서 소화할 수 있는 작가와 편집자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팀의 이름이 정해진 것이 시리즈의 막판인 #19 이슈라는 점도 이를 시사한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1, #6, 그리고 팀이름이 정해진 #19의 표지.

타임리의 빅3와 군소 캐릭터들이 총출동한 기획이지만 아르쿠스 비전은 끼지 못했다.

#19의 표지는 1999년에 발간된 복각판 볼륨의 표지로도 쓰였다.     


  #19에서 팀의 이름이 정해지고 전개되는 첫 번째 스토리는 의외로 빌 핑거의 작품이다. DC 쪽 회사들의 일거리만으로는 힘들었는지 핑거는 포셋과 퀄리티에서도 일을 맡았는데, 그런 외주 업무 중 하나가 올위너스 스쿼드의 스토리였다. 두 번째 스토리를 쓴 오토 바인더 Otto Binder 는 잭 바인더의 형제로, 오토 역시 포셋에서 캡틴 마블 스토리를 쓰다가 올위너스 스쿼드에 초빙된 경우다. 오토 바인더는 이후 포셋이 문을 닫자 형제가 일하는 타임리로 이직하게 된다. 그 외에도 타임리 소속 혹은 타임리와 거래했던 주요 작가들이 총출동했다. 참여 여부가 확인된 사람들만 해도 이름값이 상당하다.


  조 사이먼, 빌 에버렛, 잭 커비는 물론 들어가 있고 얼마 후에 편집장을 승계할 10대 후반의 스탠 리도 참여한 것이 확실하다. 잭 커비에게서 캡틴 아메리카의 그림을 이어받게 될 알 애비슨 Al Avison 과 시드 쇼어 Syd Shore, 여러 회사의 여러 작품에 이것저것 참여해본 알 가브리엘레 Al Gabriele 등이 모두 동원되었다. 찰스 니콜라스 필명의 사용자 3인 중 한 명인 척 귀데라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JSA에 동원된 DC 3회사의 자원과 올위너스 스쿼드에 동원된 타임리의 자원이 각 회사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면 양측의 규모를 알 수 있다. JSA는 올 아메리칸에서 주로 일한 가드너 폭스 한 명이 대부분의 스토리를 담당했다. 반면 올위너스 스쿼드에는 회사가 끌어다 쓸 수 있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투입되었다. 전쟁에 비유하면 한쪽은 국지전, 한쪽은 총력전이다. DC에게 JSA는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였지만, 타임리에게 올위너스 스쿼드는 야심 사업이었다. 구성과 전개 또한 완전히 다르다. JSA의 올스타 코믹스는 크로스오버 팀업이지만, 올위너스 스쿼드의 올위너스 코믹스는 합본에 가까웠고 팀업 스토리는 얼마 없었다. 향후 두 팀의 운명도 극명하게 갈린다. JSA는 암흑기 동안 사라져 버리지만 다시 발굴되어 저스티스 리그와는 별개의 팀으로 계속 등장하여 활용된다. 올위너스 스쿼드의 아이디어는 재발굴되지 못하고 어벤져스가 새로 등장한다.


  여기까지 소개한 수퍼히어로 외에도 골든 에이지의 수퍼히어로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향후의 생사를 소개한 캐릭터들 중 일부처럼, 대다수는 황금기 직후의 암흑기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와 함께 사라져버린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자층의 다수를 차지하던 군인들이 노동 현장에 복귀하게 되면서 상당수의 독자 이탈이 일어났다. 문제는 또 있었다. 1950년대부터 TV라는 신매체가 보급된 것이다. 세상에, 영상을 집에서 볼 수 있다니!


  그리하여 출판 만화 업계의 운명과는 완전히 별개로, 수퍼히어로 업계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학계에서 동의하고 있는 골든 에이지의 마지막은 1950년이다. 그리고 다음 부흥기인 실버 에이지의 시작은 대충 1956년으로 책정되고 있다. 그 사이의 6년은 암흑기다. 이 시기에 솔로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던 캐릭터는 수퍼맨과 배트맨과 원더우먼뿐이다.


  캡틴 마블이 캔슬될 암흑기가 코앞이었다. 그 전조 같은 사건이 1947년에 연달아 일어났다. 원더우먼의 작가 윌리엄 몰턴 마스턴의 병사와 올 아메리칸의 창업자였던 맥스 게인즈의 사고사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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