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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린 Dec 21. 2018

여행의 끝 무렵

여행도 인생과 같아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빵 한쪽으로 하루를 견디며 밤에는 치열하게 글 쓰고,

낮에는 온 파리를 걸어 다녔다지, 벤야민은.


여행지, 하지 않으면 언젠간 후회할 일들과 가지 않으면 또한 후회할 도처의 장소들.


발터 벤야민

 결정이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다가 시간이 닳아간다. 여지 없는 귀로 앞에서 도망칠 궁리부터 하는 자신을 보며, 이런 용기 없음에 잦은 실망을 해왔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자책하는 모습마저 익숙한, 스스로를 책임지는 게 가장 어려운 철 없는 삼십 대. 내가 떠나온 한 평 반 정도의 삶, 나는 왜 늘 허둥대기만 했던 걸까. 다시 돌아갈 생활이란 있었는가 의구심이 들고, 사방으로 나부끼는 먼지처럼 바람 속에서 발길 닿는 대로 마냥 걷기만 했다. 건조한 사막 같은 시카고 다운타운의 냉기.


 말년에 벤야민은 왜 아메리카로 오려고 애썼던 걸까. 파리가 그에게 안겨 주었을 고독감과 낭패감을 나는 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지. 판타스마고리아 같은 삶, 예언자에게 안접할 자리란 어디에도 없다.


여행도 인생과 같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언제나 기대와 달리 어긋나기만 하는 여행지에서의 시행착오와 피로감처럼 인생에도 왕도가 없다.


“아마도 어떤 일에서든 무력감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일에서 결코 장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에 수긍한다면 그러한 무력함이 처음에, 혹은 노력을 시작하기 전이 아니라 그런 노력의 와중에 생긴다는 점 또한 이해할 것이다.”  


        - 벤야민, <베를린 연대기>  p.157



2012.3.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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