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나는 혼자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강박적으로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종종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카페에 작업하러 갔을 때 책상 높이, 조명, 주변 환경이 내 기준에 딱 부합하지 못하면 카페에 온지 30분이 채 안되도 그냥 일어나 다른 카페를 가버리는 일이 잦은 사람이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카페를 방문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마음에 안든다고 그냥 나가버리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여행도 별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당장 간단히 먹을 점심을 두고도 10개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지 따져가며 수십개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어 지금 내 컨디션, 통장 상황, 어제 먹은 저녁, 앞으로 먹을 저녁, 그 사이에 먹을 디저트 등등을 다 따져가며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하며 점심먹을 식당에서 최종 주문을 하기 직전까지 고민한다. 그런데 머릿수가 늘어나면 고려해야할 것은 배로 느는데 고민해야할 시간은 더 적다. 정한 식당으로 가자고 해놓고 가는 길에 계속 고민하고, 또 식당 코 앞에 도착해서 다른데 가고 싶다고 한다면 동행자는 미칠 노릇이 아니겠는가.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 의식적으로 좋게 말하면 신중함 나쁘게 말하자면 우유부단함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아쉬워도 아쉬운대로, 후회되면 후회되는 대로.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나를 불평불만쟁이로 알 텐데 이러한 내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나에게 제일 베스트는 여행을 가기 전 모든 것을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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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도쿄에 갈 일이 생겼다. 도쿄에 4일간 머물게 되었는데 일정을 다 마친 후 3일 정도의 개인일정을 더 잡아 도쿄에 머물기로 한다. 일정이 있는 동안은 가부키초에 있는 한 호텔에서 머물렀고 전 날 같이 간 동료들과 새벽까지 이자카야에서 시간을 보낸 덕에 10시라는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에 일어났다. 사실 체크아웃이 10시였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며 늦은 시간이었다. 110엔을 더 지불하고 1시간 레이트 체크 아웃을 한 나는 오전 11시에 3일 간 묵을 나의 숙소가 있는 미나미센주역으로 출발했다.
미나미센주역에 내리자 작은 동네가 나왔다. 조금은 답답하고 작아보이는 동네였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12분. 가는 길을 파악하려고 구글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구글맵에는 내가 가야하는 길을 나타내는 파란 선이 그저 같은 길을 뱅글 뱅글 돌아가며 핸드폰 화면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역 앞에서 제자리를 한 6바퀴 쯤 돌면 비밀의 문이라도 생긴다는 뜻일까. 알 수 없는 비밀지도에 심란한 그때 어떤 한 할아버지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복잡하디 복잡한 빙글뱅글 육교 위에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구글 맵에 그려진 빙글뱅글 그려진 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바로 육교였던 것이다. 한국에는 주로 길을 건너는 일직선의 육교가 대부분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전철이 도로 위를 달리고, 사람도 도로 위를 지나고. 공중을 지나다니는 일은 일본인들에게 흔하디 흔한 일처럼 보였고 그만큼 육교는 건너는 '다리' 이상의 '길' 이었다. 건너는 개념이 아니라 타고 또 흐르는 길. 하지마 한국인인 나는 그것이 낯설 수 밖에 없었다.
커다란 육교를 조금 건너자 콘트리트 육교에 가려져있던 미나미센주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미나미센주역에 도착해서 느낀 답답함과 작다는 느낌이 육교 위로 올라왔을 때 해방감을 느끼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큰 건물들과 쭉쭉 뻗은 도로, 그리고 한가한 도시의 풍경까지 속이 탁 틔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육교를 지나 10여분 정도 지나자 도착한 나의 숙소에 도착했다. 조금만 지나면 이곳은 나의 큰 버팀목이자, 고향집 처럼 느껴지게 되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망한 도쿄여행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차차 이야기 하도록 하자.
어쨌든 15시 체크인이었던 나는 12시에 도착해서 짐만 맡기고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숙소 카운터는 텅텅 비어있었고 몇몇의 일본 아주머님들이 호텔 식당에 모여 앉아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손님 응대는 전혀 그들의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카운터 쪽에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으셨다. 내가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다가가서 여쭤봤겠지만 해봤자 숫자 정도 셀 줄 밖에 몰랐던 터라 그냥 조용히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한 10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서양인 남자 3명 무리가 자신들의 몸만한 배낭을 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들은 해맑게 카운터에 서서 주인장을 찾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저주 받은 문을 지켜온 늙은 나그네처럼 "여긴 아무도 없어..."라고 음침하게 말을 건냈다. 체크인하고 싶다는 말만 하는 남자 3명과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말만 3분 정도 반복 했을까. 위층 청소를 다하고 내려온 주인장 아주머니와 운좋게 마주쳤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영어로 운좋게 우리들의 방이 빨리 준비가 되었다며 얼리 체크인을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그리도 도착한 나의 805호. 캐리어를 피면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좁았고 침대 밑에는 작은 일본식 옷장이 있었다. 도쿄의 숙소가 대부분 이런 식이거나 캡슐 숙소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감지덕지하며 캐리어만 꾸겨넣고 바로 외출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극 J였던 내게 여행계획, 그것도 무려 해외 여행계획이 없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일본에 오기 전 개인적인 일정이 너무 바빠 잠잘 시간도 없이 일본에 넘어온 터라 계획도 없었고, 체력도 없었고, 정신 머리도 없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을 때마다 도쿄 관련해서 게시글이 뜨면 가고 싶었던 곳을 종종 저장해두었기에 그 중 하나를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데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J의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딱 하나의 목적지가 아닌 3-4개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그냥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당장 인스타 저장탭을 열어 갈 곳을 하나 정한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내게 선택은 클라이밍과 다름이 없다. 내가 당장 코 앞에 어떤 돌을 잡았느냐에 따라서 내가 다음에 잡을 돌이 바뀌고 정상까지 가는 경로가 바뀌는 것인데. 그럼 당장 코앞에 점심을 뭘 먹을지 하는 하나의 선택이 곧 그 이후의 오후의 시간과, 저녁의 시간과 숙소로 돌아오는 모든 시간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 항상 당장 빠른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내 성격이 내 스스로에게도 스트레스였지만 이런 문제를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매일 그렇게 따지고 계획 세우는게 스트레스 받지 않냐 물어본 적이 있다. 당연히 스트레스를 무지 받는다. 하지만 계획 없이 움직였을 때 낭비되는 시간과, 비효율적인 동선과 그로 인해 남는 후회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강박적인 계획짜기가 훨씬 스트레스가 덜했다.
그렇다고 의외성이 주는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내 계획에 계획없이 찾아온 모든 균열들과 틀어짐의 순간들을 반겼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스케치에 잘못 번진 물감으로부터 내 그림을 확장시키는 일은 명확히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순간 순간 내리는 선택을 즐기며 후회도 금세 털어버리며 즉흥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P 친구들을 보며 부러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획 없는 이 여행이 불안하면서도 기대되었던건 사실이다.
어쨌든 그런 무수한 고민을 가지고 내 방이 있던 8층에서 1층 로비에 내렸을 때 로비의 한 벽에 시선이 집중 되었다.
로비 한 쪽 벽은 전부 칠판으로 되어있고 숙소 주변 맛집과 관광지가 적혀있었다. 그 중 내 눈에 띈 신사와 1800년대부터 이어진 텐동 맛집. 숙소 근처에서 놀자! 라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 다음 선택지 또 다음 선택지들이 한정적이게 된다. 숙소 출발부터 귀가까지 다 이 근처에서 해결하면 되니까 말이다. 심지어 신사는 일본에서 유명한 아사쿠사 신사였고, 그곳은 유명한 관광지니까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첫 날이니까 쉽게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구글맵에 텐동집을 쳤는데 도대체가 뜨지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자 결국에 필요한건 사람의 도움이었다. 쭈뼛쭈뼛 부엌에 모여게신 아주머니 무리로 향했다. 내가 슬금슬금 다가가자 아주머니도 한참 하시던 대화를 멈추시고 나를 의식하시며 힐끔힐끔 쳐다보셨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수상하게 다가가는 한국 여자와 그걸 의식하시고 조용해지신 일본 아주머니들. 사실 다가가며 직접 물어볼까 아님 번역기에 쳐서 보여드릴까 고민하느라 되게 천천히 다가갔다가 다시 뒤돌았다가 난리를 쳐서 분위기가 서먹해졌었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다 나를 쳐다보자 물러설 수 없음을 깨닫고 가서 용기내서 물어봤다.
"고레 텐돈와 도꼬데스까?"
한 문장 겨우 내뱉었는데 나에게 수많은 일본어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기로 공부하는 여행 외국어는 이런게 문제이다. 질문은 가능한데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후다닥 보이스 번역앱을 켜서 번역을 했는데 아직 내 생각보다는 기술이 덜 발달했나보다. 번역앱이 내게 내준 답은 이러했다.
심지어 저 첫문장에 "기다려, 잠깐 기다려"는 내가 한 말이다. 급해서 막 말했는데 아무래도 반말로 했나보다.
어쨌든 저런 결과값에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알아들은 척 하고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숙소 밖에 나와 저 문장을 한참이나 해석했다. 일단 보이는 정보들은 '신호, 큰거리, 왼쪽, 50미터'
나는 계획도 없이 와서 뭘 바라나. 그냥 신호를 건너서 큰거리가 나올 때까지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50미터 쯤 더 가볼 요량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가본 곳에 식당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신사에 가면 되는 일이고, 있으며 뭐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가는 길은 즐거웠다. 일본에 온지 5일만에 일본 거리를 제대로 구경해보는 탓도 있었고 드문 드문 보이는 도쿄 스카이 트리가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해가 지며 저기에 올라가서 야경을 구경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만나게 될지 미지수인 텐동집으로 향했다. 큰거리를 만나 좌회전 해 50미터 쯤 걸었나 일본 구옥 한 채가 보였고 그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사실 텐동이라는 말이나 식당이라는 말이 적혀 있지도 않고, 메뉴판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직감했다. 저기가 바로 그 텐동집이라는 걸. 나는 그냥 줄 서 있는 사람들 뒤로 가서 섰다. 한 10분 정도 앉아있었나 직원 분이 나와서 무엇을 시킬지 여쭤보셨고 나는 280엔 정도 되는 텐동을 가르켰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10분이 더 지나자 입장 할 수 있었다.
가게 내부는 정말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내부였다. 200년이 넘은 맛집이라더니 건물이 정말 200년 정도는 되보이는 구옥이었다. 그리고 음식맛은 정말 대박이었다. 나는 사실 텐동을 이번에 처음 먹어보았다. 어떻게 튀김이 밥반찬?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터라 굳이 찾아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찾아먹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여기 텐동이 너무 맛있어서 이것보다 맛없으면 실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짜 첫 텐동을 너무 맛있는 텐동을 먹어버렸다. 첫연애가 그 뒤의 있을 연애의 기준이 된다는 말을 아시는가. 딱 그런 느낌이다. 첫입이 이렇게 수준 높아서야 다른 텐동을 먹을 수가 있을까.
이 텐동 덕분에 꽤나 괜찮은 여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