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 개봉 영화 <파바로티> 리뷰
< 파바로티 > (2020.01.01 개봉) / 론 하워드 감독 /다큐멘터리
1월 1일. 2020년 새해 첫 문을 여는 영화 중에 흔치 않은 스타일의 영화가 있다. 바로 한국 대중에게 성악가로 널리 알려진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다. 이 영화는 2007년에 작고한 전설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전체 삶을 담고 있는 영화다. 뮤지션의 삶을 다뤘던 수많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있었지만 이 영화는 적어도 내가 처음으로 본 성악가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파바로티의 전성기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파바로티는 개그맨들이 립싱크로 따라 할 만큼 유명한 성악가.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미약하나마 파바로티라는 인간의 일생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몇 가지로 나눠 이야기해보겠다.
1. 불멸의 목소리
영화는 생전 파바로티를 알던 사람들(가족부터 전 애인, 동료 등)의 인터뷰와 생전의 영상기록들을 위주로 흘러간다. 사진 위에 내레이션처럼 인터뷰이들의 말들이 얹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말들 중에 기억나는 것들이 몇 있다.
‘어떻게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는 한 문장이다.
영화는 불멸의 목소리를 지닌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 녹음본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비교적 열악한 당시의 녹음 상황에도 불구하고 파바로티의 목소리에서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한 힘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스크린이나 녹음본으로 들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파바로티의 경우는 좀 달랐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그 법칙에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2년 전 팬텀 싱어를 즐겨봤다. 그 속에서 파바로티의 이름을 수도 없이 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아직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오페라 및 성악 가수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교과서이고 기준점이다.
2. 스타성
그는 스타 그 자체였다. 그에게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느낌,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인간미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모두와 떠들썩한 식사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그의 내면적 외로움에 관해서 주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짐작한다.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목소리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외로움을 느낀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엄청난 아티스트였는지를 알려주며 그의 삶을 옹호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 남자로서의 파바로티의 삶도 놓치지 않는다. 되도록 여러 각도로 그의 삶을 다루려고 했다.
한 사람에 대한 여러 사람의 평가가 일치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에 관한 과거사를 이야기하겠다고 지인이며 가족들이 영화에 등장해준 것도 그렇고, 그의 인간성과 스타성에 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비슷한 발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미 있는 스타였다.
3. 쓰리 테너 콘서트의 감동
영화가 연대기식으로 그의 삶을 다루기에 몰입도도 높고 끝내는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사람의 인생, 더군다나 루치아노 파바로티라는 위대한 테너의 인생을 담은 영화는, 잘 짜인 할리우드 3막 구조 드라마보다 더 감동이 있다.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엄청난 드라마인 것이다.
그가 남긴 목소리는 영원히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표가 될 것이고 그가 남긴 라이브 영상을 보며 눈물 흘릴 대중 역시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살아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불멸의 인간이 된다.
우리가 디즈니 작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보았듯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인간을 통해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불렀던 수많은 레퍼토리를 들으며 그를 떠올릴 것이고 그가 남긴 조각들을 보며 울고 웃을 것이다. 그가 원하건 원치 않건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4. 상승과 하락의 드라마
영욕의 세월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기나긴 활동기 동안 그는 긴 전성기와 짧은 모욕기(?)를 겪었다. 오페라에 있어서는 불모지라고 할 수도 있을 나라들까지 그의 명성이 와 닿고 음반 판매가 쭉 이어지는 동안 그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하이 C 음을 조금 다르게 낸다고 해서 그의 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는 파바로티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뮤지션이었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는 테너 그 자체였다. 내가 처음으로 들어보았던 테너의 이름도 파바로티였고 몇 년 전 이제훈이 등장했던 영화의 제목이 파파로티가 될 만큼 그는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 엄청난 존재였다.
파바로티는 성악, 오페라 출신의 가수가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기록들을 세운 뒤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여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와 앨범을 기획하고 세상에 선보였다. 전쟁 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고 거대해진 자신의 이름값을 의미 있는 곳에 쓰기 위해 헌신했다.
개인적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더라도, 그를 옹호하고 싶어 지는 이유다.
5. 다채로운 트랙 리스트
아래는 영화에 담긴 트랙들이다. 워낙 유명한 레퍼토리들이고 한국에서 가창된 경우도 많아 익숙한 멜로디를 부르는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듣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 Nessun Dorma (Turandot) /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오페라 [투란도트])
2. Voce’e note / 밤의 목소리
3. Pour mon âme quel destin (La fille du regiment) / 내 앞길에 펼쳐질 행복한 미래여 (오페라 [연대의 딸])
4. Una furtiva lagrima (L’elisir d’amore) / 남몰래 흐르는 눈물 (오페라 [사랑의 묘약]) 5. Celeste Aida (Aida) / 청아한 아이다
6. Me voglio fa’na casa / 나의 집을 짓고 싶어요
7. Questa o quella (Rigoletto) / 이 여자도, 저 여자도 (오페라 [리골레토])
8. La donna è mobile (Rigoletto) / 여자의 마음 (오페라 [리골레토])
9. O soave fanciulla (La bohème) / 오 사랑스러운 아가씨 (오페라 [라 보엠])
10. E lucevan le stelle (Tosca) / 별은 빛나건만 (오페라 [토스카])
11. Vesti la giubba (Pagliacci) / 의상을 입어라 (오페라 [팔리아치])
12. Silenzio cantatore / 조용히 부르는 노래
13. ‘A vucchella / 귀여운 입술
14. Libiamo ne’lieti calici (La Traviata) / 축배의 노래 (오페라 [라 트라비아라])
15. ‘O sole mio / 오 솔레 미오
16. Donna non vidi mai (Manon Lescaut) / 일찍이 본 적 없는 미인 (오페라 [마농 레스코])
17. Miss Sarajevo / 미스 사라예보
18. Pietà, Signore (Live at Carnegie Hall, New York) / 주여, 들어주소서
19. Nessun dorma /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오페라 [투란도트])
BONUS TRACKS
20. Ave Maria, dolce Maria / 아베 마리아, 돌체 마리아
21. Miserere* / 미제레레*
22. Schubert: Ave Maria* / 아베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