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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ul 14. 2020

<밤쉘>, 시의적절 실화 바탕 복수극

샤를리즈 테론의 가치를 입증한 또 하나의 작품(스포 유)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19)

Bombshell 2020.07.08 개봉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


#상당히 불친절한 리뷰이며, 스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출처: 다음 영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트럼프의 계속되는 트위터 공격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다. 

한편, 동료 앵커인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 불리는 폭스뉴스 회장을 고소하고

이에 메긴은 물론, 야심 있는 폭스의 뉴페이스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데…

최대 권력을 날려버릴 폭탄선언

이제 이들의 통쾌하고 짜릿한 역전극이 시작된다!


 코로나 19로 개봉하는 영화의 수 자체가 줄어들며 얼어붙었던 영화관에도 조금씩 개봉작들이 생겨나고 있다. <#살아있다>부터 <반도>, <소리꾼>, <밤쉘> 등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둬 관객 회복도 어느 정도 기대된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끈 작품은 멋진 여성 세 명이 포스터에 등장하는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었다.


#탁월한 분장


 포스터만 봐도 마고로비를 제외한 두 배우의 얼굴이 원래 알던 얼굴과 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미국에 실존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그 인물이 유명인인 데다가 다루고 있는 사건은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미국 대중들이 알고 있는 실존 인물의 얼굴과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정교한 분장을 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한 영화다.  정말 그럴 만한 것이, 나는 영화관에 들어가서 1시간이 지날 때까지 샤를리즈 테론의 얼굴이 분장한 얼굴인 줄도 몰랐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영화관에 들어간 터라, 갑자기 인상이 바뀌어버린 샤를리즈 테론의 을 보면서 대체 뭐지?  싶기는 했지만 분장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러다 자세히 보니 샤를리즈 테론의 눈매와 턱선 등과는 반대로 분장을 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샤를리즈 테론


 그 정교한 분장을 더 정교해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연기력이다. 이번 영화의 서두에서 내레이터처럼 등장하는 매긴 켈리 역의 샤를리즈 테론은 무게감 있는 발성과 안정적인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어느새 이입하게 만든다. <빅쇼트>처럼 다소 정보가 많이 등장하고 정신없는 자료화면이 많이 개입되는 와중에도 캐릭터에게 이입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의 몫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런 영화일수록 더욱 연기파 배우가 필요하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실화 기반의 영화는 자칫 잘못하면 재연 드라마 같아질 수 있는데, 이 영화로의 입장을 안내하는 샤를리즈 테론 덕에 그런 느낌은 지운 채 들어갈 수 있었다.


 분명히 샤를리즈 테론, 그녀는 대체 불가한 배우다. 지난해 한국에 개봉했던 영화 <롱 샷>과 약간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임에도 확연히 다르다.  이번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올드 가드>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올드 가드>에서는 강한 액션 캐릭터다. 그녀는 그 외에도 수많은 캐릭터로 변신했고 거의 항상 성공했다. 

 그녀는 늘 외모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캐릭터화 시켜 그 캐릭터로 기억된다. 남자 배우 중에는 크리스천 베일과 비슷하다. 대부분 미남 미녀 배우들은 얼굴밖에 안 보인다는 말을 듣고는 한다. 샤를리즈 테론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배우다.  그러나 그녀는 비현실적인 외모의 소유자임에도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할 만한 역할은 거의 맡지 않았다.  오히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을 찌우거나 분장을 하는 식으로 자신을 캐릭터화 시켰다. 

 그 덕일까. 엄청나게 유명하고 믿기지 않게 아름답지만 그녀는 정말 매 영화마다 다른 캐릭터로 보였다. 그녀의 작품을 생각하면 캐릭터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떠오른다. 실화 기반의 살인자 역할을 했던 <몬스터>,  점점 망가져가는 가정주부 역의 <툴리>, 전무후무한 캐릭터 퓨리오사를 남긴 <매드 맥스>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그러나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인물 그 자체도 못지않게 강렬하다. 스타 샤를리즈 테론의 모습으로는 디올 쟈도르 광고로 대중의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어떤 곳에서든 맡은 바 캐릭터를 충실히 연기했고, 그 결과 각각의 캐릭터로 보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밤쉘>은 힘을 뺐는데도 그녀의 클래스가 드러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연대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이 영화의 세 여성(각각 메긴, 그레천, 케일라) 은 대놓고 연대하지 않는다. 사실 서로 잘 모르고, 사이도 딱히 좋지 않다. 다만 뒤에서 조금씩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대부분 유명인이고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득권이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중에서 기득권이 아닌 자는 마고 로비가 맡은 케일라 역할뿐이다.  그러나 기득권자들 사이에서도 그 권력의 상하관계는 분명하게 나눠지고, 그 관계 안에서는 기득권자인 두 여성, 그레천과 메긴 역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세 여성은 모두 잃을 것이 있다. 그게 기득권이든 직업이든 간에 잃을 것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사를 고발할 수 없다. 설사 그 상사를 고발하고 나온다고 해도 소문이 나서 취업을 못하고 아예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갑자기 정의를 외치며 나서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서 불가능한 것이 바로 평등이며, 권력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방송업계라는 것은 참 좁다. 그리고 눈에 띄고 돈을 많이 버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얼굴이 알려진 방송인에게 있어 자신에게 성추행을 일삼는 상사를 고발한다는 것은 업계를 완전히 떠나겠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방송을 하며 돈을 벌던 사람이 업계를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결심이겠는가. 망했다가는 거의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폭탄선언이 가능하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변하지 않은 사실 하나는 약자는 서럽다는 것이다. 어둡고 더러운 일이 있어도 살기 위해 묻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려왔다. 뚜렷한 증거 없이 사라져 버리는 성추행과 희롱의 순간들을 포착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포착했다고 해도 폭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끌어내리려는 자도 어느 정도의 권력, 적어도 사람들이 들어줄 만한 이유나 서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추행 피해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 리 없고 가장 먼저 그들의 마음이 다쳤기에 그런 증거를 수집할 생각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에서 폭탄선언을 던지는 사람은 폭스 TV에서 해고된 최고참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 분)이다. 그녀는 정말 오랫동안 천천히 복수를 준비해왔고 제 때 그것을 터뜨렸다. 아마도 복직의 가능성이 없는 사실상 은퇴 상태였기에 더욱 가능했겠지만 기득권층인 그녀가 터뜨린 그 선언은 분명히 용기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선언 이후에도 수많은 약자들은 쉽사리 연대하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들은 폭탄이 던져진 후에도 피해사실을 숨긴다. 기득권 중에서도 가장 기득권인 폭스 TV의 사장이 무너질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화 기반이라 그런가, 참으로 현실적이다. 물론, 영화의 말미에는 그 대단한 사장이 자리에서 끌어내려진다.


#미투의 시대, 그럼에도


 분명히 미투로 약자가 강자를 끌어내리는 서사가 가능해진 시대다. 그러나, 누군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서 차지하는 자의 도덕성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라는 말은 상당히 진취적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여성들은 진취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마음속의 진취성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몸을 사린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조연 캐릭터 중 하나인 케일라의 친구  제스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레즈비언 여성임에도  자신의 정치적, 성적 지향성을 모두 철저히 숨긴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숨기며 자신의 대출금을 갚아줄 직장을 보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 (극 중에서  조연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변화가 없어서 가장 친근하고 현실적인 캐릭터가 제스를 비롯한 조연 캐릭터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연들을 적절히 배치한 작가의 섬세함에 박수를 주고 싶다.


(스포일러) 극의 말미에 케일라 캐릭터는 다시 자신이 되기 위해 폭스 TV를 나가며 쓰레기통에 사원증을 버린다. 그 순간 통쾌함은 느꼈지만, 그것은 참으로 극적인 부분인 것 같다. 그녀가 쓰레기통에 폭스 TV 사원증을 버리는 순간 내 뇌리에서 케일라는 학자금 대출도 남아있고 주택 모기지도 갚아야 할 현실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어지는 순간, 케일라의 뒤를 이어 자신을 숨길 또 다른 사회 초년생의 입사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리고 극에서는 끌어내려진 권력자 로저 에일스의 뒤를 이어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여성의 외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현실 자체가 체질 개선이 되지 않는 한 누가 올라서든 마찬가지다. 결국 누군가는 또 다른 희생양이 되어갈 것 같은 느낌을 남기며 영화는 끝난다. 적어도 당분간은 자기 자신을 감춰야 하는 비밀 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여담..... 트럼프 시대, 미국이라는 나라의 미래가 아무리 걱정된다고 한들 이렇게 얼마 되지 않은 실화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할 자유가 있는 나라라서 그 걱정을 조금은 덜어도 될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 오랜만에 영화관 가서 볼만한 영화였다. 적어도 1시간 49분 동안 지루하지 않았고, 코로나 19로 인해 텅 빈 영화관은 상당히 쾌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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