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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Apr 03. 2024

인간 수집병 감떫음 주최_2023 제4회 떫친소 후기

외로운 자여, 나에게 오라

2024. 1. 26 작성



떫친소의 이름은 어디서 익히 들어봤다 싶은게 당연하게도 한때 <무한도전>에서 진행했던 <못친소 페스티벌> 특집에서 그대로 따온 거였다.


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라고 해서 여러 사람들을 초대해 한 자리에서 노는 것.

떫친소는 다른 취지였지만 뭐랄까, 형태는 동일했다. '떫음이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때는 2020년이었다.


서울로 온지도 어연 2년이 지나가던 무렵, 처음 1년은 친구와 함께 살았었고 이후 찢어져 학교에서 30분은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쯤에 자취방을 마련했으나 코로나19가 터졌었다.

반년 가까이를 본가에서 머무르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비어있던 서울 자취방으로 올라와 비대면 수업과 과제를 진행하며 혼자 작은 방에서 나름 살림을 일구어갔다.


문제는 아직까지 서울에 별 다른 친구가 없었다는 점. 나날이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어디선가 그랬는데 외로움을 느낄 때 몸에 오는 영향이 담배 한개비를 필 때와 같은 수준일 정도로 고독을 느끼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고 했다.

더군다나 사람과 정을 느끼는 걸 좋아하던 나는 기념일을 그냥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에도 애매한 터라 찾고 찾아 나처럼 서울에서 연말을 하릴없이 보낼 친구 두명을 찾아 초대를 했다. 둘의 공통점은 단순히 감떫음의 친구란 사실 뿐이어서, 서로를 소개시켜주며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어떤 것에든 진심이었던 나는 하루빨리 화려한 주문제작 홀케이크를 찾아 예약하고 있는 소품들로 작은 방을 한껏 꾸며댔다. 부족하다면 손수 만들어냈다. 소중한 날에 시간을 보낼 초대자들을 위한 예의의자 그만큼 '의미'를 넣는다는 것에 집착하는 나 스스로를 위한 정성이었다.


그렇게 단 세명이서 크리스마스에 제 1회 떫친소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흘러 또 어쩌다보니 다음 해에도 같은 내 원룸에서 여러명을 초대했는데,

되는대로 놀 사람을 초대하다보니 고향 친구에 동기에 건너 소개받았던 친한 동생에 등등등 이들의 공통점 또한 동일하게 떫음이의 친구란 것뿐이었다. 그렇게 대여섯명이서 2021년 제2회 떫친소를 치렀다.


그 다음 해 2022년에는 휴학을 결정하고 얼떨결에 지금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와 근무하며 1년을 보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서울에 착실히 적응했고, 덕분에 많은 지인들도 생겼던 터였다.

이 시기쯤일텐데, 하고 생각이 들다 좀 더 본격적으로 떫친소를 이어나가기 위해 초대장을 만들어 SNS에도 뿌렸다. 나를 포함한 총 9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이 이상으로는 수용이 힘들어 파티룸까지 대여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2022년 제3회 떫친소였다.

혼자서 갑작스레 이것저것 기획을 해보던 터였더라, 욕심만 앞서서 뒤늦게 참석인원 한명씩 맞게 전부 작게 상품을 사비로 준비해갔다. 다들 아낌없이 감산타로부터 선물을 받고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새벽2시에 헤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2023년, 졸업학년인 4학년 복학과 동시에 회사에 계약만료까지 잔류하기를 결정했다. 너무 망가진 몸을 일으키려고 운동(킥복싱)도 등록하고, 취미로 공부하던 연기학원은 1년을 넘겼으며 정신건강은 완치를 이루며 처음으로 제대로 교제를 해보는 남자친구도 생겼다. 이 모든 성과들을 단 상반기만에 진행시키다보니 몸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 정신머리에서도 떫친소를 챙겨야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11월초부터 떫친소를 예고했다. 하도 안되겠어서 마침 점심시간에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정과장(같은 인턴이었고, 내가 부르는 별명이 과장이었을 뿐이다)으로부터 조언을 받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뽑아 이번 떫친소는 집무팀을 최종적으로 세명이나 뽑아 스탭으로 함께 나와 파티를 기획했다.

그렇게 2023년 12월13일 당일날, 나를 포함한 총 16명의 인원이 함께한 제4회 떫친소가 치뤄졌다.


오늘은 그날의 소중한 기억을 더듬어보고자 기록을 남기는 글을 게시한다.


전날인 12일은 정말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날은 연기수업을 합정 연습실에서 진행한다는 전달을 받아서 미리 도착해 다이소에서 일회용품을 이것저것 잔뜩 사들이고 있었다. 수업이 40분 남았을 참에, 미나쌤한테 보이스톡이 걸려오더니 갑작스레 모든 분들이 못 오시게 되어 오늘 수업을 휴강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셨다. 마침 내가 합정역에 있다는 걸 아셔서 용쌤도 함께 있으니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자고 하셨다.


비가 올랑말랑 소나기가 내리는듯 한데 우산 펼칠 손도 부족한 채로 낑낑대며 스타벅스로 향했다.


3회에서 열심히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던 용쌤이 4회 참석을 못하게 되어 유감이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미나쌤은 스타벅스 시즌메뉴로 나온 딸기라떼를 사주셨다. 저녁 대신 마시는 달달한 한잔이 혀를 녹였다.


어딘가 긴장도 함께 놓였는지 며칠 전 전공과목 교수님과 늦은 시간에 비대면 면담을 나누다 들었던 걱정을 털어놓았다. 예상치도 못했는데, 너무 사려깊은 조언과 응원을 해준 용쌤 덕에 수업을 대신한 티타임 후 생기가 돌았다. 집에 도착해 잘 준비를 하고는 마무리 검토를 하며 집무팀에 연락을 했다.


이럴수가. 여러 게임들 중 하자고 했던 보물찾기도, 제일 중요한 선물뽑기도, 주루마블도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너무 정신없어서 스탭들한테 할 일 체크만 하고 검토하지 못한 나도 잘못이었고, 회사에서도 연말업무로 정신없었던 스탭들도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다행히 손쥴이 다급하게 수작업으로 쪽지를 접어 뽑기를 만들어냈다. 주루마블도 본인이 해보겠다고 했고,

주루마블까지 완성되면 됐다-라고 한 말을 츄츄가 잘못 이해해서 보물찾기도 당일날 오전에 만들었다고 한다.

무튼간에 그렇게 허둥지둥 밤이 넘어가고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밀린 집안일들을 하며 낮을 보냈다.


블랙잭세트를 두고 갔던 츄츄는 우리집으로 넘어와서 나와 준비물들을 같이 들고 파티룸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아 젠장,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렸는데 이 친구가 작업을 끝내주지를 않는다...

차마 두고 갈 수는 없으니 6시 오픈인 파티룸을 선두주자로 도착하는 손쥴(과 세트인 손쥴의 남친 현우씨), 지몬에게 세팅 준비를 부탁하고 세탁기가 끝나기까지 기다렸다. 그 동안에 츄츄와는 드레스코드를 자랑하며 신나서 얘기를 나누다 황급하게 빨래를 널고 나섰다.


세상에, 눈이 엄청나게 퍼붓고 있었다.

우아, 너무 예쁘다. 하늘에서 퍼붓는데 차가운 얼음송이가 닿으며 오던 졸음도 화들짝 깨자 자연스럽게 따뜻한 오빠가 떠올랐다. 같이 눈을 보고 싶은데 떫친소도 못 오고 정신없이 촬영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선뜻 전화도 할 수가 없었다. 애써 칼바람을 무시하고 택시를 잡으려는데 도통 잡히질 않아 20분 가까이를 추위에 떨다 결국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오는 듯 마는 듯 한 분위기에 횡단보도만 세번을 왔다갔다했다.


내리자마자 강추위를 뚫고 미친듯이 달려 파티룸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한산했다. 손쥴과 지몬은 바텐더를 맡은 손쥴의 나머지 재료를 사러 마트로 이동한듯했고, 홀로 남아있던 현우씨는 4절지를 받아 대충 네임펜 한자루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루마블을 그리고 있었다.



손수 선물별로 컨셉 카드를 만들어 포장까지 했었고, 카드를 보고 어떤 선물들이 있는 지 구경할 수 있도록 진열도 해놓고 테이블 대형도 맞췄다. 음식까지 시키고, 그렇잖아도 정신이 사나운데 파티룸 이것저것 만지며 놀고있는 스탭들한테 큰소리로 잔소리를 좀 던졌다. 흥분하면 항상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버려서 차분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렇게나 화가 많아서야.


차차 사람들이 도착하고, 친언니와 형부 부부가 케이크 픽업도 대신 해줬으면서 와인 두병도 기부해줬다.

노래방 기계가 있어서 마이크 전원만 연결해 오늘의 mc 컨셉으로 사람들을 아일랜드 식탁 형태로 앉혀놓고 개회식을 시작했다. 주목을 시킨 다음,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내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 앉아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순간 뭉클해서 어떤 말부터 주저리 해야하는지 망설여졌다.


우선은 떫친소가 생소한 사람도 많았기에 앞서 정리해뒀던 서론처럼 떫친소의 시작과 이어서 오늘날까지의 전말을 소개했다. 그리고 고생한 집무팀을 소개해주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마이크를 쥐어주곤 '저는 떫음이의 ~~ 친구입니다.' 하고 소개하도록 시켰다. 뭐가 그리들 부끄러운지 쑥스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씩씩하게 다 하곤 자리에 앉았다. 식사를 하기 전에 쟁쟁한 후보들을 뚫고 선택받은 주문제작 케이크에 비행기 초를 꽂아 개회식을 마무리했다. 마치 내 생일파티 같아보였지만 어쨌거나 주최자인 내가 초를 부는게 맞긴 했다.



한쪽에 진열해놓은 배달음식들을 급식소 배식받는 형태처럼 줄서서 자기 접시에 먹을만큼 담아갔다. 감주권을 만들어 나눠주고 바텐더 손쥴에게 주문을 하면 한잔씩 말아줬다. 나는 음식은 못 먹고 뒤늦게 오는 손님을 받거나 대화에 참여하다가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면 따로 가서 토크에 자연스럽게 끼도록 마련하거나 근황을 얘기하곤 했다. 아무래도 떫친소 특성상 내 지인들만 오는 자리였기 때문에, 서로 우연히 아는 지인들끼리 겹치는 경우는 반가워서 잘 놀겠지만 아는 사람이 나 하나뿐인데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놀고 있는 경우엔 어느 곳에 어떻게 껴야할지 그 누구라도 애매하다.


모든 사람을 알고있는 내가 먼저 끼어들면서 마치 유느님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자연스럽게 한 얘기에 모여들게 만들어야한다. 그게 가능하니까 내가 이런 파티도 주최한거였지만.


어느 정도 디너타임을 가진 다음 슬슬 테이블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크게 세팀으로 짰다.

준비해둔 게임은 신서유기 분위기처럼 레코드게임, 영화퀴즈 몸으로 말하기, 브랜드게임을 진행하고,

츄츄가 준비해온 보물찾기를 마지막으로 다같이 해봤다. 봉투 안에 엄청난 수의 미션쪽지가 있었는데,

그걸 나를 도와줄 두명만 제외 후 전부 이 추운 날씨에 파티룸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 사이 파티룸 곳곳에 쪽지를 야무지게 숨겨놓고, 시이작 하고 외치면 이 수많은 성인들이 쪽지를 찾으려고 미친듯이 방 곳곳을 뒤져댄다. 노즈워크에 간식을 숨겨놓고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주인의 기분이 이런걸래나, 하고 정중앙에 의자를 두곤 앉아 기다렸다.


흥분한 친구들을 내 앞에 한줄씩 서게 해서, 각자 뽑아온 쪽지들을 정리해줬다. 몇 감란트를 받거나 게임에서 성공하면 감란트를 받는 형식의 쪽지가 차곡차곡 모아졌다. 게임은 봉투에서 또 게임 종류를 뽑아야 하는데, 그날따라 가위바위보를 너무 못해서 가위바위보만 걸리면 감란트를 참가자들에게 거의 갖다바쳤다.


거대한 게임들이 전부 끝나고 막차를 타고 일찍 떠날 사람 몇몇은 자리를 떴다. 챙이는 식사만 하고 졸작마감을 끝내지 못해 돌아갔고, 수현언니는 보물찾기까지 버텨 열심히 선물뽑기를 했지만 전부 꽝이 걸려 터덜대며 막차를 타러 갔다. 마침 레코드게임 쯤에 연주를 마친 여누언니가 도착했고, 작년 크리스마스 날 여누 언니의 공연을 보러 갔던 갱랭이가 반가워서 언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이렇게 남은 사람들은 야매로 준비된 주루마블을 하거나, 한쪽에선 츄츄가 준비해온 블랙잭이나 내가 들고온 블리츠 보드게임을 했고, 갱랭이와 여누 언니는 둘이서 오붓하게 1년간 밀린 토크를 하며 부쩍 친해진 모습이었다. 난 또 이쪽 게임 저쪽 게임 토크쪽 여러번 돌아가며 참여하고, 자정이 지나 새벽1시가 됐을 무렵 마지막 감란트를 끌어모아 선물 증정을 끝냈다. 사실 형부가 하나도 못 얻어서, 이 부부가 케이크 픽업도 도와주고 와인 두병도 기부해줬으니 마지막 남은 선물을 형부에게 공짜로 증정했다. 다들 인정했고 축하한다며 박수를 유도했다. 연말에 이런 오붓하고 따뜻한 내 사람들의 모임을 보는게 항상 뭉클했고 그래서 나는 떫친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이후 심야버스를 기다릴 겸, 전등을 전부 끄고 전구 조명만 켜놓은 후 노래방 기계 전원을 켰다. 그때부터는 이제 심야 공연이 펼쳐졌다.

지몬언니도 약한 체력에 집무팀이란 의리로 꽤 끝까지 버티다 택시를 타러 나갔다.

이 부분은 기억하지 못했는데, 다같이 지몬이 떠날때 배웅하러 나가줬었다고 기입해달라고 부탁받았다.

생각해보니 여누언니가 택시 잡을 때도 갱랭이와 마중을 나가 벌벌 떨다가 태원이가 안에서 담요를 들고나와 두르고 계세요, 라며 전해주곤 도로 들어갔었다. 그랬다가 영 안 잡혀 다시 안으로 다같이 들어갔었던 기억.


언니와 형부는 근처에 잡아둔 숙소로 향하며 설때 보자고 인사를 나눴다. 태원이도 일찍 나섰고, 으누와 다원이는 내가 노래 부르는 걸 구경하며 떠들다 2시쯤 심야버스를 타러 나섰고, 여누 언니도 택시를 잡으러 떠났었다. 츄츄는 피곤이 역력한 상태가 마치 취객인 마냥 비틀대며 헛소리를 하다가 택시를 타러 나갔다. 최종적으로 남은 인원은 나를 포함한 여섯명이었다.


서훈이는 사실 오늘로 두번째 보는 날이었는데, 나와 리쌍 무대를 듀오로 찰지게 잘 소화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 녀석, 꽤 잘 노는구나. 임갱랭은 꽤나 고고하게 노래를 잘했는데, 한소절 한소절 주옥같이 잘 부르다보니 밴드를 하는 현우씨는 왜 보컬을 안하냐며 감탄했다. 부끄러워하다가 갱랭이는 뒷편에서 담요를 깔고 잠에 들었다. 남은 독수리 오형제들은 미친듯이 놀다가 민지는 남은 와인을 나눠 마신 후 잠이 들었다. 네명일때는 나는 좀 쉬었고, 현우씨와 기타를 친다는 서훈이 둘이서 락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졸음에 반쯤 감긴 눈으로 감상을 하며 참 내가 줍줍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멀쩡하지 못하군, 싶었다.

정신차려보니 서훈이는 게이밍 의자에 누워 고장난 것마냥 고개를 비틀고 기절해있었다. 입도 돌아간건 덤.


분명히 몇분 전까지 남이 노래하는 걸 감상하며 사실 저 며칠 전에 실연 당했거든요? 라며 사연을 중얼대다 조용해지길래 확인했더니 그래 그랬구나. 가장 질풍노도였을 스무살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하구나.


결론은 나는 골때리는 커플과 생존했다. 이 골때리는 커플은 작년에도 함께 와선 쇼를 하더니 평상시엔 골골대면서 꼭 이 파티에서 묵힌 에너지를 발산한다. 시간이 지나 새벽6시가 됐다. 해가 뜨는지 안 뜨는지는 파티룸이 지하라서 알 수가 없다. 우린 밀실 안에 묶여 이 커플이 발악하는 공연을 지켜보는게 당장에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러다 손쥴이 털썩 주저 앉았다. 이제 끝나나 했는데 현우씨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랬더니 거기에 또 부추겨주는 손쥴이 제정신이 아닌 듯해서 뒤통수를 떄려주고 싶었지만 나도 그냥 드러누워 감상하다가 파티룸 나갈 준비를 미리할겸 주변을 다 치웠다. 현우씨는 아무것도 없어도 의자와 책상 끄트머리만으로도 피아노를 치는 보헤미안 랩소디 공연장을 선보였다. 고막이 터지다 못해 고막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집가서 확인해야겠다, 하고 있을때쯤 워낙에 많이 청소를 해놓으니 현우씨가 알아서 기계를 끄셨다. 그래, 그쯤 해둡시다. 어느 샌가 갱랭이도 민지도 일어나서 청소를 도와주고 있었다. 사실 민지는 현우씨의 울부짖음에 벌떡 깨서

"아니...목 나가셨다면서요..."라고 한마디 하더니 다시 쓰러졌었다. 안 죽고 멀쩡히 일어나서 다행이다. 문제는 이 친구도 쌩쌩한 스물하나라 그런가 이 짓을 하고 의정부까지 가서 알바를 간댄다. 내 사람답구나.


마지막 관건은 기절한 서훈이를 깨우는 거였다. 흔들고 때려도 안 일어나서 어카지...하고 있었는데 대뜸 현우씨가 다정하게 머리맡에 다가가 아이폰 알람음을 귀에 대줬다. 우렁차게 골던 코골이가 멈추긴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되겠다며 현우씨에게 지시를 했다. 베고 있는 통통한 악어 쿠션을 빼버리라고 시켰다. 공연에 힘을 쏟아부은 현우씨는 남은 힘을 다해 쿠션을 뺏었다. 그러자 여전히 눈이 감겨있는 서훈이는 쿠션을 바짓가랑이 매달리듯 붙잡으며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 노력해볼게요," 라며 잠꼬대를 했다.


내가 차분하게 토닥이며 "괜찮아. 노력은 안 해도 되니 이만 일어나렴."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몇대 더 쳤더니 깨어났다. 골때리는 커플은 손쥴 때문에 남은 술들을 다 끌어모아 파티룸 앞에서 택시를 탔고, 갱랭이는 역으로 갔다. 밖은 환했다. 해가 이미 뜬지 꽤 된 아침 찬공기가 가득했다. 서훈이는 이대역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며 손에 쥐어준 남은 크랜베리 쥬스 한통을 품에 안고 큰몸을 이끌며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혼자 3분 정도 부른 택시를 기다리다 서둘러 타서 집앞에 내렸다. 전날 저녁 츄츄와 그렇게 안 잡히던 택시가 아침에는 쏜살같이 달려와서 감지덕지였다. 한창 촬영하러 출근했을 오빠에게 뒤늦게 답장해서 미안하다며 생존신고를 한 뒤 잠옷도 갈아입고 세수와 스킨케어까지 말끔히 한 후 침대에 몸을 던졌다. 눈을 뜨니 오후4시. 전날 아침에 사둔 망곰이 꿀호떡버거를 냉장고에서 꺼내 돌려먹으려고 전자렌지 문을 열었다가,


이틀 전에 돌리려고 넣어둔 어묵볶음 반찬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일요일 오후에 이렇게 정신없는 한주가 지나갔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뒤엉킨 남은 어묵반찬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으며 올해 묵힌 미련도 내다버리자며 머리를 비웠다. 함께한 모든 인연들이 행복하게 연말을 잘 마무리 했을까. 그랬기를 바라며 나는 또 다음날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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