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번아웃와서 하는 주저리 24.04.27
“~~그래서 이럴 때 어떻게들 하세요?”
“어....예? 그극그게 무슨 말...이죠?”
내 반응에 옆에 계신 분들이 살짝씩 웃음이 터졌다. 어려운 듯한 질문에 내가 못 알아들어서 나온 반응이라고 여긴 웃음일거다. 근데 실은...
질문에 집중하려는데 동공 한쪽이 저만치 테이블에 있는 커플이 자꾸만 뽀뽀해대는 광경에 홀려서 딴 세상 구경하다가 못 들은 거였다.
죄송해요, 그쪽 질문 안 듣고 저기 앉은 커플이 뽀뽀하는거 보고 있었어요. 맞아요, 쟤네. 어머머머 이번엔 길게 한다 여기서?! 키스까지 하는거 아냐?!
라고 할 수는 없지.
카페가 마감해서 토크를 끝내고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또 다른 커플이 길한복판에서 앞뒤로 부둥켜안고 우다다다 걸어가는걸 마주쳤다.
아, 저녁은 왜 이렇게 쌀쌀하지, 라며 그 커플을 지나치고 심야버스를 타고 동네로 갔다.
자정이 좀 넘은 시간, 집까지 걸어가는데...
오피스텔 건물 옆 벤치가 한 서너개 있는 조그만 쉼터에서 남녀가 홀린 듯이 키스를 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마저 하세요...
그 또한 구경하고 싶었지만 애써 지나갔다.
그날 밤에 잠자리에 들며 어렴풋이 든 생각은 단순히 그랬다.
부럽다.
길에서 그런다고 민망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그런게 전혀 아니었다.
왜냐면 본 모습들 전-부 나도 했던 것들이라서.
쌀쌀한데 내가 얇게 입어서 이리와! 하며 자기 겉옷 안으로 품어줬던 거.
그렇게 둘이 한 몸이 된 것마냥 부둥켜안고 횡단보도를 걸어가고 버스를 기다리고.
키스를 나누던 그 벤치에서 내가 한건 아니었지만 어둑한 시간 열대야에 그곳에서 서로의 호감을 쌓으며 얘기를 나눴었다.
야...
내가 키스를 해본 지가 얼마나 됐지?
근래 계속 현저히 느낀 건 아, 번아웃이 찾아왔구나였다.
내 예민한 촉이 슬슬 올 것 같은데...라는 말을 종종 걸어오긴 했으나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는가. 애써 외면하다 그래,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찾아왔구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별 충격적인 사실도 아니었다. 누가 봐도 올 법한 상황일 거 같았고, 그럴 만한 이유는 그저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무얼 해야 하는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취준? 내가 마땅히 하고 싶어했던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참, 줏대도 없지. 내가 전남친과 만날 때 화가 나면 느끼며 속으로 중얼댔던 말이었는데. 실은 나 자신이 불안정하니 화가 난 걸까.
유독 외롭다.
그렇다고 뭔가 열정적으로 '갑자기' '아무나'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하고 싶은 수준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사람을 피한다니. 뭐하는 짓이람. 혼자 있는 건 적적하고 싫으면서도 또 나만의 생각이 필요하다. 이게 대체 무슨 심보일까. 어라라, 꼭 점점 한창 예전에 내가 많이 아파 혼란스러웠던 시절 하던 사고방식과 비슷해지고 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잖아. 그래,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의욕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 내가 너무 무서워서, 동앗줄이라도 붙잡는 기분으로 이렇게 주절대고 있는 거다.
사랑.
사랑이 하고 싶다, 나도.
그저 좋은 마음, 좋아하는 마음, 간질함, 설렘의 만남이 끝나면 일정 시간 동안 심심하고 외롭다.
아, 이런...이렇게 만남이 끝나버리다니. 또 다른 인연은 어디 있을까? 하는 정도.
그렇지만 진짜 사랑이란 걸 겪고 나니 모든 결과물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에 익숙해지고 견뎌내며 마음을 추스르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은,
‘내가 또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막연한 의문만이 장기간 동안 감돈다. 장기간이 얼마나 갈지도 모르겠다.
내가 과연 이 사랑을 잊을 수가 있을까. 미련은 꽤나 버렸을 텐데, 그럼에도 문득 찾아오는 이 아픔에 괜히 괴롭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이 남아 힘든 것 보다는 그걸 견뎌내고 난 후, 그렇다면 나는 다시금 이렇게까지 사랑을 해볼 수 있을까라는 내 마음 속 깊은 곳 본연에 의심이 가서 괴로움에 허우적대는 정도.
있을까, 사랑이.
사랑을 하면 사람이 지치기 쉽지 않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어라 힘들고 괴로워도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안간힘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때문에 나는 사랑을 하며 나에게서 너무 많은 걸 발견해냈다. 이렇게나 내가 대단할 수가 있구나.
그런데 그런 내가 사랑을 끝내버리니 이제 대단한 나의 모습을 찾아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웃긴 건 자존감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예전엔 자존감만 높으면 이런 걱정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역시나 인간의 굴레는 영원했다.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자존감도 나 자신도 많은 걸 얻어냈더니, 그로 인한 또 다른 영문과 괴로움이 함께 온다. 그럼 이제 대체 뭘 찾아야만 하지.
여전히 내 스스로가 존엄성 있고, 단란하게도 잘 살아간다. 일이 없어도 당장에 함께 놀 사람이 없어도 내가 하던 대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삶을 ‘즐겨낸다.’
즐긴다가 아니라, 견뎌내는 것처럼 즐겨내는 거였다는 걸 마주하면 또 울컥하는 거다.
이렇게 매력있고 멋있는데 왜 만날 사람이 없지가 아니라
이런 나를 왜 그 사람은 포기한 걸까란 생각밖에 안 든다. 그래서 처음엔 그 사람과 재회하는 상상을 수십가지를 할 때, 나를 한 번이라도 버렸던 사람한테서 어떻게 다시 신뢰를 갖고 사랑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반면에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표현이 어이없다.
자기 합리화일수도 있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하는 의문은 사실 멍청하다는 걸 안다. 적어도 그 사람 또한 나를 사랑은 했던 것만 같다.
나처럼 이 사람이랑 이대로라면 나중에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까지 무의식 저 너머에서 잠깐 두둥실 떠올랐었을지, 나를 보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생각하고 그랬을지 그 누구도 평생 알 수 없다. 진짜는 그 사람도 모를 수도 있고, 그 사람 안에 존재하는 진실만 알 거다.
그러니까...두달이 지난 지금 다시 고쳐보면,
그 사람은 왜 이 사랑을 떠나보내기로 한 걸까가 좀 더 맞는 것 같다.
포기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내 딴에는 이쪽이 좀 더 나은 거 같다. 더이상 내가 갖고 살아가기엔 힘들다고 판단한 것. 그 부분에서 포기가 맞지만 대상이 다르다.
이런 ‘나를’이 아니라 ‘이 사랑을’ 이다.
아직까지 이별의 아픔에 대해 종종 허우적대는 내가 곱씹는 건 더 이상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했던 ‘이 사랑’인 것만 같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놓고 봤을 때 이 사랑을 끝내는 게 맞았던 선택인 거겠지.
극강의 효율충이 공통점이었던 나와 그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된 것도 같다. 현실적인 여건에 대해 무엇보다도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런 편이지만 가끔 내가 간절하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는 꽤 달라지는 편이었다.
다시금 의욕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며 달려왔지만,
이쯤 되니 사랑하는 것보다 큰 의욕을 다시 갖고 온다는 건 안된다는 걸 몸소 깨달으며 내가 멈춰버리게 된 것 같다. 진짜 사랑을 해보기 전까지는 이게 최대치라고 알고 해내왔지만, 진짜 사랑을 했을 때 치트키를 쓴 것 마냥 나도 몰랐던 잠재력들로 최대치를 끌어냈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나도 이제 알게 됐다.
그런데 사랑이 끝난 내가 어떻게 그 전으로 돌아가겠어.
본능적으로 아, 번아웃이 찾아오겠군, 이라고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되돌릴려고 해봤지만, 자연의 섭리처럼 그 파도를 맞이해버렸다. 어떤 재난상황에 대한 준비를 하며 댐을 쌓아올려도 엄청난 해일 앞에서 한낱 작은 존재는 무용지물처럼 되어버리기 일쑤다.
‘두달 후면 완전한 쓰나미가 덮칠 거에요. 준비하세요.’
라는 예고를 촉에게 들은 이성은 아니 어쩌라고...하면서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자, 라며 이것저것 쌓아올렸지만 직격타를 처맞으니 살아는 있어도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며 어떻게...다시 살지? 만 몇날며칠을 중얼대는거다.
그렇게 속속들이 파고들어 내 상태를 다 파악했을 때,
지금의 내가 바라던 의욕을 찾는데 알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이란 거였다.
다시 일으키는 것이
한번 해본 사랑일지 / 새로운 사랑일지 / 또는 예기치 못한 분야의 사랑일지?
그건 내 예민한 촉도 모를거다. 왜냐면 내 촉은 지나치게 예민해서 똑똑하고 예지력도 좋지만 이—상하리만치 사랑에서만 뚱딴지, 둔함, 말그대로 눈새(눈치없는 새끼)다.
하여튼, 의식의 흐름대로 이 글을 써내리는데 번아웃이 더욱이 실감난다.
사실 첫 단락을 적어놓고 1시간을 혼자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은 건지
사랑할 때의 내가 그리운 건지
후자가 맞겠지. 후자가 그립기 때문에 그런 나를 아는 기회를 안겨준 그 사람도 보고싶어지는 거다. 잘 살아? 내가 잘 지내라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진짜 잘 지낼까봐 또 짜증나네.
이게 사람 마음인가보다.
이별한지 3일 뒤에 오사카 햅파이브 관람차 정상에서
오겡키데스까처럼 오사카 전경을 보며 그 사람한테 잘 지내라고 소리를 질렀었다.
눈물은 덤.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네가 준 좋은 기억 안고 더 멋있게 나아갈거야.
그러니까 너도 멋있게 잘 지내. 사랑했어!
아아아아주 그냥 혼자 청춘 영화 찍고 와라.
이제 떠올려보니 감성팔이에 쪽팔려 죽겠다.
뽀뽀도 하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고 섹스도 하고 싶고
...
실은
아침에 일어났다고 문자도 보내고
하릴없는 하소연이나 일상 얘기도 하고 싶고
상대의 징징댐을 지겨워하면서도 안아주고 싶고
가끔은 날 좋을 때 휴일일 때 데이트도 하고 싶고
불같이 싸워놓고도 싸운 이유가 사랑해서 생긴 감정적인 이유임을 알고 화해의 포옹도 따뜻하게 하고 싶고
당장은 없지만 사랑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랑 그러고 싶다.
그런 나는 또 다시 없던 힘이 생겨날까.
그럼 나에겐 또 새로운 인생이 열릴까.
내 인생은 너를 만나기 전후로-
근데 내가 이 말을 어디서 봤지?
진짜로 인터넷 감성글귀에서 본건 맞다. 막 핀터레스트 이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