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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May 21. 2024

T들이 사랑하려는 방법이

그냥 그렇다고 해주자

사람마다 말을 하는 이유가 다 다른 건 맞다.

누군가는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게 위로와 공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터놓는 것일 수도 있지.

다만 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 정리가 한번 더 명확히 된다. 심지어는 말하면서 아 내가 이런 마음가짐이었구나, 하며 흐름상 깨닫는다. 하다못해 무거운 얘기를 하게 되면 말하면서 점차 공중분해가 되어 가벼워지는 효과도 있다. 다만 아무에게는 못한다. 그래서 나를 잘 아는, 내가 그저 주절대며 차분해지고 싶어서이기 때문이고, 그런 시간을 함께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는 상대에게 그렇게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이런 것도 늘상 다를 수 밖에 없는 건 어쩌랴.

여태까지 그런 나를 잘 알고 그렇게 잘 들어주던 누군가도 어느샌가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해도 되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라라...     


최근 계속해서 내 글감들의 화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이 전남자친구를 비롯해 나오는 생각들이다. 근래 겪은 가장 큰 소용돌이들 중 가장 컸기 때문에 이후 어떤 자잘한 강풍이 와도 그 태풍만큼의 위력처럼 날 다시 흔들진 못하고 있다.

지금은 꽤나 잠잠해지고 무너진 것들도 견고하고 단단하게 쌓아올리는 참에, 재건설 기간을 보내며 현저히 느낀 것은 사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있던 곳에서 잠깐이라도 떠나보아야 비로소 평소에 있던 것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우리가 평화적인 일상을 잊다가 재난영화를 보면서, 역사적 소재의 작품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편안히 숨 쉬는 이 순간조차도 소중해짐을 느낀다.     


많이 아픈 것만큼 그만큼씩이나 감정이 컸다는 것도 알고, 그게 사랑이었다는 것도 안다.

만남의 시작은 늘 단순히 좋고 재밌어서가 맞다.

그 인연이 이어지면서 추후에 사랑이 되느냐 그저 만남이었냐는 달라진다.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연애하는 너가 좋은 거야, 그 사람이 좋은 거야?

이 얘기는 처음 겪는 사람은 지나치게 혼동이 오는 기준이긴 하다.


나는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을 때도,

초반에 이 사람의 어디가 좋아서 만났냐를 들었을 때에 오던 아이러니함에도,

수십 번을 다시 정리해본 지금도 답을 보니 애석하게도 그때 그 사람을 사랑해서였다.

그런데 이 얘기를 털어놓으면 그 누구도 답을 그런가 보다, 라고 하지를 않는 게 더 아이러니했다.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가 여러 번 겪어보고 답을 냈다고 하는데, 왜 다들 그게 아니라고 반응을 해오는지가 좀 그랬달까.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이란 이해하려는 마음이라고.

요즘은 거의 보편화되어 논리처럼 떠도는 MBTI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T 유형의 사람이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데 이번엔 그냥 넘어갈게”

라는 말을 하는 상대는 엄청나게 소중한 사람일 거라고.


뭐 이것도 역시나 아무리 T유형이라도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일부분은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나와 성향이 극도로 맞지 않아 불편함을 끌어올리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맞추고 노력하는 건 이 관계를 그만큼 가치 있게 생각하기 때문인거고.

반면에 그런 맞추려는 노력이 나의 일방적인 것뿐이었다는 걸 알게 되거나, 서로 맞춰서도 안 된다는 한계에 부딪혀서 흔들리면 끝을 지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애초에 매순간을 다르게 살아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완전히 알고 이해할 수가 있느냐.

별 다른 상황에 대해 “이해해.” 라는 게 아니고서야

모든 이들이 하는 “난 널 이해해”라는 말은 솔직히 거짓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또한 “사랑해”라고들 한다.     


다른 이들은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의 모습과 그 마음을 절대 알지 못한다.

심지어 본 적도 없는데, 한번 봤는데 어떻게 알아.

신점 같은 걸 꺼려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라고 생각한다. 아니 나를 한번 봤는데 본인들이 뭐라고 나를 이래라 저래라 해? 하는 거지.     

결국 모두가 스스로 하는 말,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이건 불변의 진리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많은 사례를 듣고 보기도 하면서도


나는 나를 봤을 때


물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도 사랑하는 내 모습이 좋은 것도 맞다.

그런데 이것도 사랑한다는 전제가 아니냐. 단순히 좋다는 마음만으로 신난 내 모습도 좋지만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도 보고 느낄 수 있단 말이지.


웃기게도 나는 단순히 좋은 것만으로는 크게 시작하는 마음이 덜했던 듯하다.

괜히 자존감이 낮으니까 나에게 더 박하게 굴고, 그래서 남에게 재는 것도 많은 척했던 것 같다. 어릴 적에라도 다양한 연애를 해본 동갑내기들과는 다르게 나는 겉이 마음에 들면 띄엄띄엄 보다가 별로 좋은 결과로는 못 이어졌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누굴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어도 못했던 것도 같고. 다행히 그럼에도 진득한 짝사랑은 한 두번 해본 기억은 있어서 사랑한다는 감정을 잃지는 않았던 듯하다.     


‘초반에 이 사람의 어디가 좋아서 만났냐를 들었을 때에 오던 아이러니함’도 그랬다.

괜찮은 것 같아서 슬슬 마음을 가져보던 것과의 느낌이 조금 달랐던 것만은 희미하게 기억난다. 언제 한번 처음으로 기회가 되어 고등학교 친구 두명과 그 사람을 데리고 저녁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아마 만난 지 두달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라 아직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도 어떻게 표현할 줄 모를 때였다. 친구들은 장난식으로 우리 둘에게 서로 어디가 좋아서 만났냐고 물었는데, 뜻밖에도 둘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 같아 친구들은 괜히 나보고 얼른 잘생겨서 좋다고 얘기해! 했었다.

한창 서로 친해지고 썸을 탈때는 한여름에도 그렇게 경의선 숲길을 전부 걸었었다.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발에 물집이 잡혔었는데도 막차가 끊길 때까지 나와 걷고 우리집 앞에서부터 또 자기네 집까지 걸어갔었다. 옆 동네였을지라도 종일 걷다가 또 그곳까지 도보로만 가기에는 꽤 걸렸을걸로 안다. 나는 들어가서 씻고 잘 준비까지 하고 나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었으니까. 그렇게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는 서로 바빠서 경의선 숲길은 근처도 못 갔었다.

그날 대뜸 일주일 중 평일 한가운데의 퇴근하고 만난 저녁이었고, 다음날도 어김없이 둘 다 출근인 밤11시였는데도 친구들을 보내고 간만에 그 길을 걸으며 귀가해보기로 했다.

조금 전까지 비가 왔었던지라 산책로에는 사람 하나 없었다.

촉촉이 젖은 공기 속에서 나는 문득 떠올라 말없이 손잡고 걷고 있는 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물었다. 아까 그 질문에서 내가 대답하지 못해서 혹시 좀 그랬느냐고.

당연하게도 본인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 대답에,

난 약간의 뜸을 들이다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솔직히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첫인상 정도는 기억이 나는데, 언제부터 좋아졌는지도 모르겠고, 정신차려 보니 네가 그냥 어느샌가 스며든 것 같다고.

그냥...지금은 그냥 오빠가 뭘 해도 좋은 것 같아.

나는 ‘그냥’ 오빠가 좋아.

그 말에 그 사람이 웬걸 잡고 있던 손에 더 힘을 꽉 쥐었다가 “나도...그래”라며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해줬다. 설명이 부족했지만 그런 마음이겠거니 했다. 그날 이후로 뭔가 더 서로가 편안해지고 애틋해졌었다.     

아직도 가끔 떠오르면 왜인지 모르겠어서 기억나는대로 흠을 뜯어본다.

흠이야 많지만 그런 단점마저도 내가 장점으로 치화해서 좋은 사람이다, 라며 좋아했다.

그런 내 모습이 지금은 실로 놀랍다. 내가 사랑을 하면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구나.     

그래, 나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나름 내 인생에서는 아주 큰 사실을 깨닫게 된 일이었기에 생각정리를 하며 누군가들에게 이 얘기를 어렴풋이 하게 되면 다들 보이는 반응은 그저 그랬다.

야 나도 고딩 때 000 만날 때 그런 줄 알았다

그거 네가 처음 연애한거라 그래

처음 연애하면 그래 연애를 처음 해봐서 그래

-다 똑같은 말이자 뻔히 아는 사실, 근데 머리로도 안 받아들여진다는 건 아닌 거 아니냐.

남들이 다들 흔히 겪는 것. 때문에 너도 그런 거라는 것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 모두가 같은 사람들인데 왜 해결책이 생기지 않는 거지     


그 말들은 내 입장에서 네가 연애한 네 모습이 좋았기 때문에 괜히 계속 쓸데없는 그놈 생각에 허우적대는거지, 정신 차려라는 말이나 똑같이 들렸다.

그렇다고 내가 해명할 이유도 없었다. 알 수도 없는 건데 내가 만난 그 사람은 적어도 나에겐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뭐하러 증명을 하겠어.     

나는 나인데

나는 아닌데

왜 당신들한텐 내가 그게 맞는 건지요     


사람들은 남들이 겪고 난처해하는 상황을 이해 못 해 답답해 죽는다. 아니...나 같으면 이렇게 할 거 같은데 왜 이러는 거야? 그래도 위로와 공감을 해줘야 할 것 같으면, 나도 똑같은 상황 겪어봤는데 다 알아. 이런 거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을 땐 이런 경우도 있군. 근데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텐데 흠...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을 땐 그냥 별말 없이 있었다.     


이전엔 나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몇 마디 말들을 전했었다.

이런 나를 알게 되고 나선 그저 별말 없이 누군가 하는 얘기를 듣는다. 감상을 조금 전달하기는 할 뿐. 어쩌면 자신의 얘기를 전하는 이 사람도 나처럼 그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누군가에게 전하면서 좀 더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려고 하염없이 털어놓는 건 아닐까 싶어서.


가끔 그런 의미로 어떤 얘기를 꺼냈는데 전혀 다른 얘기로 대답을 하며 흘러가는 대화를 마주하면, 그저 당장에 다른 이의 상황을 들을 여유가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냥 그러겠거니 하고 나도 대화하기를 그만둔다. 그래 다음에. 언젠가 다음에. 다시 얘기를 꺼낼 때까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다음에. 그냥 그런 마음으로 남겨둔다.     


이렇게까지 보니 사람이란게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게 은근히 힘든 것 같다.

알아가려고 하는 대화 말고, 서로를 위해서 대화를 할 때 말이다.

그렇지만 이 상대를 위한다면 나도 그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랑으로,

솔직히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을 속으로 말하고) - 알겠어, 라고 말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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