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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Nov 15. 2024

보이지 않는 공포

1. 새벽

친한친구 지용이와 볼일이 있어 길을 가고 있다. 아마도 요 근래 지용이의 촬영건을 도와주느라 자주 만나서 당연한 일상의 장면처럼 보였다.

평소처럼의 대화 흐름으로, 지용이는 최근에 본 어떤 작품 추천을 해주며 얘기를 꺼낸다. 요즘 인기 있는 작품이라 궁금해서 봤고 이런 내용의 전개인데 꽤 재밌더라, 하는 걸 끝으로 그 이후 중간의 기억은 없다.     

그렇게 어느 순간에 지용이가 얘기해준 작품 속의 주인공 몸에 내가 들어가 있다. 이야기는 그대로 흘러가지만 난 1인칭 시점의 화자가 된 것처럼 주인공의 입장에서 모든 걸 바라보고 느낀다.     

커다란 술집에서 파티나 송년회를 하는 듯 길게 테이블을 붙여놓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즐겁게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다. 조명 빛과 먹음직한 음식들이 늘어져 있는 광경은 마치 해리포터 영화 속의 식당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간 몸의 주인공을 ‘나’라고 칭하겠다.     


기억나는 건 나는 계속해서 살코기를 입에 욱여넣었다. 말 그대로 욱여넣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오븐구이 같은 닭고기 조각이나 풀드포크 종류들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분위기를 살피며 한두입 천천히 맛을 봤다. 맛은 있었지만 그래서 먹는 건지 허기를 때우려 먹는 건지 점점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나는 게걸스럽게 손으로 집어 입에 넣기만을 반복한다. 끝에 가서는 그저 내 몸이 어쩔 수 없이 이 행위를 그만둘 줄을 몰라 반복하게 되어있는 것처럼 고기를 입에 넣었고 이 모든 것이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 쯤에 난 내가 무언가를 보기가 두려워 고개를 들지 않고 애써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티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둘씩 비명소리를 내며 불규칙한 순서로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순간이동 하듯이 눈앞에서 형체도 없이 공기 중에 증발된다. 한둘씩 사라져가는 걸 옆에서 보던 사람들은 겁에 질려 어디론가 도망가거나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지금 보니 <삼체>라는 작품이 생각날 정도로 보이지 않는 어떤 그들의 정체가 우릴 휘두르고 있는 건가 싶은, 도무지 상대의 역량을 알 수가 없는 공포였다.


모두가 쏜살같이 사라지고 쑥대밭이 된 만찬 자리에는 나만 홀로 남았다. 나도 곧 갈 거라는 직감이 역력했지만 난 여전히 애써 외면하고 싶은 듯 침착한 척 침묵을 지키며 고기를 입에 욱여넣었다. 그런 내 몸은 두려움에 덜덜 떨며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다가오며 나는 내가 비명을 지르게 될까, 자이로드롭을 타는 것처럼 몸이 슉하고 빨려 떨어지는 느낌이 들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던 중 정말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도 어딘가로 이동했다. 몸이 훅 빨린다는 느낌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사람 사는 빌라와 주택가, 또는 건물이 있는 어느 주거촌, 그리고 나는 약간의 골목을 넘나들다 가정집 하나로 들어간다. 그래도 방 개수가 두 세개는 되는 옥탑방이었던 것 같다.

게임이다. 라고 감지했다. 너무나 현실 같지만 이 공간 자체가 우리가 알던 현실 세계와는 분리되어있는 가상 세계라고 감지됐다. 가상 게임 속이란 소리가 아니라, 실존하지만 우리를 현실 같은 어느 세상에 가둬놓았다는 느낌. 배틀그라운드의 섬에 떨다 놓고 생존하라는 것처럼. 그 누구도 설명을 해주진 않았지만 꿈속이라 가능했던 인지다. 이건 비유하자면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우릴 어떤 오락거리든 뭐든 실험 삼아 잡아다 놓은 일종의 오징어 게임과 같았다. 특정 사람들은 뭔가를 이겨내지 못하면 마치 좀비처럼 미쳐갔고, 주어진 기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와 몸을 피하고 있을 주거공간을 빼앗기 위해 그리고 도망 다니며 멀쩡한 사람들도 서로를 공격했다. 이건 재난영화다, 라며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꿈속에서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벙어리처럼 계속 입을 다물고 침대 위에 올라앉아 웅크려선 몸을 피하고 있었다. 친오빠 되는 것 같은 사람이 나를 포함한 또 다른 아주 어린 여자아이를 지키려 집 출입구를 봉쇄하고 다녔다. 우리는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그 집안에서 버텼다. 바깥은 이따금씩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거나 사람이 죽어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씨는 항상 한결같이 좋았다. 나가보지 못했어도 알 수 있었다. 맑은 하늘에 새하얀 구름 몇 조각이 둥둥 떠다니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는 포근한 햇살 가득한 날씨. 늘상 그렇게 아름다운 날씨의 낮이었다. 이 세계는 밤이 찾아오지 않았다. 어둠도 없는 이 빛 속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서로 죽고 죽여나갔던 것만 같다.


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우리도 힘이 빠져가고, 누군가가 쳐들어왔다. 우릴 해치려고 했지만 힘없는 오빠라는 사람은 우릴 죽이려는 행위에도 신기하게 그냥 못된 장난을 나무라는 것처럼 화내며 아, 하지 말라고! 식으로 뒤에서 가볍게 말렸다. 그래서 그는 칼에 찔렸다. 그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정말 보고만 있었다. 찔리고도 그는 겨우 아, 하지 말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항해 여러번 더 찔렸다. 그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굳게 닫혀있던 화창한 베란다 문을 개방해버렸다. 어떻게든 우릴 해치려는 이 인간을 힘써 막아서다 오랜만에 느낀 화창한 바깥 공기가 너무 신선하고 날씨가 좋아 개운해져 잠깐 몽롱해짐을 맛보았다. 갑자기 밤이 찾아왔다.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와 우리 옥탑방의 아래로 눈부신 야경이 펼쳐졌다. 칼에 찔렸던 오빠라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힘을 써 우릴 쳐들어온 인간을 막는 걸 도와줬고, 우린 이 인간을 처단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구원해주려 내려오는 듯 헬리콥터 스포트라이트가 우릴 비췄다.

아, 게임이 끝이 났구나.

나는 꿈에서 깼다.     


                                                        --------


꿈에서 깬 나는 주변을 살피다 멍하니 깨서 화장실을 한번 들렀다. 찬 공기에 건조해졌는지 목이 칼칼해 시원한 물도 한 모금 들이키곤 부르르 떨며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갔다. 옆에서 자고 있던 남자친구는 아주 푹 잠에 들어 큰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화장실이 고장나 오늘밤은 우리집에서 잠을 자는 그. 본인의 집이 아니어도 편안했는지 다행히도 잠을 잘 잔다.

어딘가 이 상황에 기분이 묘했다. 꽤나 자주, 어쩌면 매일 밤을 이상한 세상으로 왔다갔다하며 여러번 잠에서 깨놓고 뭘까, 하고 예민한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나 평화롭고 곤히 잠을 잔다. 단지 다음 날 있을 출근, 현실적인 일상에 대한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럴 거라며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시 나도 정상참작이 되는 것만 같다.

나는 몸을 한껏 웅크리곤 그의 품에 파고들어 기댔다. 그는 미동도 않고 코를 골았다. 우직한 그의 몸이 그날따라 포근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렇지만 기대고 싶었다. 꿈에 대한 잔상들이 플래시백처럼 몇 가지가 눈앞에 스쳐 지나갔지만 기억도 나질 않고 피로는 몰려온다. 자고 싶다. 너무 자고 싶어서 애쓰는 것처럼 몸을 약간씩 뒤척였다. 이 자세가 편할까 이렇게 누워볼까 추운걸까 하며. 그 사이 남자친구가 잠깐 깨 눈을 떠 나를 보았다. 내가 품에 안긴 건 당연한 거였지만 그래서 나는 잠긴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또 꿈을 꿨어...”

그렇게 말하며 그의 품에 파고들자 그는 몸을 내 쪽으로 돌려 우직한 팔로 안아줬다. 마른 사람이 아니라 근육 가득한 팔뚝이 사실 베고 있자기엔 딱딱하고 아프다. 그의 덩치에 누워서 안기면 조금 숨이 막히기도 한다. 그런데도 잠깐은 이러고 있고 싶었다. 이러고 있으면 물리적인, 그런 억지스러운 안정감이라도 들어 나도 똑같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같은 소망.

그는 금새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그 상태로 몸을 말고 있다, 몸이 더는 피로에 못 이겨 다시 제대로 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품에서 나와 정자세로 잠을 잤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해가 뜨고 그는 먼저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치고 출근을 했다.

잠귀가 밝은 편이라 보통 누군가가 일어나서 먼저 씻고 하는 모든 행위에 선잠이 들어 알고 있는데, 오늘은 얼마나 피곤했는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다가 그가 나가기 직전에서야 알아차렸다.

겨우 눈을 떠 인사를 해주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한번의 꿈을 더 꿨다.


2.아침

아주 어두운 새벽에 나는 잠에서 깬다.

어딘가 부산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 같이 몸을 일으킨 나는 잠을 덜 깬듯 어딘가 붕 떠 있다. 아마도 마른 갈증에 냉장고로 발걸음을 향했던 것 같은데, 현관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이 건물에선 밤중에 항시 켜져 있는 복도의 조명이 현관문 철문 틈새로 비치기 마련이다.

그런 수준으로 바깥이 미세하게 보였고, 나는 잠결에 별 생각없이 남은 문을 닫으려 손잡이를 밀었고 누군가 뒤늦게 열린 탈출구를 붙잡으려는 듯 다급하게 붙잡았다.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나 또한 있는 힘껏 문을 닫으려 애썼다. 거의 틈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기기를 몇 초간 버텼는데, 꿈에서는 물리적인 사실이 무색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어느 틈새로 두 사람 정도의 실루엣이 보이더니 칼을 들이밀어 보이지 않는 나를 해치려 휘둘러대 피하려던 나는 문손잡이를 놓고 만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초등학생 때 한두번 같은 반을 해봤던, 그때의 얼굴로 아는 동창 남자애와 여자애 한 명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문 닫을 테니 나가 달라 부탁한다.

둘은 나에게 배신당한 것 마냥 어딘가 잔뜩 성이 나선 칼을 들이밀며 저리 비키라더니 집안으로 들어왔다.

중요한 장부 같은 걸 찾는 것처럼 내 방 서랍장부터 이리저리 뒤지며 뭔가에 아주 급급해 있고 그 광경을 보는 나는 끔찍함에 하지 말라는 단어로만 소리를 지른다.

눈물이 찔끔 흘러내리며 창밖을 돌아보는데 헬리콥터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다.

그 순간 내 곁에는 날 믿어줄 이 하나 없다는 게 실감이 난다.

꿈에서 깼다.

                                                    

                                                                         --------


어디 얻어터진 것 마냥 머리가 멍했다.

시간을 보니 조금 더 밍기적댔다간 약속 시간에 늦을 판이었다. 헤롱한 몸을 겨우 챙겨 재빠르게 준비를 하곤 집을 나섰다. 두 가지의 꿈을 꿨던 것이 생각나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멀미를 함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을 켜 꿈의 내용을 조금씩 기억해 기록했다.

빠르게 작업을 끝내고 금세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딱 점심시간이 한창이다. 바깥도 직장인들이 잔뜩 몰려나와 있는 분위기였다. 나도 배가 슬 고파졌다. 집에 들어와 허기가 점점 져가고 꿈을 마저 기록했다. 이젠 배가 너무 고파 힘도 기력도 없어지는데 무언가를 먹을 생각을 하니 입맛이 떨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온갖 음식들을 떠올리다가도 왜 이렇게 묵직한 느낌이 들지, 왜 이러지, 싶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새벽에 꿨던 꿈을 떠올린다. 고기 조각들을 계속해서 억지로 욱여넣던 나의 심정. 그 식감. 갑자기 무언가를 씹을 생각을 하니 속이 울렁댄다.

남자친구는 밥은 먹었느냐고 문자를 보내온다. 그런데 답을 할 수가 없다.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뭔가 나는

“꿈을 꿨어”라고 대답을 할 것만 같다.

그러자 동시에 최근 노벨문학상을 탔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생각났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이상하리만치 자꾸 기괴한 꿈을 꾸더니 사람이 어딘가 멍해진다. 그렇게 꿈속의 일로 고기를 거부하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1부에서 영혜의 남편이 이상함을 느끼고 왜 그래? 라는 질문에 영혜는 멍하니 “꿈을 꿨어”라는 대답만 한다.

절대 같을 수가 없고 그건 픽션이란 걸 알지만 이 상황에서 물씬 느껴지는 내 모습에 갑자기 어딘가 동일시되는 헛생각이 들고 그러자 모든 게 무서워진다.

혹시 나의 어딘가가 잘못되어가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무의식 중에 무언가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대체 뭐길래.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아직까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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