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딸은 굳이 따지자면 할머니보다는 엄마 편이다.
어느 여름날, 시장에서 딸기를 사 가지고 한 바구니에 가득 담아 엄마, 할머니, 나는 셋이서 앉아서 같이 딸기를 먹고 있었다. 엄지손가락보다 큰 딸기를 한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무언가에 열중해서 할머니에게 얘기를 하고 있던 엄마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도저히 딸기 먹는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거였다. 어린 내가 봤을 때 바구니에 담긴 딸기수는 적고, 할머니는 계속 딸기를 드시고 있으며, 나는 딸기가 커서 빨리 못 먹으니깐 아마 엄마 이야기를 끊고 빨리 딸기를 먹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또 어린 나이에 눈치가 보이니깐 대놓고 말은 못 하고 엄마에게 입으로 가려서, 할머니가 다 먹으니깐 엄마 빨리 먹으라고 귓속말 아닌 귓속말을 했다. 딸기를 고수하라는 나의 전언을 들은 엄마와 할머니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으며, 할머니는 어린 게 그래도 엄마 생각한다며 나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그러나 말은 할머니가 다 먹을 거라고 하셨다. 그 와중에도 딸기를 먹지 않는 엄마에 조급증이 나서 딸기를 손에 쥐어주며 빨리 먹으라고 닦달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 같으면. 내가 딸기를 못 먹었을 것이다.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