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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an 12. 2019

07. 고꾸랑 깽깽


  할머니와 엄마와 나는 나의 유년시절 함께 살기도 했고, 또 떨어져 살기도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쭉 함께 살게 되었다. 여담으로, 예전 엄마의 지인 중 그때 당시 친하게 지냈던 어떤 용한 분이 ‘당신 어머니가 결국 당신한테 있다가 돌아가실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도 엄마고 마지막까지 할머니를 보살폈던 것이 엄마와 나인 것을 본다면 그 지인은 참으로 용한 분이 맞다. 못내 아쉬워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나에 관한 언급은 없었냐고 엄마에게 몇 번 떠보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서 별다른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어렸을 때 몸이 많이 허약해서 그때는 매우 엄청 말랐었는데, 내 건강을 염려하는 엄마에게 용한 지인은 ‘크면 건강하고 퉁퉁해질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또한 용하게 나는 지금 건강하고 퉁퉁하다. 그런 건 안 맞아도 되는데 별게 다 용하다 싶기도 하다.      


  늘 일을 하셨던 워킹맘을 둔 무남독녀는 친구보다도 엄마 아빠보다도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주고자 강하게 양육을 하고자 했던 엄마는, 내가 할머니와 자는걸 몹시 싫어했었기에 몰래 새벽에 할머니 방에 까치발을 들고 베개를 안고 거실을 지나갈 때면 어떻게 알고는 문밖으로 소리를 질러 할머니 방으로 가는 나를 저지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내 편을 들어주며, 좀 더 크면 같이 자자고 해도 할미한테 안 온다며 엄마를 제압했다. 물론, 마지막엔 내가 울음을 터뜨리고 생떼를 부려 결국 할머니하고 같이 자는 데 성공했다. 늘 생각했던 거지만, 유년시절 엄마는 여러모로 귀가 너무 밝아 소머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할머니방에 잠입하는 것에 성공하여 할머니를 마주 보고 누우면 할머니는 배를 쓰다듬어주셨다. 누워서 가만히 할머니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할머니 틀니 소리도 들리곤 했다. 할머니는 틀니를 끼는 것을 엄청 부끄러워하셨다. 나는 할머니 틀니가 너무 신기해서 내 앞에서 틀니를 빼보랬다가, 다시 껴보랬다가, 소리를 내보랬다가 이래저래 할머니에게 주문이 많았다. 할머니는 대체 그런 게 뭐가 신기하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손녀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때때로 틀니를 빼서 물컵에 담아놓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서울 수도 있던 장면이 그때는 왜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틀니 소리와 함께 배를 쓰다듬어도 내가 쉽게 잠들지 못하면, 할머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야기의 내용 및 구성이 한결같이 똑같은 똥개 이야기를 해주셨다.  

    

  “고꾸랑 할머니가 고꾸랑 고개를 고꾸랑 하고 넘어가면 고꾸랑 똥개가 고꾸랑 똥을 누고 고꾸랑 할머니가 뭐라고 하니깐 고꾸랑 개가 고꾸랑 깽깽 고꾸랑 깽깽” 


  할머니는 이야기 끝에 항상 자신이 먼저 웃었다. 나는 이야기는 재미있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하고 웃는 할머니를 보고 따라 웃었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할머니 젖가슴을 만지다 잠이 들었다. 엄마는 가슴을 만지면 싫어하는데, 할머니는 무심코 가슴을 내주어 좋았다. 특히, 긴긴 겨울밤에 고꾸랑 똥개 이야기는 매일 밤 할머니에게서 들었는데 아직도 그 출처와 정확한 이야기의 끝을 모른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마침내 치매가 동반되어 나와 엄마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할머니 옆에 앉아 귤을 까다가 고꾸랑 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가 매일 밤 해주던 이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궁금해서였다. 마지막 부분의 고꾸랑 깽깽 까지 왔을 때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가 고꾸랑 깽깽하고 웃으며 답해주었다. 나는 그때 너무 서글퍼 할머니를 안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둘 보 씨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익히기 위해 당신을 습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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