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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an 11. 2019

06. 굳세어라 둘보씨

  

  나의 할머니 둘보씨는 세완 씨에게 시집을 오고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그중 장녀가 바로 나의 어머니다. 세완 씨는 처음부터 둘보씨를 퍽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또한 둘보씨는 외강내유형으로, 겉으로는 여장부 같이 강하고 씩씩했지만 속은 무척 여려 남편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다. 이러한 둘보씨의 성격과 맞지 않았던 세완 씨는 자식을 넷이나 낳고도 부인과 가정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몇 년을 겉돌다 드디어 아이를 낳고 13년 만에 바람이 난 여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그것도 6살 된 자신의 장남을 데리고 도망가다시피 하여.

 

  할아버지는 공무원을 하셨는데, 그 시절 공무원을 했던 양반이라 함은 거드름도 피우고 했을 것이며 그래서 더 살갑게 하지 않는 자신의 부인이 마뜩잖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몇 년을 국가의 녹을 먹다가 갑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사업이 잘되어 한참 집이 번창하였다. 그래서 2남 2녀가 어렸을 때는 집에 머슴도 있었고 논과 밭이 몇십 마지기로 꽤나 잘 나가는 부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잘하던 사업을 확장하여 식당 사업에도 손을 댔는데, 웬일인지 식당 사업을 하면서 잘 안돼 가세가 기울게 되었고 그러는 중 식당 사업 확장 중 알게 된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나 첩질을 했다고 했다.


   엄마의 말로는, 바람이 난 상간녀가 염병(지금의 장티푸스다)에 걸렸을 때, 둘보씨가 직접 간호도 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 돌보았다는데 그런 보살핌을 받고 세완 씨와 바람이 나다니 그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말로는 할머니가 두 사람이 바람피우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했지만, 내가 봐온 할머니는 눈치가 빠르고 촉이 좋아 아마 진즉 알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바람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도 시대인지라 1960-70년대에는 한 가정에 남편 하나, 정부인, 그리고 남편의 첩 등이 정실부인 못지않게 많았던 첩첩산중의 시대였었기에 이는 으레 그러려니 하는 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된 다른 시댁 식구들 - 시어머니와 고모 기타 등등 -이 모두 할아버지를 말렸으나, 그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느 날 홀연히 장남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했다. 그때, 장녀인 우리 엄마의 나이가 13세였으니, 졸지에 둘보씨의 나이 32살에 남편 있는 과부가 된 셈이다. 아마 시골에서의 소문이란 워낙에 감쪽같이 퍼지는 것이라, 온 동네에 할아버지와 첩의 야반도주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러한 소문과 온갖 상상들을 모두 다 감내했을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 남은 3명의 자녀들을 양육해야 했으므로 더욱더 이를 악물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잘 되던 사업 두 개가 모두 망해  도망간 남편과 첩만 잘 사는 어마 무시한 일은 없다는 거였다. 이후 둘보씨는 더 이상 누구네, 누구 댁이 아닌 차남의 이름으로만 살며, 그 이름으로 불리웠고, 그 아들을 위해 평생을 다 바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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