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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콜로지스트 Feb 16. 2024

심리학자의 회고적 육아일기

프롤로그 

학군지 명문고의 부모교육을 다녀왔다. 늘 하던 일이지만 갑자기 문득.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했다  진로, 아니 진학이 더없이 중요한 시대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들이 부모들에게 어떤 가치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기도 했다. 넘치는 교육서와 정보들로 넘치게 잘 알고 있을 내용들이라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하는 고민. 괜히 하겠다고 했나...  


잘 준비된 부모들에게  안정 애착과 관계의 질적인 면에 대한 나의 강조가 마치 당연한 것에 대한 당연한 강조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습, 뭐니 뭐니 해도 대입이 해결되고 나면 더 이상 고민할 게 없어 보이는 자녀문제에 이런 유의 교육철학이 어울리기나 할까 싶다. 겨우 아들 하나, 배운 대로 키우지 못해 고등학생 시절 대부분의 저녁을 남의 아파트 단지를 도는 것으로 보냈던 심리학자 엄마가 과연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었다. 내 강의에 헛웃음 치며 시간 아깝다 돌아서는 베테랑 부모님들이 있진 않을까 그런 매우 현실적인 두려움도 생겼었다. 

      

돌아보면 아이의 성장을 통해 무언가 증명해보고 싶던 욕심도 있었다. 나의 ‘아들 양육기’는 배운 대로 공부한 대로 키웠던 심리학자의 아이가 그 방법이 옳았음을 증명해 내게 만들려는 ‘20년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 나의 제한적인 환경 때문에 ‘안’ 해 준 게 아니라 ‘못’ 해 준 것이 더 많았는데 사실, 이론적으로는 ‘안’ 해도 되는 것들이었다. ‘못’해 주고도 ‘안’ 해준 것처럼 체면치레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냥 결론적으로는 그게 약이 되었기에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에둘러 눙쳐버리면서 옳았노라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됐다. 왜냐하면 아들이 2023년 11월에 치뤄진 불수능에서 국어만점을 받았고, 서울대 24학번 새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은 아이의 대입이 결정되기 전에 책을 써보자 생각했다. 왜냐하면 박사논문 쓰기가 너무 귀찮아져서 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쓰다 말았다. 핑계를 대자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일하는 엄마는 늘 마음과 몸이 다른곳에 머문다. 아들의 대입문제가 일단락 지어지고, 연말연시의 분주함과 명절의 의무가 끝나서야 겨우 다시 펜을 잡아 쓰다만 글을 이어가게 되었다. 뭐 이 작업도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노안을 비비며 인공눈물을 쥐어짜 내며 노트북을 펼친 이유. 나도 아이문제에 있어서는 ‘불안’했던 엄마들 중 한 명이었으며  전문가라는 타이틀도 무색하게 나 역시 배운 대로 살지 못해 내적갈등에 시달리던 그런 엄마였다는 것. 


그렇지만 그 시간의 그 배움은 중요했다. 내적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노력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식문제에 뚝심으로 의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불안한 엄마는 배운 것(이론)과 현실의 상황, 양심과 욕심을 담금질하는 내적갈등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진짜가 된다. 그렇게 고민하고 엄마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엄마는 아이에 관한 더 깊은 이해를, 아이는 부모와의 깊은 관계경험을 얻게 된다.

        

우리집 아들은 소극적인 아이였지만 학령기 9년간 학급 회장을 했다. 초등학생 때는 흔한 학습지도, 수학 학원도 다녀본 적 없지만 교육지원청 수학 영재원에 합격했고, 쉽지 않다는 진급도 했다. 아, 당연히 영재원도 본인의 선택이고 결정이었다. 게다가 영어유치원은커녕 변변한 사교육을 받아본 적 없어서인지 지금껏 영어는 취약과목이었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수능전날까지 놓지 않았다. 


아들은 흔한 등교거부도 없었고,  친구들과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선생님들에게는 “미소 짓게 하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입의 결과와 상관없이 자랑 못할 만한 아이는 아니지만  부디 자랑으로만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더해본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는 아이에게 제공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못했더니 오히려 약이 된 것이라, 엄밀히 말하면 내가 자랑할 게 없다. 나는 서울대를 보낸 엄마가 아니라 서울대를 간 아들의 엄마일 뿐.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용기도 필요하다. 파동이 약해지면 사라지고 마는 말소리와 달리 글에 담긴 이야기는 남아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읽히다 말고 어딘가에 떠도는 혹은 바닥에 버려진 전단지처럼 또 혹은 컵라면 덮는데 쓰인다는 논문처럼 그렇게 될 운명을 굳이 세상에 내놓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임상심리학자로 ‘일’을 하고 있고, 일하면서 아이를 키웠고, 아이가 원하는 것, 내가 해주고 싶던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는 엄마여서 마음 한편이 늘 쓰렸었다. 배운 대로, 아는 대로 휩쓸리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뚝심 있고 단단한 마음이 되길 기도하고 바라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다. 특히 초등학령기는 학교에 아이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엄마들의 역할이 아이들의 역할을 뛰어넘는 일도 많다) 더없이 불안하고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애잔한 마음도 가감 없이 그려보기로 했다. 

 

꽤 많은 책을 읽고, 상당한 수의 내담자들을 만나고, 많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면교사를 삼고자 했어도 부모로서의 나는 ‘매일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부러 아름답게 포장한 말이다. 그래서 되려 흑역사로 보이는 부끄러운 이야기도 담을 예정이다. 독자들이 나의 불안했던 마음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감사하게도 아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히 좋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학업도 품행도 꽤 방정한 학생이었으며, 인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불호’가 없는 선량한 친구로 지내왔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가 그간 해온 일, 그럭저럭 잘 자라준 아들, 그게 가능하도록 진심으로 나를 도와준 가족들, 가족못지않은 따순 맘으로 나의 희로애락에 함께 해준 이웃들, 동료들에게 내가 얼마나 감사해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용기도 생겼다.  더불어 나처럼 일과 육아로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아이에게 결핍을 경험하게 할 수밖에 없는 모든 가난한 엄마들에게 괜찮다고, 불안할 수 있다고, 매일 흔들릴 수 있다고, 그렇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엄마의 불안과 흔들림 뒤에 있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다고, 그 결핍이 돌파력 있는 아이로 만들어줄 거라고, 혹시 완벽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힘들었다면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또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일하는 많은 엄마들 중 그저 한 사람일 뿐이지만 ‘심리학자’로서의 깊은 고민과 갈등은 나와 아들을 성장시켰다. 아마도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내담자들로부터, 부모님들로부터, 연구결과들로부터 배울 수 있던 중요한 그 모든 것들을 못 만났으리라.  그랬다면 못해준 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고 무리해서라도 해주려다 아이에게 독을 심어주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하게 된다. 하필 했던 일이, 해온 공부가 결국 ‘부모와 자녀’에 관한 것이었기에 참 운이 좋았다. 물론 나의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분명한 소명이나 소명 덕분에 운도 따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간의 경험들 고민과 생각들을 소환해 보았다. 고단했던 과거와 치열한 현재를 담아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결국 ‘관계’들이 남는다.  나와 아들의 관계, 나와 사람들의 관계, 아들과 사람들의 관계... 고마운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들로 인해 풍성해진 내 삶의 이야기가 나에게 다시 묵직하게 다가온다.  소소하나 하찮지 않은 경험들, 완벽하지 않으나 충분했던 관계들로 힘이 되어준 나의 소중한 대상들에게 감사의 마음도 동봉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일하는 엄마의 복잡했던 마음과 그런 엄마의 아들로 살아내느라 수고했을 ++군의 성장이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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