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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콜로지스트 Feb 22. 2024

제 1장 어떤, 일하는 엄마의 아이

1. 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마의 아이

아들은 집에서 거리가 꽤 먼 작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자기가 어떤 큰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 위장전입은 절대 안 된다는 남편 때문에 나는 OO 초등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입학을 문의했었다. 잔뜩 긴장해서 읍소하듯 건넨 긴긴 질문이 허망하게도 교감선생님은 흔쾌히, 매우 간단히 소집일에 입학통지서만 가지고 ‘그냥’ 오라고 하셨다. 몇 가지 간단한 절차를 안내해 주셨는데 어렵지 않게 거주지와 다른 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입학이 가능했다. 워낙 인원이 적은 학교라 그랬던 것 같다. 왜 굳이 그렇게 먼 거리의 학교로 보냈는고 하면.       


남편이 공부하던 학교 근처에 지인들이 아이들을 믿고 맡기는 평판 좋은 유치원이 있었다. 연령 별로 한 학급, 작은 규모였지만 남편 찬스로 원비도 할인받고 무엇보다 남편과 아이가 등하원을 같이할 수 있어 내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은 5-7세, 3년간 왕복 1시간 거리를 마치 엄마 없는 아이의 몰골로 젊은 아빠의 손을 잡고 다녔다.     


내향적이라 조심스러운 성격의 아들은 익숙한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선뜻 먼저 다가가는 일이 없었고, 소위 친사회적 명랑 쾌활한 태도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인사도 쭈뼛쭈뼛 외향성의 엄마 보기에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러다 아는 친구가 없는 학교에 가면 따돌림이라도 당할까 싶어 1학년 3개 반 60명 중, 이 유치원 졸업생 2-30명이 입학한다는 OO 초등학교에 그냥 묻어 보내고 싶었다. 결과는 합법적으로 상당히 성공적.  그렇게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들은 유치원 3년 다니는 동안 다툼 한 번이 없었다. 개중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들은 아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고, 여자아이들은 예민 보스 한 명 없이 수더분했으며 역할놀이도 같이 하면서 편안하게 잘 지냈다. 그런 순둥 한 아이들이 좋았고 일하느라 바빠서 따로 차 한잔 마셔본 적 없는 엄마들이었지만 그 순둥 한 아이들의 엄마라 내심 의지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그때 까지도 학교를 다니던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컸다. 초등학교는 유치원보다 일찍 끝나니까. 일하는 엄마는 더더더 걱정이 많았으니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았고, 생계의 유지뿐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자아실현, 사회적 기여까지 충분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다 듣고야 말았다. 어떤 동네에서는 일하는 엄마가 전문가로, 능력자로 여겨지지만 소위 잘 나간다는 동네에서는 일하는 엄마는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마로 통한다는 것을. 얼마나 사는 게 안 쉬우면 일을 해야 하느냔 생각이 깔린 평가의 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런 평가에 자유롭기 어려운 나의 ‘상황’이라는 것이 서글프고 불안했던 시절이 바로, 그때, 아이의 초등학교시절이었다. 


이후로, 육아휴직을 아이 초1 때 받겠다는 계획을 가진 일하는 엄마들을 만나면 주저 없이 응원했던 이유도 나의 불안과 이어지는 경험들에 있었다. 사실 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딱 그때,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일하는 엄마의 현실은 참 아무 일이 아닌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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