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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콜로지스트 Feb 22. 2024

제1장 어떤, 일하는 엄마의 아이

2. 서울시 세계를 향한 약속상

2012년 당시, “저는 오늘 아이와 이러이러한 곳에 다녀왔어요.”, “저는 오늘 아이에게 이런 음식을 먹였어요”, “오늘 우리 아이가 이런 상을 받아왔네요.”라고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듯한 네트워크가 한창 유행이었다. 카카오스토리에 자랑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는 자랑과 경쟁이나 샘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부러움과 칭찬의 댓글들, 댓글에 달린 겸손해 보이려는 감사의 인사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는 확실히 유치원보다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엄마가 정신을 단디 차려야 하기도 하고, 아이가 똘똘하게 전달을 해야 엄마가 세심하게 챙겨주기가 쉽다. 당연히 아이만 똘똘하면 좋은데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그래봤자 만 7세니까. 그래서 엄마들끼리의 소통이 참 중요해졌는데 평일에 학교 근처에도 가기 어려운 일하는 엄마입장에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마침 카카오 스토리를 통해 다른 아이들의 생활, 경험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자극과 교류를 시작하기도 했던 때가 바로 그때다.     

 

걱정이 많았지만 이미 5세 8개월에 웩슬러 지능검사를 통해 학업역량이 우수할 것으로 예견했고, 유치원 3년간 바르고, 똘똘하단 교사평가를 받았으며, 평소 독서량이 많고, 수에 관심이 많은, 규칙을 잘 지키고 조심스러운 아이라 초등학교생활에 최적화된 학생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실 너무 잘 해내서 학교에서 엄마를 오라 가라 할까 봐 걱정하며 혼자 배시시 웃기도 했었다.      


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아이는 실내화를 두고 오고, 두고 가고, 잠간 모래만지며 놀다 운동장 철봉에 겉옷을 널어두고 집에 와 밤새 비를 맞히기도 했다. 또 어떤날은 알림장에 담임 선생님의 빨간 글씨로 “00 이를 놀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있어 놀란나머지 앞뒤 없이 아이를 혼내기도 했다.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의 설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른 아이가 하임이란 이름의 아이를 ‘초코하임’이라고 놀리는데 그 옆에서 그 아이 귀에 대고 “화이트 하임도 있어”라고 소곤거렸다는 것이 그 빨간 글씨 사건의 전말. 


하임이의 아빠가 학교 운영위원장이어서였는지, 학기 초라 서로 놀리는 일을 금하려는 조치였는지 상관없이  그 정도의 일로 알림장에 뻘건 글씨를 그려놓은 담임선생님의 태도가 섭섭했던 차였다. 드디어 참관 수업.     


연차를 내고 집을 나섰지만 변변한 가방하나 들게 없단 생각에 살짝 위축되기도 했다. 뭐 지인에게 빌린 가방들고 기타 변변한 것으로 휘감는다고해서 내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능력이 넘쳐서 일하는 엄마’로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이제 와서 어쩌랴. 그저  내 아이만 잘 해내면 아무것도 신경 쓸게 없단 정신승리로 무장하며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가니 나만 낯설지 다른 엄마들끼리는 친숙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있었지만 어디도 내가 선뜻 들어가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다행히 안면이 있던 유치원 친구 엄마가 반대표여서 엄청난 안전감을 느끼며 아이의 초등학교 첫 담임의 얼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을 관찰했다.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와 꿈에 대한 간단한 발표를 한다 해서 내심 기대하며 기다렸다. 거의 마지막에 발표하게 된 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내 얼굴과 아이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담임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 큰소리로 아이에게 “더 크게”를 연발했다. 발표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쥐고 있던 종이가 너덜 해질 정도로 긴장했던 아이는 거의 울듯 발표를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정신승리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간단한 발표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의 모습에 슬픔 비스무리한 감정도 느껴졌었다.      


만 7세의 아들이 무조건 귀여웠어야 했는데, 엄마들까지 와있으니 발표가 긴장되었겠거니 안쓰러웠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스피치 학원에 보내야 하나, 발표불안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나... 내향적인 남편의 유전자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희한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었다. 흔하다는 반모임, 커피타임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씁쓸하게 귀가했던 기억이 난다. 


한달 정도 지났을까.  유치원 친구들 통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된 학교 엄마들의 카카오스토리에 아이들이 받아온 상장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첫 상장은 백일장도, 그리기도 아닌 이름도 이상한 ‘서울시 세계를 향한 약속상’이었다. 내 아들만 빼고 다 받은 것 같았다. 아이의 가방을 탈탈 털고 교과서와 공책을 꼼꼼하게 넘겨보아도 발견할 수 없었던 그 얄궂은 종이 한 장 때문에 속이 쓰려서 입맛도 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도 글씨도 어디서 돈 들여 가르친 적 없으니 무슨 대회의 결과로 입상이 안 된 거라면 상관없었다. 그러나 모범상이나 선행상 계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아이가 받지 않은 게 나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한 반 20명 중 5명이 받았다는 이 상은 내 아이가 4분의 1 축에도 못 든다는 이상한 열패감을 갖게 했고 아는 엄마들의 카카오스토리를 찾아다니며 이 상장의 존재이유와 수상자 선정기준에 대해 탐구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다만 교실 청소며, 학교의 대소사에 열심 내어 참여하는, 담임선생님의 김치며 반찬까지 만들어 가져다 드린다는 엄마들(그땐 흔한 일이었다)의 아이들이 주로 받았다는 분석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경험을 했었다. 확실히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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