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싸이콜로지스트 Feb 27. 2024

제1장 어떤, 일하는 엄마의 아이

3. 샤넬의 추억

    

그 요상한 상장 이후로, 경필대회, 글짓기대회, 무슨무슨 그리기 대회, 심지어 학기말 모범어린이 상까지 단한 장, 그러니까 참가상에 가까운 장려상 종이 한 장도 딸려온 적이 없었다. 글씨는 못쓰니까, 글쓰기나 그리기는 학원도 다녀본 적이 없으니까 괜찮았는데,  모범적인 어린이도 아니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속이 쓰려왔다. 헛헛한 마음은 도무지 달래지지가 않았다.  ‘뭣이 중헌디’ 했다가도 카카오 스토리만 다녀오면 온갖 상장들의 향연에 중심을 잃었다. 고민했던 스피치 학원은 데리고 다닐 여력도 없어 포기하고 직장인 상담센터의 사회기술훈련과정에 아이를 던져 놓고 ‘부디 친구나 잘 사귀거라’ 하는 마음만 보탰었다.    

  

그래도 그렇지 한 학기 동안 K초등학생이라면 죄다 쓸어 담는다는 상장을 단 한 장도 안 가져오다니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지 걱정이었다. 게다가 반대표가 된 유치원친구 엄마를 통해 들은 담임선생님의 특이한 워딩들을 고려하다 보니 내 아이가 차별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내 아이의 첫 담임은 꽤 기이했다. 물론 뒷반 선생님은 더더욱 기이했지만. 그렇게 존경할만한 분은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동등했다. 애써 찾아낸 것이 ‘그래도 뒷반 선생님보다는 낫다’라는 평가였다.  

    

전해 들은 얘기라 선생님께서 아니라 하시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어쨌든 모든 것이 불안한, 일하는 엄마는 들은 얘기에 귀가 팔랑거릴 수밖에. 일단 이 선생님은 아이들이 입은 옷의 상표를 확인하신다는 것. 청소하러 간 반대표 엄마에게 웃으며 “그래도 우리 반 애들 생각보다 좋은 옷 입어요. 보기랑은  달리”라고 말하셨다는 것. 매주 청소를 도와주면 좋겠다는 주문과 함께 다양한 선물을 절대 마다하지 않으신다는 것. 본인 입으로 ‘샤넬’을 좋아하신다고도 했다는 것. 스승의 날 선물 안 보낸 엄마는 나 한 명 일 거라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던 기억을 소환하니 헛웃음이 난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땐 그랬다.      

사실 샤넬 브랜드는 친정어머니 입술에서 빛나던 붉은, 말 그대로의 루주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립스틱은 너무 많이 받으셨을 거란 덧말에 송파구 학교의 교사였던 친구(강남구 거주)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물을 안 해도 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선물은 더 도드라진다는 것. 오스트리아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의 브로치(당시 20만 원 상당)나 스카프, 혹은 명품 키홀더 정도가 아니면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대던 심장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그래! 결심했어, 샤넬 파운데이션을 준비해서 찾아가는 거야. 딱 봐도 립스틱보다는 비싸 보이고 브로치보다는 싼데, 샤넬이잖아. 딱 좋아!!  

    

나의 고민과 결단을 듣던 남편은 정말 분기탱천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사람이 무슨 선생이냐며, 그건 뇌물이고, 그런 교사에게 뇌물을 주고 상장을 받게 한다면 그건 아이를 망치는 것이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담임도 너도 실망이란 말을 열 번은 한 것 같다. 바름, 성실함, 올곧음이 좋아 결혼한 남편이지만 이 남자의 세상물정 모르는 답답함은 중요한 순간마다 ‘순수함’으로 포장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일 만큼은 내 말이 맞다 싶었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 그대로 존경스럽긴 하지만 문제해결에 있어 너무 원칙적이랄까. 하여간 괜한 말을 했다 싶게 난리부르스였다. 내가 샤넬 선물을 들고 담임을 찾아가면 이혼을 하겠다고까지 했다. 나는 내 아이가 받고 있을지도 모를 차별이 절차 까다로울 이혼보다 더 무서웠다. 난 엄마니까.  

    

백화점에서 적지 않은 돈(당시 남편 월급이 70만 원)을 내고 선물 포장 그럴싸하게 하고, 교환권까지 넣어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마주 앉아 인사를 드리자마자 “지난번 스승의 날도 그냥 지나가고 마음이 급했어요. 너무 약소하네요.”라고 말하며 선물을 드렸는데, 세상천지 그렇게 밝은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너무도 재빠르게 “어머나 뭐 이런 거를 다... 아이고 감사합니다”라며 받아 넣으셨다. 아마도 쇼핑백만 봐도 알 수 있는 상표에 그만 감동하신 게 아닐까 싶었다. 

     

나: ++이는 어떤가요?

담임: 아이고, 너무 잘하죠. ++이는 얼굴도 너무 잘생기고, 반듯하고... 아이고 다 잘해요. 이거 그림도 보세요. 어항그림. 물고기 네 마리가 다 어항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 있고, 아주 그냥 할머니까지 다 화목하네요. 아이가 확실히 안정적이고 편안해요. 모난 데가 없어요. 나무랄 데가 없지. 이런 애들은 지금보다는 고학년에 가면 아주 그냥 날아다녀요. 머리도 좋아 보이던데 걱정 하나도 할 게 없어요.

나: 아... 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일하는 엄마다 보니 걱정이 많아요. 잘하고 있는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지,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는지 늘 걱정이죠. 한 번도 와보지도 못하고 선생님 도와드리지도 못해서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요. 

담임: 이게 무슨 소리예요. 아이고 나도 일하는 엄마인걸. 내가 그런 거 이해 못 할까 봐? 나도 우리 아들들 학교 한 번 제대로 못 갔어요. 왜 엄마가 죄송해. 하하하하하. 말도 안 된다. 하하하하하하. ++이 같은 애들만 있음 1학년 담임 거저예요.      


아, 그렇게 훌륭해요? 아, 그렇게 잘해요? 그런데 ++이한테  '서울시 세계를 향한 약속상'은 왜 안 주신 거죠?라고 물을 뻔. 근본 없는 종이 한 장 때문에 뇌물을 들고 찾아온 엄마나 선물 받아 급하게 서랍에 욱여넣고 하하하하 웃음을 연발하던 담임이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학기는 상장 잔치였다. 모범어린이상은 화룡정점. 산뜻한 마무리가 된 듯했지만 남편은 아이가 상장을 받아올 때마다 나에게 귓속말로 “뇌물의 대가”라며 “이렇게 받으니 좋으냐?”라는 질문만 되풀이했었다. 성실한 인간은 뒤끝도 끈기 있다.   


작가의 이전글 제1장 어떤, 일하는 엄마의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