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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ewis

by 싸이콜로지스트 Apr 03. 2024

제2장 어떤, 아픈 엄마의 아이

1. 헤어짐은 곧 두려움

1) 헤아려본 슬픔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이렇게 시작하는 C.S. Lewis의 저서 『헤아려본 슬픔』은 '읽어내야 할 것 같은’ 운명적인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다. 호감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강렬한 이끌림이었다.


 ‘반지의 제왕’으로 익숙한 톨킨의 친구이자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인 루이스는 기독교 변증가로도 유명한 석학이다. 골수암으로 아내를 잃은 시대의 사상가와 함께 ‘슬픔’이라는 감정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던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슬픔과 사랑을 이해하는 그의 방식을 의지해서 나의 밀어 넣어둔 슬픔과 사랑에 깊이 머물고 싶기도 했다.  


그의 슬픔은 줄곧 내 심장의 어딘가를 움켜쥐었고, 자주 시야가 흐려지고 눌러두었던 감정의 커다란 뭉치가 목구멍 언저리에서 오르락내리락했었다. 어떤 순간에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고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었다. ‘나는 나의 불행을 겪고 있었지 그녀의 불행을 겪고 있지 않았다’라는 그의 표현처럼 나도 이 책을 통해 나의 슬픔을 경험했지 그의 슬픔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거인의 상실과 슬픔을 기록한 글이 왜 나에게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는고 하면. 2016년 가을,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만 11세 때. 엄마인 내가 골수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의 슬픔도 그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같은 느낌이었다. 우울과 같은, 무기력과 같은 그런 침잠하는 슬픔은 아니었다. 두려움과 흡사했다. 살아오면서 다양한 슬픔과 절망을 느껴보았고, 그 빈도나 밀도를 고려해 보건대 이렇게까지 낯설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골수암 진단을 받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않으면 2년 내 사망할 것’이라는 주치의의 설명은 나의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다만 지난날의 노력과 수고, 애써 버텼던 고단한 시간의 끝이 여기까지라 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억울함도 잠시였다. 더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안해지기도 했으니.      


60%의 생존 가능성은 40%의 사망 가능성이었을 뿐이었다. 타인의 경우였다면 1%의 희망이라도 붙들고 끝까지 싸우라고 했을 나였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냥 잘 정리하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냥 인생은 뭐 그런 것 아닌가. 언제 내편이었다고. 

           

대부분의 정리는 가벼웠다. 많은 책임과 의무들로부터의 자유가 되려 해방감을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린 자녀와의 이별을 헤아려보는 것은 너무나 낯선 슬픔이어서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웠었다. 말 그대로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치료과정에서 경험하게 될 육체적 고통보다는 죽음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졌었다. 


모든 두려움은 ‘헤어짐’에 관한 것이었다. 보드랍고 작은 내 아이의 손을, 그 귀엽고 통통한 볼을 더 이상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은 절박함 그 이상이었다. 아이의 성장에 함께 하지 못하는 분리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천국인들 위로가 될까 싶었다. ‘어색한 변성기 목소리, 콧수염 난 사춘기 소년의 얼굴도 기억에 담아 가지 못하면 천국 그 어디에서 내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머무르면 미칠듯한 두려움이 고통으로 다가왔었다. 아들의 군대 첫 휴가에 따순 밥 한 끼 지어줄 엄마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면 그 무너지는 심경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 주었고 찾아왔고 위로하기 원했다. 아산병원 동관 7층 1인실 앞에는 매일 수 십 명의 면회자들이 대기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진단 즉시 바로 항암을 시행해야 하는 백혈병의 가능성으로 묶여있던 10여 일간 하루도 혼자 보낸 적은 없었다. 고마웠지만 나의 두려움에 맞설 만큼 크게 힘이 되지는 못했다. 그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는 다양한 언어들로 나에게 보내져 왔지만 어떤 말들은 곱씹을수록 잔인하거나 무심했고, 어떤 말들은 진심이 느껴졌었지만 불충분했다. 루이스의 표현대로...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 다음번 고문을 준비하는 잔인한 신

   

고통 속에서 도움을 청하는 절박한 순간에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면전에서 꽝하고 문을 닫으며, 겹겹이 빗장을 지르고 결국은 침묵하시는 냉담자 이거나, 가장 자비로운 듯 보일 때마다 실은 다음번 고문을 준비하고 계셨던 잔인한 존재”였다. 그에게도  예수가 당한 고난을 들먹이며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 블랙코미디처럼 이상한 코드에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는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주면 순종하여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   

   

고통과 상실을 다루는 여느 종교인들이나 쉽게 쓰인 책들에서처럼 루이스는 신의 섭리를 운운하며 맹목적으로 합리화하지 않았다. 루이스 자신이 ‘질린다’고 표현했듯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질문들이 오히려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진단 이후, 이식을 기다리던 두 달여 동안 질리도록 질문하고 화내고 절망했었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신은 “도움을 요청하는 나의 면전에서 꽝하고 문을 닫으며, 겹겹이 빗장을 지르고 결국은 침묵하시는 냉담자 이거나, 가장 자비로운 듯 보일 때마다 실은 다음번 고문을 준비하고 계셨던 잔인한 존재”였다. 이럴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     


나도 그랬다. 출근해서 병원 외래를 오가며 진행했던 항암은 되려 모든 혈액 수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결국 서둘러 이식을 결정했다. 이식 절차에 대한 동의를 따로 준비된 녹음실에서 진행했다. 엄숙해서 더 무섭기도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라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 강조해서 설명해 주는 주치의에게 “선생님의 형제라면 이 과정을 추천하겠느냐, 그것 먼저 말해달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후 과정을 받아들일 정도로 화나고 취약한 상태였다. 


1순위인 동생의 유전자검사를 기다려 완전일치라는 결과를 기뻐하며 전달해 주던 임상간호사는 나에게 “생각보다 흔한 일이 아닌데... 기쁘지 않아 보이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뭐가 기쁘지? 왜 기뻐야 하지? 이런 종류의 기쁨만 내 것일 수 있나 보다 헛헛했다. 가족 중 유일한 비 기독교인 외삼촌의 “아이고... 이 박복한 것아”라는 탄식이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되었다면 이해될지. 나는 제대로 비뚤어질 작정이었다.       


3) 떠나는 자의 애도 


나의 치료와 회복을 기대하고 기도하던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그들과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애도의 과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이전의 하나님이 아니었고 내 인생의 곳곳에 ‘다음번 고문’을 준비하고 계셨던 잔인한 존재였다. 모두와의 이별은 내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한 경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사랑했던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다정한 분이셔서 더 많이 미안했던 아버지를 보낼 때, 그래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 혼자 떠나야 했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두고서.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루이스의 두려움, 아픔 못지않게 떠나야 하는 그녀의 두려움과 슬픔도 지독했고 크고 깊었을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준다면 조금이나마 위로되었을까.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었으니 그 상실의 크기를 가늠해 보긴 어려울 수 있겠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지만 산술적인 계산 앞에서만 보아도 자명하다. 남은 자들은 그래도 혼자는 아니다. 떠나는 사람은 누구든 혼자 떠난다. 떠나는 자가 경험하는 이별의 경우의 수가 단연 더 많지 않은가 말이다. 루이스는 자신의 이별, 슬픔과 상실의 경험을 통해 믿음을 의심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C.S. Lewis 아닌가. 덕분에 내가 경험한 하나님에의 회의, 분노, 고뇌가 한 차원 더 깊은 영적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믿게 된다.       


4) 단절이라는 숙명


“우리 둘이 한날한시에 죽어 여기 나란히 누워있는 것처럼 간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이별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요.” 아내인 H가 루이스에게 한 말이다. 시간과 공간과 육신이 우리를 묶어 주는 조건일 뿐. 죽음, 단절은 우리 인생의 숙명이다.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감정에는 체념적이고 자위적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관조의 우아함이 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소위 믿음 없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의 ‘떠나는’ 감정은 루이스의 ‘남겨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 두려움과 같은 슬픔이었다. 그의 아내 H의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루이스의 마음이 덜 섭섭했을까. 루이스 역시 나는 나의 불행을 겪고 있었지 그녀의 불행을 겪고 있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자기감정에 충실했고 상실의 슬픔을 두려워했던 듯하다.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상실의 고통을 관찰한 루이스처럼 나는  ‘떠나는’ 사람이 경험하는 상실의 고통에 대해서도 들

여다보았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희미하나 그 기억을 더듬어 충분히 머무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나는 루이스로부터 ‘믿음을 의심할 수 있는 용기’를 권고받았다. 내가 나의 죽음과 이별을 나답게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의 솔직함과 진실함이 전한 깊은 위로를 통해 자유를 경험했다. 언제고 다가올 죽음과 이별에 대해 예방주사를 맞은 듯, 모든 순간들, 모든 과정들을 단계로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이미 내 것이라 생각해도 될까 자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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