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한국은 왜 막장 가족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가족이 뭐 대수냐...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이 살고 같이 밥 먹고 또 슬플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같이 웃는 게 그게 가족인 거지.
송해성 감독(49)의 인터뷰 기사에서 감독은 1남 7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많게는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누나들과 같이 자랐고 지금은 결혼해 다들 따로 살고 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밥 먹던 기억이 가장 먼저 난다고 한다. 그는 “교복을 입었든 아니면 잠옷 바람이든 함께 앉아서 정겹게 수저를 들었다. 엄마가 용돈을 꺼내 주는 것도 밥상에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영화에서는 함께 밥 먹는 장면이 많다. 그것도 삼겹살. 그래서 삼겹살이 먹고 싶어지는 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싸우지만 같이 밥을 먹고, 다른 사람이 가족을 건드리면 못 참는, 참 알 수 없는 가족이다. 막장 드라마에선 항상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막장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불륜, 재벌, 복수, 악녀 마지막으로 출생의 비밀이다. <고령화 가족>은 마지막 출생의 비밀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자녀 3명이 다 다른 출생이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가 지금의 엄마와 결혼하기 전 아버지와 같이 살던 여자가 데리고 온,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다. 셋째인 딸은 엄마의 현재 진행형인 외도로 낳았고, 유일하게 둘째 아들만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의 범주로 보면 온전한 가족은 둘째와 엄마밖에는 없다.
이렇게 출생의 비밀은 막장에서 반전 효과를 위해 필요한 장치가 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전개가 필요하니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죽고, 다시 나타날 땐 성형을 하고 나타난다. 심지어 점 하나를 찍고 나타나는데 못 알아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만들어진다.
그럼 왜 한국은 막장 가족에 열광할까? 신기하게도 욕하면서 보는 현상이 나타난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선 없을 거라는 전제를 두고 (물론 현실이 더 막장인 경우도 많지만) 맘껏 욕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출생의 비밀이 있으려면 불륜은 당연하고 중산층보단 재벌가를 다루는 것이 더욱 비현실적이면서도 신데렐라를 꿈꾸는 판타지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수라는 자극적 소재는 악녀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고령화 가족> 영화에선 언어폭력인 욕이나 물리적 폭력까지 더해져서 공중파 방송에선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한국 영화의 욕과 잔혹성 때문에 안 본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한국에선 선과 악이 분명해야 한다. 악하면서 선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악한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시종일관 악하거나 선한 사람보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악한 사람, 선한 사람도 될 수 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권선징악’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중간에 어떻게 되든 결국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해피엔딩이다. 연령대에 따라 막장을 소비하는 이유나 모습이 다르기도 한데, 젊은 층은 어의가 없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며 웃으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한다. 심각하게 고민하며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나 권력을 가진 악인들에게 막말을 하고 싶지만 현실에선 못하는데 빌런들에게 주인공들이 복수를 하고 맞서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심지어 막장에서 나온 장면들 김치 싸대기, 음료수 마시다 흘리는 모습, 어이없는 죽음들이 패러디되어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 물잔을 얼굴에 붓고 돈 봉투 내미는 장면은 이제 너무 식상한 장면이 되었다.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보수주의적, 유교주의적 담론은 ‘함께 돕고 사는 사회’를 그리는 듯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막장드라마’의 세계처럼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무한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는 연구에서 보듯이 한국의 독특성이 막장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막장을 생산하는 작가, 제작자들에겐 막장이 먹히니 계속 만들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가족이 하루 한 끼 한자리에 앉아 밥 먹기도 힘든데 영화에선 막장 가족조차 한 상에서 밥을 먹는다.
가족 소풍 가서 술 먹다 오빠와 여동생은 ’00년’, ‘새끼’라며 서로 욕을 하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여동생에게 아줌마라 부르며 조용히 하라고 하는 옆좌석의 사람들에게 조금 전까지 00년이라고 하던 오빠는 “귀한 내 동생에게 뭐라는 거야.”라고 하면서 싸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렇게 형제끼리 팔 걷어붙이고 서로 돕는 거야.”라는 웃으며 말하는 엄마를 보며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다. 과연 그 상황이 서로 돕는 게 맞나?
‘화목한 가족‘의 이름 아래에 가족은 꼭 화목해야 할 것 같은, 화목하지 못한 가족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가족이야말로 가깝고도 먼 관계, 어찌할 수 없어 더 어려운 관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