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로고 디자인은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입니다. 비전문가가 보아도 무엇을 말하는지 시각적 요소 하나로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로고 디자인을 보더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관점 차이는 반드시 생깁니다. 모두가 좋은 로고 디자인이라 생각해도 어느 한 명은 반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세상에 나쁜 디자인은 없습니다. 퀄리티를 떠나서 내가 보는 로고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좋은 로고 디자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정말 위험한 생각입니다. 내가 보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로고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매운 짬뽕 가게를 오픈하는 예비 사장님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비 사장님은 다른 매장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초록색으로 로고를 만들어달라고 디자이너에게 요청을 했습니다.(없을 것 같죠..?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는 메뉴가 빨갛고 매우니 강렬한 컬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예비 사장님의 눈에는 초록색이 마음에 들기에 고집을 피웁니다. 몇 번의 조율 끝에 예비 사장님의 의견을 수렴하여 초록색이 섞인 빨갛고 불에 타는 로고를 완성했습니다. 예비 사장님 눈에는 마음에 안 들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어느 정도 따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겠죠. '이 로고가 50만 원이나 한다고?' 이때 매운 짬뽕 가게를 이용하는 고객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누가 보느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고객은 메뉴를 고를 때 로고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특히 외식업은 더욱 그렇습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브랜드화에 성공하여 굿즈 판매까지 이루어진다면 그곳은 예외입니다.(프랜차이즈를 준비하신다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이 글을 읽는 예비 사장님은 개인 업장을 준비하기 위해 읽고 있을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 양과 질이 좋은 음식, 합리적인 가격에 서비스가 좋은 가게. 고객이 가게를 선택하는 우선순위는 이러한 것들에 있지 로고, 즉 간판 디자인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도 가게의 얼굴인데..
맞습니다. 간판은 가게의 얼굴입니다. 반드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글은 그동안 만났던 사장님들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예비 사장님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아래의 사례를 통해 합리적인 간판 제작하는 방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A. 동봉관 사장님의 고민
"머릿속엔 분명히 원하는 간판 디자인이 있거든요? 그런데 조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턴키 같은 사람이 없는 거지. 동봉관은 맑은 돼지곰탕을 파는 거잖아요. 한식이거든요. 그릇도 그렇고 매장 분위기도 그렇고 약간 금속 느낌에 캘리그래피로 가게 이름을 쓰면 콘셉트에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음각에 페인트칠하고 부식 처리 해서 기둥에 부착을 하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더라고. 충분한 교류의 시간이 있으면 소통하면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 텐데, 로고든 간판이든 빨리 만들고 설치하면 끝이니까."
B. FROG 사장님의 고민
"기존에 있던 플렉스 간판에 천갈이만 했어요. 새것으로 교체하면 크기가 크니까 200만 원은 줘야 되더라고. 간판 업체에서 알아서 해주니까 솔직히 어려운 건 없었어요. 간판이 비싸서 고민이 됐지. 개구리는 누나가 찾아줬고 간판은 아는 사람 소개로 맡겼어요. 제일 싸게 하고 싶으면 버려진 간판 주워다가 바꾸면 돼. 어.. 이거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아무튼 나야 뭐 술집이니까 저녁에 잘 보이기만 하면 됐거든. 가게 위치도 별로 안 좋으니까 무조건 크게 만들었어."
가장 경계가 없고 자유분방하게 디자인이 사용되는 것은 외식업입니다. 보통 사장님들은 '요식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할 것입니다. 외식과 요식의 차이는 크게 없지만 단순하게 정의를 내리자면 음식 외 숙박, 오락 서비스를 포함하면 요식, 이를 포함하지 않고 어느 장소에서나(배달포함)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외식입니다. 이 글은 외식업을 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게를 오픈하기 이전에 사장님은 어떤 메뉴를 팔 것인가 고민을 먼저 할 것입니다. 배달의 민족의 카테고리만 보아도 음식 종류는 참 많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식문화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는 증거가 되겠죠. 탕, 찜, 치킨, 버거, 초밥, 음료 등 아이템을 선정했다면 그다음은 상권이겠네요.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게를 오픈하는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 중에 '간판' 제작은 중요도로 본다면 메뉴개발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고객은 간판을 보는 것이라 아니라 메뉴를 보고 가게를 선택합니다. 간판에는 가게명, 가게가 판매하는 메뉴, 가게의 이미지 전부가 담겨있어야 합니다. 고객은 간판을 보고 어떤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인지를 유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비 사장님은 고객에게 러브콜을 보내듯 간판(sign)에 메시지를 담아야 합니다. 여기서 인테리어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죠. 인테리어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간략하게 한 줄로 설명하자면, 간판으로 먼저 고객을 당겨야 비로소 가게의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로, 시그널(signal)입니다.
로고와 간판은 한 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가게 로고를 위해 키워드 '로고'만 검색하지 마세요. 간판을 검색해서 로고와 간판을 함께 제작해 주는 업체를 찾아야 합니다. 로고는 어도비 프로그램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프로그램으로, 확장자 ai파일로 만들어지는 평면 그림입니다. 백터화가 된 ai파일이 있어야 간판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포토샵 psd 파일도 안됩니다. 무조건 ai파일입니다. 이 파일은 디자이너가 만들어줍니다. 디자인을 따로 의뢰했다면 디자이너에게 파일을 받아서 간판 업체에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재질을 사용하여 간판을 제작할 것인지 논의가 시작되겠죠. 디자인 조율에 이어 간판 조율까지, 여기서 피로도가 누적될 것입니다.
로고와 간판이 함께 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로고는 그림이고 간판은 실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로고가 예쁘고 잘 나왔더라도 현실적으로 간판 제작이 불가능하다면 로고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버리게 되는 것이죠. 가게명, 가게 콘셉트, 메뉴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로고를 제작하고자 한다면 상상하고 있는 그 디자인이 구현 가능한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로고 디자인까지 가능한 간판 업체를 선별하여 미리 조율을 해야 하는 것이죠.
동봉관 사장님은 캘리그래피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음각을 이용했습니다. 동봉관 사장님께서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이유는 그림과 실물의 차이를 간판을 만들고 나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용한 재질의 차이도 있겠죠. 캘리그래피는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드는 작업입니다. 붓으로 쓴 그림을 스캔을 떠서 백터화 시키는 과정에 붓이 주는 터치감이 많이 날아갔을 것입니다. 간판은 ai파일로 만듭니다. 연필, 붓, 펜 등 디테일한 질감을 간판에 살리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캘리그래피를 사용한다면, 최대한 글씨의 라인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간판 업체와 함께 조율되어야 원하는 느낌으로 뽑아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로고 디자이너와만 작업을 했다면 이 과정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왼쪽 캘리그래피는 음각을 주는 간판 제작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거칠게 표현된 붓 터치감이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디테일은 간판에서 살리기 어렵습니다. 오른쪽 캘리그래피는 음각을 주거나 글자 그대로 커팅을 하여 제작하기에 적합합니다. 아웃라인이 둥글고 거친 붓터치감도 없고 두께도 적당하기 때문에 간판으로 제작한다면 시인성에도 문제없을 것입니다. 거친 터치감 그대로 살리는 간판을 만드는 방법, 없지는 않습니다. 플렉스 간판을 사용하면 됩니다. 거친 캘리그래피와 음각이 만났기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진 것이지, 로고의 문제도 간판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러한 작은 디테일을 잡아내는 것, 로고와 간판 제작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게를 오픈하는데 참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생각한다면 예비 사장님들의 부담은 매우 클 것입니다.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500만 원 그 이상도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 간판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비쌉니다. 들어가는 재료, 크기, 시공 방식, 인건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면 예산은 그 이상으로 넘어설 수 있습니다. 원하는 디자인도 나왔고 원하는 간판도 있지만 예산이 맞지 않다면 이 또한 제작할 수 없겠죠.
로고는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 글의 첫 시작을 이렇게 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산이 맞지 않다면 제작할 수 없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여기서 예비 사장님들은 타협을 하게 됩니다. 원하는 간판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저렴한 재질을 고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간판을 선택하는 것이죠. 다시 돌아가 고민을 해봅니다. '누가' 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연 간판에 큰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맞는 것일까?
FROG 사장님은 술집이기 때문에 저녁에 잘 보이면 된다는 조건 하나만 들고 있었습니다. 대신 가게 위치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의 눈에 띄기 위하여 간판을 크게 설치를 했어야 했죠. 마냥 크기만 한 간판이 좋은 간판은 아니지만, 크면 잘 보인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이 사장님이 선택했던 방법은 기존 원형 간판에 천갈이만 하여 개구리 그림을 넣고, FROG라는 글자를 LED채널간판 중 바 채널로 제작했습니다. 입체감이 있게 글자를 하나씩 따고 채널 안에 LED모듈을 넣어 빛이 나오게끔 만들었죠. 대신 견적이 200만 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FROG 글자는 겨우 4개, 기존 원형 간판에 천갈이, 단순하게 제작을 했음에도 견적이 200만 원이 나왔습니다. 바가지를 씌운 것 같다는 농담도 하셨지만, 여러 가지 요소를 생각한다면 의심스러운 견적은 아닙니다. 간판 업체마다 인건비부터 상이하니까요. 때문에 크몽에서 검색을 하시더라도 위에 나온 견적을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곳이나 그러하듯 가장 저렴한 가격을 먼저 보여주어야 소비자는 미끼를 물 테니까요.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습니다. 간판 설치 가능 여부. 각 지자체마다 간판정비사업을 실시하며 원칙과 기준이 생겼습니다. 건물마다 설치해야 하는 간판 양식이 있다면 그 양식 그대로 제작을 해야 합니다. 또는 건물 주인이 건물에 구멍을 뚫거나 시공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본드를 부착하거나 다른 시공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부분도 함께 고려하여 예산을 정해야 합니다.
로고 제작은 무조건 이렇게 하세요(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