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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Jun 15. 2021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은데?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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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고 싶은데’의 두 얼굴


어떻게 생활을 하며 살고 싶은 가

어떻게 공간을 만들고 싶은 가



두 얼굴의 모습을 동전 뒤집듯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풀이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일’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의 얼굴을 알아야 이상과 현실을 좁혀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시골에 가서 잠시라도 살아보려 한다.


어떻게 생활을 하며 살고 싶은 가, 백문불여일견이라 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혜원이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이 서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참으로 운 좋게도 엄마가 보성에서 살고 계셨기 때문인데, 당장 시골집을 구할 수 없는 나로서는 최적의 솔루션이었다. 나는 며칠만 엄마 치마폭을 빌리기로 했다. 엄마께 전화를 걸어 “놀러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짐을 쌌다. 엄마 또한 시골에 놀러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 어디선가 자기 밥그릇 잘 챙기며 잘 살 거라는 암묵적인 믿음을 가지고 계셨던 터라 나의 방문 의사에 다른 물음 없이 아주 쿨한 대답을 내놓으셨다. “그래, 와라?” 올 테면 와봐라, 이런 느낌처럼.


몸빼바지가 없어서 아쉬운 새우잡이 복장


어떻게 생활을 하며 살고 싶은 가


시골에 내려가서 살게 된다면 가장 맞닿고 싶었던 것을 찾으려 했다. 그것은 바로 자연. 너무 시시할까? 서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인데? 음, 나는 아니었다. 북적북적한 도심 속에서 서울숲 같은 자연을 찾는 힐링도 물론 좋지만, 애초에 눈을 뜨면 보이는 산과 들이 더 좋았기에 시골에 가면 제일 먼저 자연과 맞닿기로 했다. 잠시 간헐적으로 살아보는 시골살이지만, 이 값진 시간이 ‘어떻게 살고 싶은 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를 해보려 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전남 강진과 전남 보성은 차로 약 30분 거리이다. 여전히 고향에 남아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불렀다. “나 보성에 왔어. 놀자.” 할 것 없는 한량이 던진 신호탄에 고향 친구 아름이는 “저수지에서 새우나 잡을래?”라는 답변을 했다. 와우, 새우잡이라니. 기껏 해봐야 보성에 가서 녹차를 마시며 신선놀음을 할 줄 알았건만. 나는 엄마처럼 심플하게 콜을 외쳤다. 친구 아름이는 읍내 어딘가 주민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은숙이가 농협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했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의도가 있지만, 지금은 혜원이가 되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하자)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갓 1년이 지난 초보 운전자였다. ‘조금 더 어릴 때 취득했으면 좋았을 걸.’하는 후회를 뒤로 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GOOD모닝 붕붕이 한 대를 야심 차게 끌고 강진에 있는 월남 저수지로 향했다. 감히 서울이었다면 엄두조차 못 냈을 50km를 경차 타고 겁도 없이 국도를 달렸다. 연식이 꽤 됐던 차여서 블루투스 연결도 하지 못했다. 핸드폰 스피커로 의존하며 요즘 나의 최애, 박군의 ‘한잔해’를 열심히 따라 불렀다.


한참을 달리고 있자 울리는 전화 벨소리, 고향 친구 아름이었다. “어진아, 올 때 다이소 들려서 뜰채 하나 사와.” 이런, 최대의 미션이었다. 초보 운전자가 어딘가를 들려서 무엇을 사 오는 미션! 정말 다행히도 이리저리 헤매지 않고 다이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니까. 하지만 주차만큼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사선으로 밑줄 쳐진 하얀 선을 사이드 미러로 보면서 조심스럽게 주차를 했다. 좌측엔 트럭이 우측엔 SUV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경차가 크면 얼마나 크려고, 하지만 막상 운전을 할 땐 트럭 한 번 긁고 SUV 한 번 긁을 것 같은 느낌이라 노심초사하며 주차선을 지켰다.


뜰채를 사고 부랴부랴 찾아간 월남저수지 근처에는 영업이 중단된 휴게소가 있었다. 우리는 빈 공터에 나란히 주차를 하고 저수지로 갔다. 아름이는 베트남에서 사 온 고깔 모양의 밀짚모자를 쓰고 꽃무늬 장화를 신었다. 나는 분홍색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휘감고 체크무늬 장화를 신었다. 둘의 모습은 영락없는 농촌 일꾼이었다. 서로의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다. 여기에 몸빼바지만 입으면 딱일 텐데 하면서 말이다.


성인용 뜰채가 없어서 대신 사온 유아용 목욕놀이 주황색 뜰채



이날따라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오후였다. 미리 쳐둔 망을 들어 올리자 작고 귀여운 민물 새우와 작은 물고기가 잡혀 올라왔다. 유아용 목욕놀이 주황색 뜰채를 가지고 새우를 잡아보려 했다. 작은 녀석은 덜 자라서 그런지 쉽게 잡혔지만, 조금 큰 녀석은 조금 컸다 이건가 약 올리면서 뒤로 도망쳤다. “뜰채를 새우 뒤로 하고 새우 얼굴 앞에서 손으로 잡는 척해줘야 해. 그래야 뒤로 도망가다가 뜰채에 들어가.” 친구가 알려준 새우잡이 요령이었다. 두어 시간 잡았을까? 양껏 잡아 올린 새우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들을 바닷가에 가서 바삭하게 튀겨먹을 작정이었다. 작고 귀여운 건 빨리 먹어 없애야 하니까.



어쩌면 이 모습은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위의 한 장면처럼 묘사됐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말이다. 뒤로 쭉 이어질 에피소드가 더 나열되어있지만,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어떻게 생활하며 살고 싶은데?”


확실히 영화는 영화였다. 영화가 표현한 이들의 모습은 찰나의 즐거움을 포착한 것이고 그 즐거움을 찾기 위해선 뜰채를 준비하는 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저수지에서 실컷 새우를 잡은 덕에 내 팔을 빨갛게 익었고 시골 도로가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운전대를 다시 잡아야 했다.


‘찰나’만 모아둔 영화를 동경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혹시 고향이 그리워서는 아닐까?

재고 따지는 것 없이 만날 수 있는 고향 친구가 있어서는 아닐까?

내가 무엇을 하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집이 있어서일까?

나는 여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생활하며 살고 싶은데 대한 생각은 자연에 맞닿고 싶었다기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 지에 대한 지향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시금 ‘왜’라는 질문에 회귀하는 것을 보면. 그냥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지 정말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주인공도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닌데도 말이다. 삶의 주체가 나인데도 영화를 보며 스스로 조연을 만들고 있었으니 자꾸 다른 삶에 고개가 돌아간 건 당연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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