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10 - 고양이와 소파
이사를 오며 가장 야심 차게(혹은 가장 비싸게) 마련한 가구는 바로 소파다. 침대는 각자 쓰던 걸 가지고 와 하나는 손님방, 하나는 안방에 두고 새로 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살 게 많아 책상과 시스템장, 식탁 등을 사러 돌아다니다 침대처럼 크고 푹신한 소파에 반한 것이다.
매장 중앙에 놓여 안 볼 수가 없었지만 딱 봐도 고가일 것 같아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사려던 가구들을 대충 둘러본 후 나오려던 길. 사라진 남편이 어느새 예의 그 소파에 앉아 천진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애기야, 이거 진짜 편해. 앉아봐. 과연 앉아보니 편했다.
그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조건 - 패브릭에 방수가 되는 소파 - 에도 딱 들어맞았다. 블랙 앤 화이트로 인테리어 한 집에 어울릴 그레이 색을 원했지만, 아이보리색의 소파는 아래에 매치한 어두운 러그와도 제법 잘 어울렸다. 결국 웬만해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남편의 손을 들어주고, 잠을 자지 않는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곳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
대망의 이삿날. 감회에 젖어 텅 빈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에 다시 앉았다. 역시 잘 샀단 생각이 들었다. 소파는 여전히 아늑하고 푹신했다. 하지만 만족감에 젖었던 우리와 달리 아이들은 집이 낯선 탓인지 며칠 동안 소파에 올라가지 않았다. 다만 수시로 코를 킁킁거리며 낮은 자세로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보통은 아이들이 소파를 스크래쳐로 쓸까 걱정을 하지만(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는 데 그 소파 괜찮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라도 소파에 익숙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와 남편, 아이들까지 우리 네 식구가 다 같이 누워도 넉넉하겠다고 기대했던 게 무산돼 허무했다. 결국 올라오지 않는 아이들에 맞춰 내가 바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소파를 등지고 아이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TV를 봤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와니와 재이가 각각 소파의 양쪽 팔걸이에 앉은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닿는 자리는 너무 물렁해 발이 푹푹 빠지는 게 싫은지, 네모 반듯하고 딱딱한 팔걸이를 먼저 믿어보기로 한 것 같았다.
시간이 더 흐르자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갈 때 소파 한가운데에 누워 이미 자고 있는 와니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독립심이 강한 고양이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잠을 청한다는데, 깜깜한 거실에서 자신만의 공간으로 삼을 정도로 와니가 소파와 친해진 것이다. 그렇게 소파는 아이들의 침대이자 놀이 매트가 됐다. 바닥에서도 좋아하는 낚싯대 장난감을 소파 위에서 휘저으면 더 폭발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지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이 꺼지는데도 열심히 왼쪽 오른쪽으로 뛰어다닌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3개월이란 시간이 그냥 지나간 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일터에 가고 없는 낮에도, 약속이 있어 늦게 들어온 저녁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소파와 함께였을 테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늦은 밤 먹은 군만두 탓인지 속이 더부룩해 잠을 설치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몸을 길게 누인 채 담요를 덮고 핸드폰을 뒤적였다. 침대 옆 스크래쳐에 자릴 잡고 잠을 청하던 재이가 곧 따라 나와 담요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소파 반대편 캣폴에서 눈을 감고 있던 와니도 내려와 내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재이를 따라 담요 안으로 들어왔다.
그 속에 손을 집어넣으니 제법 통통한 배와 달리 살이 없어 금방 뼈가 만져지는 재이의 발이 닿았다. 그 조그만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지고 있으니 곧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좋아진 재이가 제 발을 만지는 내 손가락을 정성껏 핥았다. 천천히 손을 움직여 이번엔 턱과 콧등을 쓰다듬었다. 와니는 어느새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온기를 나눠주고, 또 자장가를 흥얼거려주었다.
소파는 우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