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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Dec 17. 2020

크라우드 펀딩, 어렵지 않지만 쉽지도 않더라

나 혼자 와디즈 메이커 데뷔기


지난여름, 언니와 함께 생애 첫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오픈해 간신히 성공했었다. 다행히 그 뒤론 각종 독립서점과 마켓에도 입점해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타고 널리 퍼지고 있으니, 길게 보면 '간신히'가 '꽤'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얼마 뒤 우연히 보게 된 <디자인&굿즈 기획전>을 통해 다시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하게 되었다. 첫 번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둘이 아닌 혼자였고, 플랫폼이 텀블벅에서 와디즈로 바뀐 정도였다. 굿즈 제작은 이전에도 해봤던 터라 크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고, 두 번째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첫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며 언니와 많이도 싸웠다. 이미 찍어둔 사진을 추려 엽서북을 만들고, 그중 쓸만한 오브제를 그려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를 만드는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거의 다 한 것 같은데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덕분에 네가 하니 내가 하니 말이 많았다.


당시 제작한 제품


이번엔 역할 분담을 놓고 왈가왈부할 일은 없었지만, 둘이 나눠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당연히 공이 두 배로 들었다. 드로잉, 디자인, 샘플 제작은 물론이고 펀딩 페이지 작성에 리워드 설계, 각종 계약까지 혼자 하려니 퇴근 후에도 그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날이 계속됐다. 마침 남편의 야근도 잦아져 우리의 취침 시간은 11시 반에서 12시 반, 그리고 1시로 점점 늦어졌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와중에도 속속 올라오는 팀 프로젝트들을 보니 마냥 부러웠다. 급한 대로 잠깐 쉬러 나온 남편을 불러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의견을 구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하물며 펀딩 준비야, 맞들면 아주 낫다!



와디즈, 텀블벅, 똑같은 거 아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만 다른 거 아니냐고. 하지만 둘 사이엔 그보다 큰 차이점이 있다. 일단 주력 분야가 다르다. 와디즈는 테크/가전 분야의 신제품이 많고, 텀블벅은 독립 출판, 공예품 등의 문화 상품이 많다. 서로 사용하는 용어도 다르다.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을 와디즈에서는 '메이커'라고 하고, 텀블벅에서는 '창작자'라고 한다. 추가로 지원을 할 때도 텀블벅은 '밀어주기'라고 하는 반면 와디즈는 '후원금 더하기'라고 해, 펀딩 페이지에서 '밀어주기'란 단어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펀딩 준비를 하며 알게 된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먼저 그림으로 만든 로고를 게재하고 '표고송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던 텀블벅과는 달리 와디즈는 실명을 공개하고 얼굴이 나온 사진을 업로드해야 한다.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펀딩을 미리 받는 입장에서 신뢰를 주기 위한 조치이기에 곧 납득이 갔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스토리 작성과 프로젝트 오픈에 담당자가 따로 배정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내용을 작성한 후 제출을 하면 배정된 담당자가 수정해야 할 부분을 체크해주고, 이를 보완해서 제출하면 승인이 된다. 스토리 작성과 리워드 설계가 끝나도 '요건 확인'이 완료된 것이지 이때 바로 프로젝트를 오픈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픈을 위한 점검을 하는 담당자가 다시 배정되고, 이후 '최종' 승인이 나면 드디어 프로젝트를 선보일 수 있게 된다.



INTJ, ISTJ, ISFJ, ISFJ...?


새로운 플랫폼에서 혼자 준비를 한 것 외에 이번에 더 힘들었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펀딩 제품이 MBTI 유형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굿즈이기 때문이다. 16가지나 되는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것도 창작의 고통이 따랐지만, 후에 제품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워낙 체크해야 할 그림이 많다 보니 뒤늦게 똑같은 MBTI 유형의 캐릭터가 두 개이고, 하나는 누락됐다는 걸 알게 되어 부랴부랴 다시 그렸다. 샘플을 만들 때는 분명 16개를 다 주문한 것 같았는데 한 개가 누락돼,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개만 추가 주문하느라 배송비가 배로 들기도 했다.



스토리를 작성할 땐 캐릭터와 그에 따른 MBTI 유형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매 그림마다 해당 유형을 일일이 적었는데, 알파벳을 하나만 다르게 적어도 단순 오타가 아니라 INTJ와 INFJ처럼 완전히 다른 유형이 되어버리는 특성상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게 되는 검수도 필수였다.


정말 눈알이 빠질 뻔 했...




그렇게 이미 해본 거란 생각에 자신만만하게 도전해 큰 코 다친 2개월의 중장정이 끝나고 드디어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메인에 걸린 사진을 보니 또 제품 사진을 찍느라 혼자 왼손엔 조명, 오른손엔 카메라를 들고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리... 지만 자식 같은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 걸 보니 뿌듯하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또 엄청나게 어렵진 않았단 생각이 든다. (근데 펀딩은 이제 시작이고, 다 되면 제작하고 포장해서 배송도 해야 되는데?) 두 번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는... 괜찮지 않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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