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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듬 Apr 08. 2024

아침이 올 걸 알면서도

또 살고 싶어져서 쓰는 글이다. 이 정도면 조울증인가. 12시 전에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계획된 중요한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전부 물거품이 됐다. 분명 오후까지만 해도 정돈된 옷장을 보며 만족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자려고 눈을 감으니 사소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고장 난 인터폰, 물이 새는 냉장고, 같이 쓰는 세탁기에 신발을 돌리는 것까지. 결코 고쳐지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다 또다시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것이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옥상에 올라가는 상상을 한다. 고통 없는 질식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기도 한다. 죽음을 생각하며 자유를 느낀다는 건 뇌 속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여전히 병원에는 가고 싶지 않다. 좋은 기억도 없고, 당장은 그렇게까지 살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그래도 내일이 되면 이런 기분은 전부 사라질 것이다. 매번 그래왔다. 그러니 이 밤만, 이 고비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이런 고비는 몇 번이나 반복될까? 앞으로 내 인생에 이런 시간들은 얼마나 더 자주 찾아오게 될까? 그때마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충동이 강해지고 훨씬 결단하기 쉬운 상황이 주어진대도 참을 수 있을까?


과거가 내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과거는 변하지 않으며, 상황도 변하지 않았고, 사람도 변하지 않는다.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은 전부 과거에서 나온 것이다. 매일 고군분투하면서도 언제나 죽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


아침은 온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눈만 감았다 뜨면, 다시 어제처럼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갈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자꾸 이런 밤이 찾아오는 걸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처럼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면 나아질까? 지금껏 그래왔는데 왜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을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죽겠지만 아직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런데 아까 든 감정은 너무 강렬해서, 모든 걸 잊게 만들 만큼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당장 죽지 않을지는 몰라도 트라우마에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속에 언제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조용히 타이르고 한바탕 울어 털어낸 후 잠시나마 잠잠해지기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지금 당장은 아침도, 밤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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