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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끌 Jan 28. 2024

8. K-장녀가 팀장이 되면

서른 살 대기업 초짜 팀장의 고군분투기

우리 팀에서 나의 별명은 K-장녀다. 이유는 혼자 알아서 하려고 애써서.


대학을 일찍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올해로 벌써 9년 차지만,

평균 연령대가 굉장히 높은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윗연차가 많아서 직급 분포가 토르의 망치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병아리 취급을 받는다.


작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나와 PM님께 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른 몇몇 분이 계셨다.

같은 내용의 업무 요청 메일을 보내도 나는 씹히거나 혹은 전화로 짜증을 내시거나.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서 팀의 막내분한테 여쭤보니 역시나 비슷한 일을 종종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고 싶을 때 어떤 스탠스로 메일을 써야 할까 고민하고 있으면 PM님이나 팀장님이 감사하게도 "누구야? 제가 대신 메일 보내줄까요? 제가 대신 얘기할까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럴 때마다 "아닙니다.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제가 한 번 잘 정리해서 보내볼게요. 그래도 안 먹히면 SOS 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K-장녀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K-장녀인 내가 엄마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도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이다.

 

혼자 알아서 잘하는 팀원은 칭찬받지만, 혼자 알아서 잘하는 리더는 팀원만큼 칭찬받지 못한다.

아이디에이션 회의를 마치고 유관부서에 공유할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팀원분들께 일단 퇴근하시라고 하고 홀로 남아 장표를 만들고 있었다.

(구) 팀장님, (현) 임원분께서 지나가시다가 팀원들한테 일을 나눠줘야지 혼자 다 끌어안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우선 자료의 큰 흐름은 다 짜고, 내가 조사한 내용은 장표를 만들어놓고 퇴근했다.

다음날 팀원분들께 각자 찾으신 자료를 미리 배분해 놓은 페이지에 정리해서 넣으시도록 가이드를 드렸다.


리더는 혼자 알아서 잘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구나.

다 같이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리더구나.

오늘도 이렇게 하나 또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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