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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끌 Jan 31. 2024

9. 리더의 이중생활

서른 살 대기업 초짜 팀장의 고군분투기

나의 본캐는 직장인, 부캐는 대학원생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대학교를 3년 반 다니고 대학원을 햇수로 4년째 다니고 있는 대학원 지박령이 바로 나다.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직이 너무 간절해서였다.

직무는 최대한 유지하되 업계를 변경하고 싶어서 지원서를 여러 곳에 넣었으나, 

기존에 있던 업계가 너무 특수한 탓인지, 

경력이 부족한 탓인지, 

조건이 미달되는 탓인지 번번이 서류에서 떨어졌다. 


광탈의 아픔을 딛고 가고 싶은 기업들의 직무 공고를 한 파일에 다 긁어모아서 자격 요건의 공통분모를 뽑아보았더니, 대부분이 '석사 졸업'을 필수로 요구했다.  

그래서 관련 분야의 석사 학위를 따기로 마음을 먹었고, 면접을 본 뒤 합격해서 아직까지 다니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 대학원에 가니 회사도, 학교도 가지 않아도 돼서 집에서 화상으로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는 거의 본업이 대학원생, 부업이 직장인이었다. 

무슨 광기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비대면 시기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마음으로 내가 직장인임을 망각하고 수업 5개를 들었는데, 기말이 관건이었다. 


살면서 할 일이 감당이 안 돼서 눈물이 난 적은 처음이었다. 

한 시험이 끝나면 또 그다음 시험공부를 해야 하고, 

그 시험이 끝나면 다음 날 또 스무 장짜리 페이퍼를 제출해야 하고,

그다음 날은 조별 과제 결과물을 발표해야 하고, 

이 와중에 회사 일도 해야 하고... 이직 면접도 봐야 하고...

눈물 닦아가며 어찌어찌 학기는 잘 마무리하고 얼떨결에 성적 장학금까지 탔다.

재택 하면서 회사 메일 쓰면서 전화받으면서 대학원 과제하면서 시험공부하면서 밥도 먹고 간식도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 나


본래 계획은 졸업하고 이직하는 것이었으나,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 3학기 째 직장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이직 후 너무 바빠져서 수업을 한 개씩만 듣다 보니 벌써 6학기 째다. 


이제 논문만 쓰면 되는데, 

졸업이라는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닌 이직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원 세계에 입문해서인지 주제 선정부터 너무 막막하다.


며칠 전 지도교수님과 논문 주제 관련 화상 미팅을 했는데 

왜 이미 증명된 당연한 사실을 또 증명하려고 하냐며 혼났다. 

세상에 아직 증명되지 않은 사실은 무엇이 있을까요 교수님? 저는 너무 무식한 같습니다. 

아직 고양이가 태어나지도 않은 내 논문


절망하며 똑똑한 챗GPT한테 도움을 요청해 본다. 

이러다 석사 수료로 남으면 안 되는데 큰일 났네. 

나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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