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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Dec 31. 2020

섬뜩한 미수의 맛(feat. 팻 핑거)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연우제다 세홍. 3g, 90도, 40s-30s-40s-50s-1m10s


올 한 해 주식 투자로 재미를 본 분들이 많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3월의 폭락 이후 연말까지 주가지수는 대세 상승을 해왔으니, 대부분 만족할 만한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짐작한다.


작가도 올해 동학 개미 행렬에 올라타서 주식 시장에서 재미를 보았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부지런히 들여다보는 타입은 아니어서 수익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제법 쏠쏠한 부수입을 얻었다. 그러다, 주식 거래 과정에서 섬뜩한 경험을 하여 이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얼마 전 주가지수가 1% 넘게 하락을 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서 주식 시세를 확인하였는데 주가가 1% 이상 하락하는 것이었다. 단기 조정이었는데, 작가는 이럴 때마다 기계적으로 일정액의 상장지수 펀드(ETF)를 매입한다. '좋은 기회다' 싶어서 서둘러 스마트폰 앱에서 미리 골라 놓은 펀드의 매수 주문을 넣었다. 마침 동료가 찾아와서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서둘러 버튼을 눌러 버리고 즐겁게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요즘 회사의 점심시간 대화 주제는 단연 주식 투자다. '어느 어느 회사 주식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누구는 대박을 노리고 잡주만 샀다가 망했다더라' 등등,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도 웃고 떠들면서 주식 투자 얘기만 했었다. 정작 점심시간 바로 전에 주문을 넣은 펀드는 매수가 되었는지 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크지 않은 금액으로 조금씩 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점심시간 후 자리로 돌아와 업무 준비를 하고 나서야 점심 전에 넣은 매수 주문을 확인하러 스마트폰 앱을 열었다. 평소 같았으면 확인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왠지 확인이 하고 싶었다. 포만감이 가시지 않아 졸음을 쫓기 위한 뭔가가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문한 펀드는 매수가 되어 계좌에 잘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잠깐만, 그 금액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무려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거금! 억 소리 나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떡하니 찍혀 있었다. 세상에나, '팻 핑거(fat finger)'라 불리는 주문 실수를 한 것이었다. 급하게 주문을 하며 "미수 최대" 버튼을 눌러서, 작가가 증권사에서 빌릴 수 있는 최대 금액으로 펀드를 구매해버린 것이었다. 계좌에 들어있는 예수금보다 자릿수가 몇 개나 더 있는 것을 확인도 안 하고, 주문을 해버린 것이었다. 전문 투자자가가 아닌 이상 절대로 하지 말라는 미수거래를 해버린 것이었다. 미수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정작 내가 쓸 일은 전혀 없을 거라 생각해 왔던 미수거래...


미수(未收) 거래: 사전적 정의는 "증권사에 주식 매입 대금의 일부를 증거금으로 내고 외상을 얻어 주식을 사는 거래"이다. 그렇다, 증권사는 주식 거래를 대신해줄뿐더러 외상을 대주기도 한다. 증권 거래를 한 날을 포함해 3일 동안만 빌릴 수 있고, 3일까지 빌린 금액을 되갚지 못하는 경우 증권사는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모두 임의로 매도해서 미수금을 회수하는 반대매매를 할 수 있다.
미수거래는 투자자의 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해결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다시 말해 투자 자금이 다른 계좌나 주식에 묶여 있는 경우, 이를 찾아오는 동안만 임시로 자금을 대주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모험적인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대부분 '주식으로 패가망신' 스토리의 시작이 미수나 신용 거래, 즉 남의 돈을 빌려서 하는 위험 투자라 보면 된다.

팻 핑거(fat finger):  문자 그래로 해석하면 "두꺼운 손가락"이다. 금융 거래 시 단말기 조작 미숙이나, 단위 표기의 실수로 발생하는 사고를 말한다. 귀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손가락을 잘 못 놀려서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 파산한 사례들도 있다. 유명한 최근 사례로 2018년 삼성증권의 배당금 입력 사고가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온몸이 덜덜덜 떨리면서 '이러다 패가망신하는 것 아닌가?' '이 큰 돈을 어디서 구해서 메워야 하나?'하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정신줄을 다잡고, 구매한 펀드를 곧바로 팔아버리기로 했다. 3일 후까지 판매하고 미수금을 입금하면 되지만, 몇 억이나 하는 리스크를 한시라도 빨리 덜어버리고 싶었다. 주가 지수가 올라 수익이 날 것을 기대할 여유 조차 없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개장시부터 점심시간까지 주욱 떨어지던 주가가 점심 이후 반등을 하여 구매했던 가격보다 상승해 있었다.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전량을 팔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손해는 보지 않았다. 사실 상당한 금액을 벌었다. 그러나 주가가 계속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매우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계좌에 가지고 있는 증권을 모두 미수금을 갚는 용도로 증권사에 헌납했어야 할 수도 있었다.


매수했던 증권이 개별 종목의 주식이 아니고 펀드였다는 점이 신속히 전량을 판매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워낙 거래량이 많아서 시장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내었더니 1분도 안되어서 그 많은 물량이 모두 팔려 버렸다. 거래량이 많지 않고 인기가 없는 개별 주식이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하한가로 주식을 내놓았어야 했을 수 있다. 그래도 팔리지 않는다면 졸지에 어느 작은 주식회사의 대주주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무사히 사고가 수습되었으니, 이제 와서 돌아보며 이런 우스개 소리도 할 수 있다).

 

전량 매도가 완료된 것을 거듭 확인하고 나서 동료들에게 이 미수거래 사고 얘기를 했다. 그런데, 같이 놀래기는 커녕, 다들 '그래도 돈을 벌었으니 좋은 거 아니냐? 운도 좋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절초풍할 뻔했던 작가의 마음은 몰라주고...


어쨌든 돈을 벌었으니 잘 되었다고? 작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경험을 통해서 '돈 벌기 참 쉽죠'라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이라도 갖게 되는 것이 제일 무섭다. 남의 돈을 빌려서도 쉽게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할까 봐 섬뜩하다.


"초심자의 운(Beginner's luck)"이라고 낚시를 처음 하는 사람이 대물을 낚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바다는 처음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에게 제일 큰 고기를 안겨준다. 앞으로도 계속 낚시를 하게 만들려고 하는 바다의 깊은 뜻 내지는 수작이라고 낚시꾼들끼리 수군대는데, 이런 식으로 낚시에 코를 꿰인 사람이 제법 많다.


이번 미수 거래에서 수익을 거뒀다고 해서, 앞으로도 나에게 이런 행운이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무엇보다 '팻 핑거'와 같은 큰 실수가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일을 하면서 덜렁대지 말고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이점을 자신에게 단도리 하기 위해 한 해를 보내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주변 동료들은 얼마나 벌었는지를 매우 궁금해하는데, 금액은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얼마를 벌었는지 금액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 큰 실수 속에서 손해를 면하고 빠져나온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액수를 얘기하면, 견물생심인지라 그것을 듣는 주변 사람들이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혹시라도 할까 두렵기도 하다.


이번 사고(?)에서 벌은 수입으로 동료들에게 저녁밥 한 끼를 사고, 나머지는 모두 세계자연기금에 기부해 버렸다. 정당한 노력 없이 쉽게 벌어 들인 눈먼 돈은 내 돈이 아니다.  


좋은 차 한잔 마시면서 절제를 다짐한다. 과하게 욕심을 내서 찻잎을 많이 넣거나, 오랜 시간을 우리면 쓰고 맛없는 차를 마실 수밖에 없다. 내년은 모두가 회복하는 좋은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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