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연우제다 우홍. 2.5g, 99도, 30s-20s-40s-50s-1m
얼마 전 대학에 특강을 다녀왔다. 온라인 강의는 처음이었는데, 학생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해서 아쉬웠지만 채팅창을 통해 소통하는 것에도 곧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학부생 대상의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한 강의였는데, 학생들을 만나 기후변화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언제나 보람 있는 일이다.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코로나19 방역에 빗대어 애기를 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한다;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의 2차 전파력은 0.8%이다. 무증상 감염자가 100명을 밀접 접촉하면 0.8명을 감염을 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당신의 일상을 생각한다면 하루에 몇 명이나 밀접 접촉하시는지? 무증상 감염자가 125명 이상을 접촉한다면, 그중 한 명을 감염시킬 수 있겠다. 당신이 무증상 감염자가 되어서 단시간에 1명이라도 확실히 감염을 시키려면, 클럽이나 스텝 클래스에서 열심히 가쁜 숨을 몰아 내쉬어야 할 거다. 그런데 지금 이 0.8%의 확률 때문에 증상이 있든 없든 간에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우리의 삶이 흔들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지금처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상승할 확률은 20%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면, 여름철 평균 온도는 3도가량 상승한다. 요즘 여름이 충분히 덥다고 느끼지 않으시는지? 이 정도로 기온이 상승하면 산호초의 70~90%가량이 멸종하고, 해수면은 0.7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다. 인류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수산자원의 어획량은 전 지구적으로 150만 톤 가량 감소할 수 있다(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고 사람들이 당장 떼죽음을 당하지는 않겠지만(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능성에 더해 기후변화가 유발할 극한 기상 현상으로 죽거나 다칠 확률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기후변화의 위협을 상당히 저평가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당신의 하루를 돌아보시라, 앞으로 닥쳐올 기후변화의 위험을 걱정한 순간이 있는지? 기후변화를 예방하기 위해 무엇 하나라도 의식적으로 행한 일이 있는지?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의 전염 확률 0.8% 때문에 증상이 있건 없건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강제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20%의 확률이 넘어가는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까? 아마도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힘을 합하여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모두가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고 한 두 명이라도 이탈하여 무임승차를 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도 무임승차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위험 속에서 각자도생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기온이 높아지면 우리 집에 에어컨을 사면 되고, 수면이 상승하면 더 높은 지대로 이사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나 하나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덫에서 요리조리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싶다."
코로나19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0.8% 확률에도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이유는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 때문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다고 하더라도 예상되는 피해가 너무 크고 되돌릴 수 없다면 대응 조치의 비용이 크다 할지라도 미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시급하게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예상되는 피해를 저평가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당장 나와 우리 가족에게 또는 우리 세대에게 일어날 일이 아닌 먼 미래의 일이라 치부하고, 일어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은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예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유행에서 똑똑히 보았지만, 이런 전 지구적 위험 상황에서 나 하나만 똘똘하다고 무탈하게 살아 남기는 힘들다. 아무리 방역을 잘해서 우리 국경 안에 확진자가 없다 한들, 다른 나라에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우리가 생산한 상품의 수출이 어렵다면 우리 경제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지구 상의 우리 모두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구 대기에 코를 박고 숨을 쉬는 모든 생명체에게 기후변화는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당장 무얼 해야 할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 연료의 소비를 확 줄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모든 화석 연료 소비를 멈춘다 하더라도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내뿜어온 온실가스 때문에 기후변화의 영향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 평균 기온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IPCC의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수준에서 안정화하기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배출 수준에서 최소한 45%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사실상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혀 없는 상태인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탄소중립이란 인간의 경제 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인간의 노력으로 저장하는 온실가스 흡수량이 똑같아서, 사실상 인간 경제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나무를 심거나 탄소 저장 기술(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을 사용하여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의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화석연료의 가격을 올려서 사용자들이 절약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세금의 형태로 가격에 반영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렇게 하면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물론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사실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화석연료의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번번히 가격 인상에 부정적인 "국민 정서" 때문에 제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해오지 못했다. 도대체 세금 인상을 반기는 "국민 정서"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다들 원하지 않지만, 대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그것을 설득하는 게 정치의 일이 아닌가 싶다.
과거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법안에 따라 화석연료 가격을 올려 봤자, 정교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일반 가정에는 1달 동안 1장에 1,500 원하는 공적마스크를 구입하는 비용보다 부담이 적을 거다. 4인 가족이 한 달에 마스크를 1주일씩 사용한다 치면 24,000원을 추가 지출해야 하는데, 한국 전력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국 가구당 평균 전기료가 2만 원이 채 안되었었다. 1인 가구 비중이 증가한 것을 생각하면 4인 가족의 평균 전기 요금은 이보다 많겠지만, 시급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1달 마스크 비용 정도는 기꺼이 더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장마를 만나서 기후변화의 위험을 새삼 체감하는 요즘이다. 구청에서 재능 기부 강사 신청을 하라길래, 다도 수업으로 강사 신청을 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에 관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싶다. 기후변화 대응에 무기력한 나와 주변을 차 한잔으로 나마 달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