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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Mar 15. 2021

내 마음속의 DMZ

다담잡설(茶談雜說):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대만산 대우령. 3g, 95도, 40s-30s-40s-1m-1m30s

들은 노래: 비밀의 화원(노래: 안단테)


한참 옛날에 작성했던 수필 한편이 생각나서 다시 꺼내 봤다.  "내 마음속의 DMZ"라고 캐나다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을 정리한 글 조각이다.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남아 있던 시절이라 어디에 내놓지도 못하고 고이 묵혀 놓았던 것을 조금 다듬어서 이곳에 올려본다. 


대만산 대우령 차를 어렵사리 구했다. 정말 향기로워서 마치 은은한 향수를 마시는 기분이다. JTBC 팬텀싱어 시즌3에서 아깝게 탈락한 베이스 구본수가 3인조 그룹을 만들어서 데뷔하였다. 첫 앨범에 수록된 "비밀의 화원"을 강력히 추천한다. 좋은 차 한잔 마시면서 멋들어진 화음을 음미해 보시길. 아래 가사를 들으면서 그리운 사람들을 추억해 보시길. 그러나 찻물에 눈물이 섞이는 것은 주의하시길.


그대는 나를 떠나도
추억까지 데려가진 않았네

그립다 그립다 네가 그립다
가슴 가득 번지는 말 차마  할 수 없어
내가 나에게 말해요

 

요즘 낭독에 취미를 붙이고 있다. 목소리를 교정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글을 좀 더 완전히 맛보기 위함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도 준비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아래 에세이를 낭독한 파일을 첨부한다.




내 마음속의 DMZ


‘북한 사람이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두 남루한 사내들의 가슴에 김일성, 김정일 배지가 선명했다. 스쳐 지나갈 때 엿들은 사내들의 짙은 이북 사투리가 그들이 북한에서 왔음을 확인해 주었고, 순간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서버릴 뻔했다. 평화롭던 밴쿠버의 가을 아침이 혼돈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린 순간이었다.


그날 하루를 보내며 아침에 봤던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떨쳐낼 수 없었다. ‘도대체 캐나다에 왜 그들이 와 있는 것이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밴쿠버의 한인사회는 매우 좁아서, 잠깐의 수소문 끝에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이 북한 외교관들을 세미나에 초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만 들었으면 나의 궁금증이 풀렸으리라. 그런데, 세미나는 끝났고 마침 다음날 학부의 한국어 수업에서 그 북한 외교관들을 강사로 초청하여 특강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뛰었다.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어렸을 때 늑대의 탈을 쓴 괴물이라 배웠던 북한 사람들의 진면목을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다음날 만사를 제쳐두고 대학으로 찾아갔다. 특강 안내문에 비공개 수업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봤기에 수업의 조교를 만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캐나다에서도 북한과 관련 있는 일들은 모두 민감한 것이었다. 조교는 성마르게 보이는 중국계 여자였다.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 소개를 하고 청강을 하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것은 신경질적인 “No”였다. 수업 전에 끝내야 할 일에 마음이 급했었는지 나의 방문 자체에 짜증을 내는 듯했다. 물러서지 않고 매달렸다. 그러나 ‘수업은 비공개’라는 말만 반복하며 나의 간청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크게 낙담을 했으나 이번에는 수업이 있는 교실 앞에 가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북한 강사들이 올 때 그들에게 직접 부탁을 해볼 작정이었다.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북한 사람들로 보이는 서너 명이 오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서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을 찾아 접근하였다. 함께 오던 조교가 나를 발견하고 째려보았으나 애써 무시하였다.


“북조선에서 오셨습니까?”

“네.”

“저는 남한에서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네다.”

“지금 이 수업 저도 듣고 싶은데, 제가 참석해도 될까요? 꼭 듣고 싶은데······”

“안될 거 있습네까?”

“그런데 여기 조교가 허락을 안 해주네요.”

“음, 그렇다면······”


순간 멀리서 따라오던 북한 측 보안요원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와 대화가 끊겼다. 보안요원은 무슨 일이 있는지 묻더니 내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바로 교실 안으로 그 신사를 안내해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수업의 조교가 나에게 엷은 비웃음을 띄우며 교실 문을 닫아 버렸다.


어두침침한 복도에 홀로 남겨졌고 주변으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교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괜한 소동으로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교실 밖에서 창문을 통해서 나마 청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까치발을 해보고 쓰레기통을 놓고 올라서 보기도 했으나 교실이 높아 안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었다.


5분여를 헛되이 버둥대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무 그늘 사이로 들어오던 오후 햇살은 그리도 찬란하던데 어찌나 서럽던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반세기가 넘게 자유로운 교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왜 아직까지도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이렇게 두터운 장벽이 놓여 있는가? 독일도 예멘도 통일을 하였는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 그대로인가? 눈물과 함께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내렸다. 버스를 타고 복잡한 시내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데, ‘과연 우리는 언제 통일을 할까? 과연 할 수는 있을까’라는 자조 섞인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밴쿠버에서 이 일이 있은 후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남북관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남북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하였고, 김정일이 사망하였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한은 대치 속에 있다. 언제나 한반도의 봄이 올는지 아직 짙은 안갯속이다.


나의 인생에서 통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통일이 되면 성가신 일들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우선 들뿐이다. 그럼에도 통일을 바라는 것은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과 사람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왕래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남과 북을 오갈 수 없는 것은 차치하고 마음속에 거북한 장벽을 두고 북한의 사람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가 답답하기만 하다. 오늘도 가만히 내 마음속의 DMZ가 완전히 무너져 내릴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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