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랩 May 06. 2023

뛰는 고수 위 나는 일류

은은한 진상 손님을 대하는 법




최근의 일이다.

요새 운이 좋아서였나? 아니면 내가 무감해진 건가?


몸이 힘든 일은 많았지만 기억나게 상처받거나 속상하게 하는 손님이 잘 없었다.

(물론, 울컥! 빠직! 하는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일상처럼 잘 흘러갔다.)



그런데, 이번 비행에서는 유독 은은하게 무례하여 나를 은근히 화나게 하는 손님이 있었다.



승무원 입장에서 볼 때에 이런 은은함은 ‘스킬’이다.



손님이 버럭 화를 내거나 고성, 욕설, 모독을 하면 차라리 경찰에 인계를 하거나 업무 방해행위로 조치를 취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도의 스킬을 가지고 뭐라 화내기도 모호-한 태도로 나를 ‘부리면’ 그냥 당할 수밖엔 없다.



이번에 만난 그 스킬 좋은 승객은 처음부터 내 요구에 불만이 많았다.



“회장님 이착륙하실 때에는 발 밑에 짐을 두실 수 없습니다. 비행 중에는 가능하니 그때 다시 내려드릴까요?”



탑승 때부터 나의 관심법으로 어느 정도 조심해야 할 상대라 파악하고 나름 내가 다시 내려 준다는 전제를 걸고 다가갔지만



“아, 전에는 했는데… 오늘 승무원들 왜 이러지”



가스라이팅 스킬이 보통이 아니시다.


오늘 승무원들이 이상하다는 프레임을 덧씌우지만, 사실 모든 승무원이 일괄적으로 해야 할 안전 업무이다.

하지만, 어딘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상 쓴 얼굴, 고압적인 태도, 회장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나는 승무원이라는 위치, 그는 승객이라는 위치라서 인지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도 움찔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승무원들 왜 이러지” 절레절레 하며 결국 본인은 가만히 앉아있고,

마치 나에게 ‘그래, 맘에는 안 들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니 허락해 주지!’라는 태도로 발 밑에 짐을 손가락으로 틱 가리키고는 위로 올리라는 손짓으로 머리 위 선반을 가리켰다.



크으…. 대단한 스킬의 소유자.

하마터면 “허락해 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절이라도 올릴 뻔했다.



역시, 너무 당연한 요구에도 만만하지 않았던 손님은 이륙 후가 되자 더 화려한 스킬로 나를 은은하게 화가 나게 했다.



“저기 뒤에 일반석에 내 친척이 탔는데, 오늘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서 말이야. 여기 옆에 내 빈자리에 오라고 하면 안 되나?”

라고 직접 그날의 팀장님을 불러 말씀하셨단다.



절대 안 되는 일이라 팀장님은 규정을 말씀드렸고, 회장님께서 일행분 옆자리에 앉으시는 것은 가능하나 그분이 비즈니스 석으로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안내드렸다.




그리고 식사 시간!

다른 손님들의 서비스가 순서대로 진행되고 그 회장님의 순서가 되었는데, 그는 자리에 없었다.

일행이 있는 일반석에 가신 거다.



사실, 식사 시간 때 제 때에 식사를 하는 게 승무원입장에선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분이 식사를 안 하시면 또 따로 식사를 빼두었다가 원할 때 다시 조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니까.

그분이 사라져서 그분이 주문한 식사를 다 빼두고 그 외의 손님에게 원활히 식사 서비스를 진행했다.



그런데, 한창 바쁜 서비스 중간에 일반석에서 콜이 왔다.

(승무원이 앉고 이착륙하는 좌석 옆엔 각 스테이션으로 통화를 할 수 있는 인터폰이 있다.)



“그 손님, 일반석에서 비즈니스 식사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네.”



팀장님의 황당한 얼굴과 전달 내용.

결국 팀장님은 또 한 번 그 손님에게 안된다는 것을 설명하러 일반석으로 가셨고 우리는 한 명이 부족한 채로 (팀장님까지 원래 함께 비즈니스 서비스를 한다) 일을 했다.



모든 서비스가 다- 끝나고 한숨 돌릴 차에 ‘딩동’ 승객 콜이 울렸다.



와우! 회장님이다.

역시, 스킬이 만렙이셔!!!!! 어쩜 타이밍도!!!



“아 나 때문에 미안하게 됐네. 뒤에서 먹으려니까 안된다 그러더라고. 나 밥 좀 줘요.”




와우! 하마터면 일반석으로 밥을 배달 안 해준 내 탓인 줄 착각할 뻔했잖아?!!

이제 모두의 식사가 끝난 조용한 시간에 일등석 손님처럼 원 바이 원 서비스를 받게 되신 회장님.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시고, 이제는 면세품을 사신다고 한다.

사신다면 드려야지.

물건을 찾아와서 결제를 하러 앞에 섰다.



“응 저기 지갑 꺼내게 위에 가방 좀. 아까 올린 그 가방 말이야.”



너는 좀 귀찮을지 모르겠지만, 난 올린 적 없어.

네가 올렸잖아.

그런 말투였었다.


 내가 이분의 스킬에 너무 감탄해서 과잉해석하는 걸 수도 있지만

모든 말투가 묘하다… 묘하게 자꾸 나를 질책하는 듯하고, 묘하게 아니 꽤나 기분이 나쁘다.



속에선 자꾸 천불이 나지만 참아낸다.

지갑을 꺼내서 드리고 결제를 마쳤다.



사실 면세품을 위로 올려달라는 요구는 꽤 많다. 사실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이며 본인의 짐은 승객 본인이 케어하는 것이 맞다.


(많은 짐들에 섞여 넣어드리다 면세품이 떨어져서 다른 손님 머리나 어깨로 떨어질 수도 있고 이런 경우 승무원이 도와주다가 그랬다 하면 선의로 했던 일이 내게 엄청난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늘 행동에 앞서 주저하게 되는 것도 있다. 때문에 노약자, 도움이 꼭 필요한 승객을 제외하면 적극적으로 돕지 않도록 한다.)



이 분은 절대 100% 아니 200% 올려달라고 할 것 같았기에 그리고 작은 화장품이었기에

“올려드릴까요?”하고 여쭤봤다.

(시켜서 하는 일보단 내가 먼저 나서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



하지만 우리 만렙 회장님, 나 같은 하수가 수를 읽으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옆에 보면 큰 보스턴백 있는데, 그거 좀 내려줘요.”



하…………회장님

차라리 욕을 해주세요. 신고하게.


차라리 저를 밀쳐주세요. 기장님한테 보고하고 경찰 부르게.



내렸다.

무거운 보스턴 백을,

우리 회장님은 뭘 하셨냐면…

지. 퍼. 를. 열. 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너무도 친절하게 지퍼 입구를 벌렸다.




“들어갈 것 같아.”



들어가겠죠….

들어가긴 가는데, 왜 제가 넣어야 하죠….?



결국 나는 친절히 벌려주신 그 가방 안으로 면세품을 넣고,

보스턴 가방을 다시 올리고, 지갑을 꺼낸 가방을 올리고 나서야 회장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

내가 이렇게나 욕먹고 싶던 순간이 있었나?

내가 이렇게 해코지당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나?



올해 들어 욕을 가장 간절히 바란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거절했을 때 정말 ‘괴물’처럼 변해 화를 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손님은

차라리, 하수다.



모두가 보기에 이상하고, 그렇기에 대응할 수 있고 털어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이런 고수들은,

오히려 감정적으로 더 오래 찜찜하다.



후, 너무 화가 나지만 나는 더 고수다.

왜냐고? 이걸 글로 풀어내니까!



이렇게 글로 나를 다스리며 오늘도 더더더 고수가 되어간다!!

이 글을 끝으로 더 이상은 맘에 그 악한 감정을 묵혀두지 않아야지!

난 교양 있고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일류니까.



뛰는 고수 위 나는 일류다. 아임 일류. 오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