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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Aug 10. 2023

나의 첫 비행(2)

난리통에서 배운 것들




첫 비행에서 실습비행 친구들의 질문 공격에 호되게 당한 덕분일까?

그 이후의 비행에서, 나는 질문을 주저하는 사람이 되었다.

‘선배의 입장’을 경험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첫 비행에.



복도는 하나이고, 주문은 많고 식사 서비스를 하는 카트로 복도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정말 병아리가 닭을 졸졸졸 쫓아다니듯이 내 뒤만 따랐다.

작은 비행기, 바쁜 기내, 수도 없이 쏟아지는 주문 속에서 나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뻔했다.




막내는 손님들의 ‘콜’을 받느라 바쁘다.

신입으로서 일을 잘하는 것은 선배들이 식사 서비스 준비에 전념할 수 있게 ‘띵동’ ‘띵동’ 쉴 새 없이 눌리는 콜을 받아 해결하는 것에 달려있다.

하지만 복도는 하나뿐, 손님들이 찾는 음료나 담요 혹은 서비스 아이템이 있는 곳은 비행기의 최후방.

그리고, 나에겐 두 명의 실습생이 세트로 따라다닌다.



엄마가 보고 싶다. 땅이 보고 싶다. 강사님도 보고 싶고 동기들도 보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어제까지 교육원에서 배워온 매뉴얼과 현장의 일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서비스 모션에 맞추어 ‘일사일언’하면서(교육 때 일사일언이라는 말을 과장 조금 보태어 천 번 정도 듣는다) 음료를 드릴 때에 “네 손님, 주문하신 오렌지 주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라고 배웠지만, 비행기에 오니 이것이 서비스 속도를 늦추는 원흉이었다.

그 말을 하나 하나 하느라 느려터진 내 서비스 속도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고 흰 자위를 보이는 선배가 벌써 내 앞으로 세 줄, 네 줄씩 속도를 높여 서비스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날랩씨, 카트에 주스 다 떨어졌으니까 갤리 가서 오렌지 주스 좀 가져오세요”라고 말이라도 하신다면,

두 대에 카트가 나와있는 상황에 그 카트를 해치고 나아가 선배님에게 “사무장님, 죄송합니다만 저희 카트에 오렌지 주스가 다 떨어졌습니다. 오렌지 주스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 네” 하고 쌩- 재빨리 다녀와 오렌지 주스를 건네는 선배님.



모든 언어는 예의를 갖추어 다나까로 말하도록 교육받은 나에게 그들의 태도는 제법 차갑게 느껴졌고, 그 뒤로는 요령껏 본론만을 말하게 되었다.


오히려 실습생 후배들 덕분에 내 말투가 선배에게도 꽤 킹 받게 들릴 수 있음을 빨리 인지할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눈치도 보아가며, 손님들의 요구도 들어가며 열심히 식사를 제공했고, 카트를 끌고 갤리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같이 일하는 선배는 말했다.


“날랩씨 어디 가요. 바로 걷으세요. 시간 없어요.”


본디, 교육원에서 배운 바로는 식사 서비스 후 갤리로 돌아와 카트 위를 정리하고, 빈 카트로 나가야 하는데…. 이걸 되물어선 안된다는 눈치가 생겼고 하라는 대로 했다.

(내가 눈치가 없을까 봐 그러셨는지 ‘시간 없어요!’라는 말엔 날이 서 있었다.)



또 나는 배운 대로

“식사는 맛있게 드셨습니까? 다 드신 식사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한 분 , 한 분께 열심히 일사일언을 했고 다 드신 식사 트레이를 받아서 카트에 넣어야 하는데 카트는 이미 저 멀리로 가있었다. 도저히 첫 비행인 나와 선배의 속도가 맞질 않는 거다.


내가 한 명 걷을 때 선배는 거의 한 줄을 넘어 두 줄을 회수하고 있었고, 그 속도가 너무 차이가 나서 나는 내 쪽 남은 공간에 선배가 걷어 온 트레이를 넣기만 해야 했다.


내 몫을 못하는 것 같고,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고, 서둘러 보려고 하면 자꾸 손이 엇나가고 트레이 위에 포크나 나이프 같은 것이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그저 죄송한 일의 연속. 그렇게 카트가 다 찼고 나는 일을 한 건지, 선배 수발을 든 건지 모를 일을 하고 갤리로 향했다.

지금에 상상해 보건대 ‘무슨 승무원이, 손님 눈도 안 보고 저렇게 서두르기만 해. 그러면, 손님들이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이나 할까?’라는 억울한 맘도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지금의 나는 느려터졌지만, 익숙해져도 꼭 손님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눈 맞추고 좋은 서비스를 해야지.‘


꿍얼꿍얼 대며 그렇게 겨우 갤리에 들어왔을 즈음


“cabin crew, prepare for landing”

“!!!!!!”



벌써?

기장님의 착륙 준비 시그널이 울렸다.

아직 카트는 갤리 안에 있었고, 치워야 할 게 산더미다.



나는 우왕좌왕했다. 뭘 어떻게 치워야 하지?

강사님이 착륙 준비 시점에는 안전 업무를 하라고 했는데, 내가 나가기엔 이미 기내판매 카트가 복도에 있고, 지금 갤리 안이 난장판이다.



배운 대로 주스류나 콜라 같은 물이 아닌 액체는 따로 빈 페트병에 모아 버려야………

는 무슨 , 다들 선반 위에 올려진 음료를 카트 안이나 하수구에 빨리 버리고 쓰레기통에 담아내기 바빴다.


나의 눈은 충격으로 커졌지만, 역시 또 여기서 질문을 해서는 안될 거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대충 눈치껏, 이게 맞나 싶은 맘을 갈무리해 가며 올라와 있는 모든 것들을 쓰레기통과 카트 안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딩- 딩 - “ 하고 랜딩 사인이 났다.

랜딩 사인이 나면 정말 모든 안전 업무를 서둘러 마치고 나 역시도 벨트를 메야하는 시점이었다.


서둘러 복도로 나가 승객들의 짐 보관 상태, 벨트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와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앉을 수 없었다. 여전히 갤리는 난장판이고 아무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배울 때엔……도리도리.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


 뭐라도 도울 수 있는 게 있나 살피지만 알 턱이 있나. 배운 것과 하나도 맞는 부분이 없는데 눈치로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멘붕의 상태로 멍- 하니 서있다 흘긋 본 창 밖은 내가 그토록 보고 싶던 땅이 거의 다 와있었다.


드디어 하나 둘, 자리에 앉으시는 선배님들을 따라 나도 앉아서 벨트를 맸다.


“날랩씨, 오늘은 첫 비행이었지만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돼.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얼른 자기 몫을 해야지. 지금 학생이 아니잖아. “



맞다. 나는 더 이상 훈련생도 실습생도 아니고 내 담당 구역을 가진 승무원이었다.

그런데, 선배님….. 다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부터 열 까지 교육원에서 배운 것과는 다 다르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럼 정말 다 물어봐도 됩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하루 만에 사회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눈치껏 배웠다. 실습생들의 덕이 크다.


그리고, 내가 잘 못 생각했다는 걸 배웠다. 손님의 눈을 맞추고 하나하나 서비스를 하다가는 식사를 못하는 손님이 생길 수도, 안전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짧은 비행에서는, 모든 임무를 시간 안에 해내는 것이 최선의 서비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의 비행을 통해 나는 질문을 참는 법, 눈치를 보는 법, 그리고 선배들이 매뉴얼 대로 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큰 교훈을 얻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고 손에 땀이 나는 첫 비행.



코로나로 한 동안 중국을 가지 않아서 중국 비행을 안 한 지 꽤 됐지만, 10년 차가 지난 지금이라도 여전히 단거리 비행은 쉽지 않다. 여전히 공포이고 악명 높은 비행이다.



온몸으로 그 엄청난 비행을 경험했던 그날의 나, 참 고생이 많았다!! 그리고, 꿍얼대며 욕하던 승무원의 모습대로 가끔은 타성에 젖은 서비스를 하고는 있지만, 오늘을 계기로 그때의 초심을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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