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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 Apr 15. 2022

정병녀들아 데이팅어플은 자제하자

한때 모든 데이팅어플을 섭렵했던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정말 섭렵했다. 틴더(너무 유명한 어플이라 그냥 말하겠다)를 비롯해 각종 어플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용했던 어플은 틴더였다. 잠깐 쉰 적도 있으나 1년 넘게 그 어플을 애용했다.

왜였을까? 우선, 틴더는 정말 직관적이고 매우 반응 속도가 빠른 어플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플은 승인 절차가 있는 데 반해 틴더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자기 얼굴을 올리지 않아도 됐다. 나는 처음엔 내 얼굴을 올렸다.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이지만 어쨌든 별로 다를 게 없는 사진을 올렸다. 약간 쿨하면서도 예뻐 보이는, 내 얼굴의 장점이 잘 보이는 (그리고 단점은 감춰지는) 사진을 골랐다. 그러다가 몇 번 데이트를 했고 어느 순간 내 얼굴을 올리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얼굴을 내리고 대신 귀걸이나 뒷모습 같은, 그냥 이미지로 유추할 수 있는 사진을 올렸다. 그냥 무난하게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좀 대화하다가 곧장 카톡으로 넘어가자는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많았다. 나는 당시 정병 맥스였던 시기여서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맥스였구나 알게 되는 시기) 어지간하면 맞춰주었다. 그러면서도 방어 기제가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도 세웠다. 친구들한테 말하는 건 한계가 있어서 (그야 친구들도 생활이란 게 있으니까) 무슨 연애 상담 고민 어플로 돈까지 내가면서 밤새 고민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할까? 이 사람은 왜 이제 내가 싫어진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 많은 질문들 속에서 정말로 나는 이 사람을 원하는가, 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은가, 이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은 없거나 아주 희미했다. 

언젠가 틴더에서 어떤 남자랑 매칭이 됐는데, 그 사람은 자기 얼굴도 안 올렸고 그냥 상담만 해준다고 했다. 신원을 비밀로 부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한국 남성들이 연애 시장에서 얼마나 약아빠졌는지를 이야기해주었고 자기는 그 점이 안타까워 틴더에서 여성들을 상담한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선의가 고마우면서도 그의 처지가 부러웠다. 그는 나한테 이렇게 조언했다. "어차피 듣지도 않겠지만, 틴더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근데 지우라고 해도 안 지울 거 다 알아요." 그 사람에게 며칠 동안 상담 받았던 여성들 중에서는 운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접점도 없지만 어쨌든 그 사람을 공통으로 거쳐간 여성들은 누구일지 잠시 상상했다. 모르긴 몰라도 나와 비슷할 것 같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정체 모를 남자의 말은 맞았다. 나는 당분간 틴더를 계속했다. 친구들이 제발 하지 말라고 해도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친구들 말을 듣지 않는 나도 밉고 그렇다 해도 그냥 그 순간에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틴더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중독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시기였다. 엉망이었고 끔찍한 상태였다. 나를 함부로 대하면서도 그런지도 몰랐다. 분명 여길 밟으면 지뢰가 있을 거야, 라고 확신하면서도 밟고야마는 마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무언가에 중독되고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삶을 기어이 망치고 있는 사람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섣불리 조언하지 못한다. 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야 나는 타인이니까.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 마시지 말라고 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술 안 마셔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공허하고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지 않을까? 그렇다면 중독자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치료를 적극권장하고 싶다.

나는 틴더라는 어플이 전반적으로 특히 여성한테 유해하다고 생각하는데 (외국에선 안 써봐서 모르겠고 한국에선 그렇게 느꼈다) 그중에서도 취약한 게 정병녀라고 생각한다. 물론 틴더를 건강하게.. 건강하지 않더라도 자기 용도에 맞게 그럭저럭 잘 쓰고 있는 여성들도 있겠고, 틴더라는 어플이 악이라고 규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근데 정병녀들에게는 특히 유해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는 하고 싶다. 나한텐 그랬으니까. 특히나 울증과 불안증이 심한 여성들에게 틴더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틴더의 성격에 끌려 그곳에 밀집되어 있는 남성들은) 결코 좋지 않다. 약으로 치자면 비타민은 당연히 아니고, 먹었을 때 부작용이 없으면 다행인데 부작용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이다. 

물론 틴더에 있는 남자들이 다 이상한 건 당연히 아니다. 그냥 평범하고 일반적인 남자들이 틴더라는 어플을 이용할 뿐인 경우도 있다. 거기서 좋은 인연 만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잘 찾아보면, 그래, 보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보석 하나 찾자고 개뻘을 다 뒤지면서, 내 몸과 정신이 상해가는 걸 느끼면서 보석을 찾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나는 뒤늦게야 그걸 알았다. 누구한테 설득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그냥 어느 순간 내가 알아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노력하면, 마음을 열면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설령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 에너지를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쏟았으면 좋겠다. (정병녀들아, 듣고 있니?) 왜냐하면 한참 데이팅어플에 빠져 있을 땐 모르겠지만, 정말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게 데이트 상대나 연애 상대라고 느끼겠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니까. 실제로 원한다고 느낄 순 있는데 원한다고 느낀다고 해서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가 하면 그거는 생각해볼 문제다.

모든 정병녀들에게 당장 데이팅어플 삭제하라고 강요할 순 없겠지만 한 번은 만류하고 싶다. 내가 그 입장에 있어 봐서 아는데, 그게 얼마나 고약하고 힘든 일인지 아니까 멈추라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의 경제력이나 병증을 모르니 뭔가를 권하기도 조심스럽지만 약물 치료든 심리 치료든 치료가 시작이라는 것도 말하고 싶다. 그냥 병원에 가보고 정병이 아니라고 하면 다시 나오면 된다. 슬픈 상태로 계속 데이팅어플 하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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