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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 Aug 16. 2022

세상의 회피형들은 사랑을 어떻게 하고 사나

나는 회피형이다. 극강의 회피형이라 매일 회피형 테스트 하면 상위권에 있다. 전혀 자랑스럽지 않게 여기고 있고... 아마 회피형을 방어막으로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회피형이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내가 어렸을 때 자라온 양육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고, 첫 번째 연애 상대가 너무 구리기도 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고도의 가스라이팅을 했고 내가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해도 자기는 혼자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부정했다. 나는 많이 울었다.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무튼 그런 사람에게 크게 데이고 나니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지금 손 잡고 있는 이 사람이 언제 돌연 변할지 모르는 거니까. 갑자기 얼굴을 싹 바꿀 수 있으니까. 내 생각에 회피형의 맹점은 상대가 변하는 걸 두려워 자기 마음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블로그와 전문가들이 회피형의 특징으로 짚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이게 회피형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지옥 같다는 것이다.

밀당 같은 거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싶은데도 그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 그 기분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 울음을 참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회피형은 계속 그 관계를 견디고 있다. 관계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과정을 여행하듯이 매순간 즐기고 계획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이겠다. 근데 계속 견디는 느낌이 든다. 항해로 비유하자면 상대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여기고, 그 다음엔 여기를 갈 거야, 해도 남의 일인 것처럼 듣고 있다. 상대도 외롭겠지.

언젠가 유튜브인가에서 그런 말하는 걸 봤다. 전 연인과 지금 만나는 사람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말은 매우 일리가 있다. 그 사람과 이 사람은 다르고 이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니까 같은 상처를 줄 거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지만 머리를 점령하는 생각이 있다. 계속 제어를 거는 느낌. 전혀 그 관계에 몰입할 수가 없는 느낌. 

세상의 회피형들은 연애는 고사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 궁금하다. 회피형에게는 사랑이 더 어려울까, 연애가 더 어려울까? 회피형과는 절대 연애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위험구역'이라고 써붙여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고, 사람의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는 건 요즘 같이 인연이 쉽게 끊기기도 이어지기도 쉬운 세상에서 매우 귀한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다.

우선 나는 나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더 친해지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어떤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좋은 감정만 따라오진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나를 비롯한 회피형들이 자기가 가진 성향을 너무 미워하지만 않고 더 나아지기를 믿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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