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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14. 2024

오빠가 된 봄을 닮은 아이

첫째 봄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안녕하세요”라며 씩씩하게 인사하는 낯가림이 없는 아이다. 우리 집은 산자락 아래에 있는 작은 아파트 단지인데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요즘같이 아이가 귀한 시대에 어르신들의 눈길을 끄는 아이는 관심에 보답하듯 대답도 잘하고 잘 웃어준다. 그런 봄이에게 작고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 이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돌봐줘야 할 대상인가 보다. 꽤 그럴듯한 오빠노릇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둘째 겨울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봄이었다. 새 생명을 만나는 기쁨보다 봄이가 마음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과 우려가 더 컸던 것 같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겨울이에게 무척이나 미안하지만 먼저 태어난 녀석이 있는 걸 어쩌랴.


첫째로 태어나 18개월의 터울의 동생을 만났던 나는 어린 시절 늘 억울했다. 말 끝마다 ”네가 누나니까~“ ”동생을 잘 돌봐줘야 해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누나가 되기 싫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봄이에게는 ”첫째니까, 오빠니까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동생을 돌봐야 할 의무는 없다. 첫째도 아직은 어린아이니까.


겨울이를 집에 처음 데려온 날 봄이의 낯설고 혼란스러웠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봄이는 며칠 동안 작은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며 만져보기도 하고 밀어 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봄이는 겨울이가 제 동생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겨울이가 집에 오고 나서 며칠 뒤 놀이방에서 놀던 봄이가 아빠에게 안겨 엉엉 울고 있었다. 아빠에게 “울음을 멈춰주세요”라고 말하며 제가 왜 우는지도 몰랐던 이 작은 아이는 어느새 의젓한 오빠가 되었다.


겨울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봄이에게 “우리 아기”라고 불렀는데 겨울이가 태어난 후로는 더욱더 “우리 아기”라고 불러주었다. 겨울이가 태어날 즈음부터 봄이는 내게 “봄이도 아기야?”라고 자주 물었다. 직감적으로 동생이 생기면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봄이가 그렇게 물을 때마다 “그럼! 너도 아기지. 내 첫 번째 아기”라며 더 유난스럽게 아기 취급을 해준다. 봄이는 내심 좋아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야. 나 오빠야오빠“라며 으쓱해 댄다. 스스로 오빠라며 추켜세우는 표정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봄이는 제 말처럼 오빠노릇을 톡톡히 한다. 겨울이가 울면 엄마 아빠에게는 기다리라고 한 다음 제일 먼저 달려간다. 우리는 뒤에 숨어 봄이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 봄이는 “겨울아. 왜 울어? 맘마 먹고 싶어?”라고 겨울이에게 묻고는 숨넘어갈 듯 우리에게 달려온다. “엄마! 겨울이가 맘마 먹고 싶대요! 분유 타주세요!” 덕분에 겨울이는 조금 더 울지만 우리는 봄이에게 오빠노릇할 시간을 준다. 같이 분유를 타고 수유할 소파까지 배달하는 일은 늘 봄이의 몫이다. 젖병을 함께 잡고 먹여주다가 “이제 엄마가 먹여줘. 나 힘들어 “라며 오빠노릇이 힘들다는 투정도 한다. 그래도 늘 겨울이가 울면 제일 먼저 듣고 달려가는 든든한 오빠다.


겨울을 닮은 겨울이는 잠꾸러기다. 잠을 많이 자서 손이 덜 가는 편이다. 그래도 아기라서 자주 먹고 자주 안아줘야 하는데 겨울이를 오래 안아주는 날이면 어김없이 봄이의 투정이 시작된다. 봄이가 “웅애애애” 아기 같은 소리를 내며 말하기 시작하면 그게 신호다. 그럼 재빨리 겨울이를 내려놓고 봄이를 아기처럼 안아 ‘아기놀이’를 해준다. 봄이의 ‘아기놀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이고 우리 아기”하고 안아주면 “우유 줘 우유”라며 겨울이처럼 옆으로 눕혀 안은 채로 우유를 먹여준다. 빨대 꽂은 우유를 아기처럼 안고 먹여주면 안겨서 “꺼억”하며 트림하는 시늉도 한다. 트림을 하고 코 자는 척을 한 다음 “응애응애”하며 깨어난다.


이렇게 ‘아기놀이’를 두세 번 반복하다 보면 ”이제 오빠로 변신!”이라며 로봇이 변신하듯 ”촥촥촥-“ 시늉을 하고는 다시 오빠처럼 의젓해진다. 봄이가 엄마의 사랑을 충전하는 방식인데 스스로 개발해 낸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아기로 변신! 오빠로 변신! 하는 봄이는 아기도 되었다가 오빠도 되는 따뜻하고 싱그러운 봄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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