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해를 통틀어 미술시장이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코엑스에서 열렸던 화랑미술제가 KIAF를 방불케 하는 흥행을 거두었고, 며칠 전 케이옥션에서 진행했던 메이저 경매는 경매가 열린 3시간 만에 13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쾌재를 불렀다. 상장회사인 서울옥션은 얼마 전 신고가를 기록한 후 정점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주식가치가 오르고 있다.
지난 3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8,200만 원에 낙찰된 김창열 <물방울> 1호 작품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단순히 어떠한 목적으로든 미술품과 미술시장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림에 관심을 갖는 수요층은 지극히 한정적이었고, 정보를 접하는 채널들 역시 폐쇄적이었지만. 이제는 보다 다양해지고 개인화된 미디어 채널 등을 통해 미술시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미술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스타 작가와 컬렉터들의 움직임이 늘 화젯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앉아서도 주워듣게 되는 미술시장 이야기
하지만 뭔가 관심에 앞서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이쯤 되면 가만히 앉아서도 미술시장에 대해 주워듣는 것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듣는 이야기 만으로도 미술시장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SNS를 통해 전시스타그램을 올리는 지인들의 멋스러운 모습을 보면 뭔가 그런 문화생활에 깊은 조예를 갖고 싶다는 생각 혹은 명품가방 대신 집에 멋진 그림 한 점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비슷한 경향으로 묶일 수 있을지언정 미술작품은 모두 각자의 느낌과 개성, 가치가 있다. (케이옥션 전시장)
하지만 막연히 미술이 어렵다고 느껴지는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두 GD나 RM, 유아인 같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미술에 조금만 꾸준히 관심을 갖는다면 내가 주저하는 것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우연히 갖게 된 관심, 내 취향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는가?
얼마 전 우리 집에 다녀간 친동생이 우리 집에 걸린 그림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 새로 소파를 놓게 되었는데, 소파 위 벽면이 허전해서 뭔가 걸어두면 좋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을 보여주는 데 벽면이 제법 넓어서 작은 그림으로는 뭔가 포인트 하기 어렵겠다는 의견과 함께 사이즈가 제법 되는 작품이나 연작으로 걸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단 집에 걸어 놓지 않은 해외 전시 포스터 액자가 약간 큰 사이즈가 있어 그걸 실어 보내줬는데, 세로 사이즈다 보니 소파 중앙에 걸기에는 약간 어색한 느낌이었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가져온 기획 전시 포스터를 동생 집에 보냈다. (역시 세로 액자는 좁은 벽면이 어울리는 듯...)
며칠 후 동생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다름 아닌 그림 때문에...
동생 : 오빠! 아무래도 그림을 어떻게 구해보고 싶은데...
나 : 아... 이거 빠지면 한도 끝도 없는데...ㅎㅎㅎ 뭐 살펴본 게 있어?
동생 : 인스타에서 그림 렌탈하는 데가 광고가 뜨던데... 그런 건 어때?
나 : 여기 광고 본거 같은 데 맞지?
작품 렌탈이 가능한 오픈갤러리 홈페이지 (https://www.opengallery.co.kr/)
최근에 활발히 광고하는 업체 중 오픈갤러리라는 곳이 생각나 알려줬다. 다양한 그림을 판매도 하지만 렌탈 위주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장기 할부의 개념으로 그림이 마음에 들면 구매도 가능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취향을 찾거나 우리 집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고 싶다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이야기를 점심시간에 유선으로 나눴는데, 반나절 지나 또 동생한테 카톡이 날아왔다.
동생 : (링크) 오빠! 나 이 그림 괜찮아 보여서 렌탈해 보려고 하는데 어떤 거 같아?
오픈갤러리에서 동생이 보고 맘에 들어서 보낸 그림의 링크를 공유받아 열어봤다. 약간 칸딘스키 느낌의 추상 작품이었고, 사이즈가 있어 가격이 있었지만 갤러리에서 렌탈 프로모션을 하고 있어서 동생이 큰 부담을 가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나 : 부담 없어 보이는데... 일단 걸어두면서 보면 되지. 그리고 네가 좋으면 그 그림 사도 하나도 안 아까울 거야.
비단 동생뿐 아니라 어떤 그림을 사는 게 좋은지 혹은 맞는지에 대해 그림을 꽤나 오랫동안 좋아했던 입장에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동생처럼 어떤 그림이 막연히 마음에 들었는데 과연 괜찮은지에 확신이 부족했던 케이스이고, 내가 경험한 질문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취향에 앞서 그저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를 모르겠다며 정답을 알고 싶어 한다.
주저하지 마세요! 좋은 그림의 해답도 취향도 결국 내 안에...
사실 시장에서 유행하는 그림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경매시장에서 대체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애호가 입장에서 각자에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위 시장에서 잘 나가는 돈 되는 그림을 직관적으로 알아보면 그것도 큰 안목이라면 안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취향은 지극히 개인화된 속성인 만큼 판단의 기준은 지극히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즉, 내가 좋은 그림이 가장 가치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대신 그 마음이 스스로 정직하고 떳떳해야 한다.
그림은 공산품처럼 기능적인 장점이 거의 없는 재화라고 볼 수 있다. 오로지 심미적인 관점에 의존해 가치를 판단하게 되는데, 좋아 보여서 사게 되는 충동구매라 하더라도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왜 그림을 샀는지에 대한 동기가 분명하고 그 마음이 스스로 정직했다면 그림을 사고 나서 후회할 일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동생이 선택한 추상작품은 개인적으로 나와는 취향이 다른 작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이 꽤 심사숙고해서 찾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생에게 영감을 준 이 그림이 동생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내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적극 걸어보라고 권해줬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작가의 고유한 생각과 표현 그리고 노동의 시간까지 담긴 산물인 만큼,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작품이 없다. 다만 시장에서 특정 결과물만 높은 평가받는 것은 결국 우연한 유행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유행에 나의 취향을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다. 가격이 저렴해도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인지, 혹은 나와 어떤 깊은 감정을 나누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진짜 좋은 그림의 해답은 내 안에 있고 그것은 정직한 나의 취향에 귀 기울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결국 동생은 나 못지않게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아마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작품을 바로 렌탈 신청을 해 집에 작품을 걸어두었다고 연락이 왔다. 동생은 잘은 모르겠지만 집에 걸어두고 보니 인터넷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좋다며, 시간 내서 구경 오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해 동생 집에 가보진 못했지만 그림을 보며 같이 동생이 느낀 점을 듣고 나의 감흥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이왕이면 나 역시도 실제로 그 작품을 봤을 때 큰 감흥을 느껴, 동생이 스스로 선택한 취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전해주고 싶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