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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Apr 30. 2021

주저하는 예비 컬렉터를 위해(2) - 컬렉팅 시작하기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그림 다섯 번째 이야기

좋은 그림을 살 수 있는 기회는 흔히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 그림을 많이 보러 다니다 보면 마음을 이끄는 작품을 만날 수도 있지만, 막상 눈 앞에 끌리는 작품이 있어도 생필품과 같은 저관여 상품을 구매하는 게 아닌 만큼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림을 구매해 본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이러한 고민의 깊이와 시간은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처음 그림을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정말 힘들 수밖에 없다. 누구한테나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받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면 고민의 여지가 많이 줄겠지만 첫 컬렉션을 고가의 작품부터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작가와 작품의 인지도를 떠나 내가 사야 할 이유가 분명한 그림, 그리고 내가 큰 무리 없이 베팅할 수 있는 예산으로 첫 컬렉션을 시작해 단계를 차근히 밟아가는 것이 좋다.


이번 글은 성공적인 첫 컬렉션을 하는 방법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해 보려 한다. 대체로 당연한 얘기들이 많겠지만, 핵심은 결국 서두르지 않고 필요한 내공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내공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 확고한 취향과 안목을 정립하는 것, 그리고 (담력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미술 작품이라는 재화가 갖는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많이 돌아보며 시장가에 대해서도 익숙해지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미술관 마스터피스로 정직한 취향 발견하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내공을 키우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정은 역시 그림을 많이 보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시장 가치를 떠나 내 정직한 취향의 작품은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고 좋은 컬렉션이 될 수 있다. 많은 그림을 보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직한 취향이 생겨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유행이나 투자적 측면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취향을 객관화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유명 미술관에서 볼 법한 이름 있는 작가들의 상설 전시나 간간이 열리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기획 전시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가 유명하다고 흔히 아는 작가의 작품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하나의 경향으로 인정받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 취향의 기준점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 역시 그림을 모으며 공통분모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전시를 보러 다니며 깊은 인상을 주는 작품과 작가들을 통해 내 취향의 기준점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천경자 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개인적으로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취향을 알게 해 준 작가를 꼽을 때 주저하지 않고 천경자 화백을 이야기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천 화백의 유작이 기증되면서 미술관이 열린 날이면 언제든 2층 상설전시관에서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 천 화백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동안 수집했던 그림들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요즘도 시청역이나 정동길을 지나다 여유가 있으면 꼭 들러서 그 감흥을 충만히 채우고 있다. 내 취향의 확고한 기준점이라 할 수 있다.


장수지 作 <소녀,  2020>

실제로 이러한 취향을 갖고 있을 때, 내가 좋아할 만한 신진작가들의 그림도 어디선가 좀 더 쉽게 눈에 들어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작가 분들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팔로우해 전시 정보나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기회가 되면 작가의 작품을 시간을 내어 직접 보러 가기도 한다. 오랫동안 모니터링을 한 작가의 작품들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 취향의 기준점에서 집으로 들여올 높은 가능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예산 문제가 물론 그 가능성을 많이 낮추지만...)



저렴한 가격대에도 내 취향은 분명 존재한다.

시간이 걸려도 저렴한 원석 찾기부터 시작해보자!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저렴한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의 갤러리에서 취급되는 작품 가격에서 진입장벽을 크게 낮춘 대안적인 형태의 채널들이 온, 오프라인에서 크게 늘고 있고, 조금만 SNS를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이러한 판매 채널들을 만날 수도 있다.


타겟팅됐던 미술품 판매 채널 광고 <커먼옥션>, 신진작가의 작품들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

저렴한 그림 가운데 내 취향이나 좋은 그림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다만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않았거나 주목받지 않았을 뿐...  혹시나 그런 그림을 어딘가에서 발견했다면 신중히 고민하되 구매의 가능성은 크게 열어두자. 한 번에 가격 있는 그림을 사는 것보다 훨씬 리스크가 적으면서도 만족도가 높을 수 있어, 다음 컬렉션을 보다 과감히 키워나갈 수 있는 내공이 저절로 생긴다.



지금도 매일 같이 모니터링하는 '원석 찾기 추천 채널'

그럼 저렴한 원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좋은 원석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들을 몇 군데 소개한다.


1) 네이버 아트 윈도 - 신진 작가들의 그림이 가장 빨리 업데이트되는 곳


네이버 아트윈도, 많은 갤러리들이 참여하고 있어 한눈에 나에게 맞는 작품을 찾아보는데 유용하다.

다양한 채널이 있지만 역시 정보가 가장 많은 네이버 아트 윈도는 첫 컬렉션을 갖고자 하는 예비 컬렉터라면 반드시 모니터링해야 하는 채널이다. 신진작가의 작품을 취급하는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여기 모두 입점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가격대별, 작품 유형별로도 카테고리화 되어 있으니 내 조건에 맞는 작품을 찾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채널이다.



2) 대안형 갤러리 - 빈칸(bincan) / 합정지구 등

서울권에 있는 여러 오프라인 대안형 갤러리중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들이다. 대안형 갤러리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미술시장의 유통 생태나 형식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 잠재 소비자들이 미술을 조금 더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채널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빈칸(bincan) 합정, 각 전시장마다 특색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빈칸의 경우,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 전시장을 시작으로 현재는 을지로와 문래까지 전시 공간을 추가로 열었다. 갤러리가 주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느낌보다는 젊은 층에게 익숙하면서도 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 주기가 짧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등 계정을 팔로우해놓고 눈길이 가는 전시가 있으면 방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합정지구 - 합정역에서 망원역 방면으로 두 블록 정도 내려간 후 골목으로...


합정역에서 망원역 내려가는 대로변에서 골목을 살짝 들어가면 나오는 합정지구. 작은 공간이지만 미디어에서도 많이 소개된 대안형 갤러리이자 전시 공간이다. 갤러리 하면 느껴지는 차분함은 있지만 둘러보는데 큰 부담이 없는 느낌이다. 매월 독립 큐레이터의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들이 많이 열리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좋은 신진 작가들을 엄선해 보여주고 있다.


합정이나 망원에 올 일이 있다면 미리 예약을 하고(최근 예약제로 운영) 전시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작품을 구매하고 작가를 후원하는 회원제 크레딧 제도를 자체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정확히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자세히 알아보고 참여해 보고 싶다.



3) 소규모 아트페어

작년 말 경에 을지로에서 열린 을지 아트페어는 10만 원 미만의 작품들을 판매한다는 키 슬로건으로 아트페어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고, 미술품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제공한 바 있다. 이런 기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컬렉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아트페어 정보는 네이버 공연 전시 판과 SNS 채널 등을 자주 모니터링하면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다.

2020 을지아트페어 - 10만 원 아트페어라는 명확한 콘셉트로 작품을 구매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이미지 캡처 : https://www.euljiart2020


신진작가 위주의 아트페어 중 가장 알려진 행사로 매년 10-11월 경에 열리는 브리즈 아트페어가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오프라인은 잠깐 쉬어갔지만 매년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무이자 할부나 여러 결제 시스템의 편의를 제공해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 이들이 어떻게든 구매할 수 있도록 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오프라인으로 재개되면 꼭 한 번 가보길 추천한다.


4) 경매 회사 전시장?! 의외로 손에 닿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만큼 부담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지만 유명한 작품을 지나면 신진작가들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경매 회사 전시장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있고 최근에는 헤럴드 옥션 등 신생 업체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케이옥션 위클리 온라인 프리뷰 전시장

케이옥션의 경우, 위클리로 저렴한 작품들의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데 조금만 마음먹으면 손에 거머쥘 수 있는 작품들을 꽤 다양하게 만날 수 있으니 오프라인이 부담스럽다면 온라인 사이트를 먼저 들어가 작품들을 확인해 보고 오프라인으로 실제 작품을 만나보면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매 작품의 경우, 보통 작품마다 수수료 15%가 붙고, 내부 규정에 따라 가격대 별로 커미션이 몇 % 더 붙게 된다. 여기에 경매 입찰 수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기 때문에 입찰 참여에는 예산 범위 안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직한 취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공을 키우기 위한 열정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임할 때 좋은 경험들이 쌓이며 정직한 취향의 컬렉션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 역시 계속해서 취향에 충실한 컬렉션을 이어갈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해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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