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마안 May 28. 2021

한국 근현대 미술의 근간이 된 개화기 르네상스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전시 도록 두 번째 이야기

국내에서 가장 학술적인 고찰과 읽을거리가 많은 도록을 발간하는 곳 중 하나가 아마도 국립중앙박물관일 것이다. 국공립 미술관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시기마다 열리는 기획 전시는 확실히 남다른 스케일과 알찬 볼거리를 제공함은 물론, 학습적인 측면에서 무지함을 깨우고 유익한 정보와 관점을 전해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 때 우리나라의 아이덴티티를 잘 나타내 주는 아기자기한 굿즈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시를 보고 왔다면 알차게 방대한 전시 콘텐츠를 담은 전시 도록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종종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미난 테마가 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가는 편이고, 실제 집에도 그때 사서 온 도록들이 여러 권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관심을 가져봤으면 하는 전시 콘텐츠를 도록의 내용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몰랐던 개화기 르네상스 : <근대서화 - 봄 새벽을 깨우다> 展, 2019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근대서화 - 봄 새벽을 깨우다> 展. 19세기 말 굳게 닫혀있던 문호가 개방되고 동양과 서양, 전통과 모던함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경향을 모색하던 전환기 서화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였다.


이 전시는 특히 조선의 궁중 화가의 마지막 맥을 잇던 심전 안중식 선생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 전시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흔히 조선시대 한국화 하면 우리가 잘 아는 김홍도, 신윤복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전환기 시대에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고 전통과 근대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한국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이후 근현대 대표 동서양 화가들의 화풍과 정신에 많은 정신을 미쳤다.



전시에 대한 감흥과 더불어 무지함을 반성하며 사게 된 도록

전시 당시 촬영한 전시장 외부 벽면

전시를 본 사람들이라면  한국사나 미술사에서 이런 문화적 경향이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던 점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개인적으로는 큰 임팩트를 주었던 전시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 전시를 보고 난 후 도록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시의 감흥과 가치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현재 마스터피스로 남아있는 대한민국 초기 한국 미술의 뿌리가 되는 18-19세기 작품들에 대한 무지함의 반성에서 비롯됐다.


심전 안중식 作 <화조영모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당시 동시대를 주도하던 서양의 인상주의 같은 화풍에 오히려 익숙한 느낌인데 반해, 전통적인 한국화에서 점차 서양화의 화풍이 접목되는 한국 미술의 전환기 역사는 가위로 오려진 것처럼 무언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이 공백기에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시도와 발전을 꾀했는지 이 전시 도록에 수록된 작품들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문호 개방과 함께 펼쳐진 한국 미술의 새로운 줄기

19세기 말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며 혼돈의 시기를 겪던 한반도에서 전통 한국 서화의 화풍은 다양한 컨버전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문호 개방에 앞서 서양 사회와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했던 중국과 일본의 경우, 역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자산들을 해외에 널리 수출하며 발전을 이룩했고, 조선 역시 뒤늦게 문호를 열며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문화적 영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개화기 지식인들은 국경을 건너 유학을 떠나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이것이 그동안의 한국적인 것들과 접목되며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입구 복도는 관람 시작과 동시에 시공간을 넘는 듯한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전시장에 들어와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그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담백한 수묵화에 다채로운 채색이 더해지고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원근법이 시도되는 등 그동안 고수해왔던 전통적인 화풍에 다채로운 시도가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접목된 느낌이 들었다. 전통을 고집하지 않고 변해가는 시대에 맞춰 옛 것을 계승 발전하고자 했던 개화기 지식인들의 열린 생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청록산수의 백미를 보여주는 황철, 지운영  作 <산수도>, 황철의 유작으로 사후 2년 뒤 서울에서 지운영이 완성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에는 이 전시의 모토가 된 심전 안중식 선생이 중심에 서 있었다. 심전 선생은 20살에 중국과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당시 중국화와 일본화의 요소들을 서화에 접목시키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국화의 정체성을 고수하면서도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도록의 서두에 소개된 심전 안중식 선생의 초상사진과 1919년 매일신보에 게재된 안중식 선생의 부고 기사 소개글

심전 선생의 화풍은 당시 유명 근대 서화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화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작품을 했던 김환기 등 유명 화가들에게도 영감을 제공했다.



새로운 것을 익힌 제자를 칭송하며 - 양양화관(洋洋畵館)에서 느껴지는 웅장한 의미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이 전시를 통틀어 인상 깊었던 것은 심전 선생의 작품과 더불어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던 점.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도록에 담긴 많은 내용들을 살펴봐야 정확한 개념을 떠올릴 수 있는데, 선명히 기억나는 하나를 꼽자면 심전 선생이 직접 쓴 양양화관(洋洋畵館)이라는 글씨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시에서는 말 그대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모두 아우른다는 이념이자, 자신은 수용하지 못했지만 서양화를 배워온 제자를 존중하고 칭송하는 스승의 애정 어린 마음을 담은 글로 소개하고 있다.


심전 선생은 제자들이 자신이 일궈온 일종의 테크닉과 경험을 답습하기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던 신념을 이해시켜, 극단적인 사대주의 혹은 국수주의에도 치우치지 않는 건강한 정체성 가운데 새로운 것들을 잘 수용하며 우리 만의 것으로 발전시키길 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한동안 유행했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슬로건에서 일종의 괴리감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물론 한국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문화의 자산들이 어쩌면 가까운 동아시아에서도 구분되는 독창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그 가치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우리만 외치는 슬로건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K-____'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의 주목받았던 많은 문화 콘텐츠나 자산 속에는 심전 선생이 전했던 양양화관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더 거슬러 올라가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이나 이영희 혹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등 K-컬처의 시초가 됐던 인물들을 생각하면 이 양양화관의 정신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세계적인 한국적인 것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정체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바로 이 짧고 간결한 글씨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돌아온다,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면...

전시 도록은 가끔 내가 가볍게 지나쳤던 전시 요소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함이 있다. 전시를 나 혼자서 즐길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전시를 보고 나와 도록을 보면서 도록의 표지에 있는 심전 선생의 <백악춘효도>가 메인으로 실려 있어 이 상징성에 대해 집에 돌아와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진작에 이 그림을 알고 유심히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심전 안중식 作 <백악춘효도> (1915), KBS 천상의 컬렉션 캡처

우리 눈에도 익숙한 광화문과 경복궁을 뒤로 웅장한 느낌의 백악산(현재의 북악산)이 병풍처럼 배경을 이루는 작품이다. 1915년, 당시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조선총독부가 <시정 5년 물산 공진회>라는 행사를 통해 경복궁의 많은 전각을 헐어내고 신식 건물을 건립, 일제의 조선 통치 이후 조선의 발전했음을 알리는 만행을 저질렀던 그 해에 그려졌다.


조선 정궁의 상징인 경복궁이 일제의 손에 훼손되는 것을 보며, 고종의 어진까지 손수 그렸던 조선의 마지막 궁중화가이기도 했던 심전 선생은 웅장하고 위엄 있던 경복궁의 모습을 기억과 사진에 근거해 계절별로 경복궁과 북악산의 풍경을 그렸다.



여름과 가을의 풍경을 그리면서 백악춘묘(白岳春曉)라는 작품명이 붙은 것은 망국의 현실 속에서 사라져 가는 궁궐의 지위와 위상을 복원하고 새로운 조선의 봄날을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경복궁을 가로막은 채 해방 이후에도 수십 년 간 어색한 동거를 이어갔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허물어지고 다시 광화문이 복원되었을 때, 하늘에서 흐뭇해했을 심전 선생의 마음을 같은 마음으로 헤아려 본다. (뭔가 후련한 느낌으로 이따금씩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습관적으로 찾아보기도 한다.)




전시의 키 비주얼이자 도록의 커버 이미지인 백악춘묘도 그리고 양양화관의 정신이 깃든 근대서화 작품들을 돌아보며, 혼돈과 암흑의 시대에서도 봄처럼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는 지식인들의 마음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무지했던 한국적인 것들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갖고 바르게 알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다음 화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