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몸, 유연한 마음
찢었다!
은은한 멜로디가 흐르는 발레 연습실. 매주 금요일 저녁, 일주일 내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내가 가장 유연해지는 시간이다.
발레 수업은 언제나 스트레칭부터 함께 한다. 그렇다, 발레란 인간의 신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춤이다. 토슈즈를 선고 섰을 때는 직선으로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하고, 다리를 들어 올릴 때는 몸이 반으로 접힐 듯한 유연함을 요구한다. 물론 내가 다니는 학원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반이지만 그렇다고 수업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몸풀기는 필수다. 스트레칭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다리 찢기다. 매주 아픔을 참고 조금이라도 내려가려 하는데 어느 날, 아무도 밀어주지 않았지만 다리가 쫘악 벌어졌다.
'언젠가 발레리나처럼 유연하게 다리 찢기를 성공하리라'
발레 1개월 차에 첫 번째 목표로 삼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먹고 일 년이 지난 7월, 한여름에 목표를 이뤘다.
'아니, 발레에 멋지고 아름다운 동작이 얼마나 많은데, 다리 찢기가 목표라니?'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 기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집에 가는 동안 마음속으로 조용히 신이 났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시도해 보고, 실제로 그것을 해냈을 때 내면에서는 폭죽이 터지듯 작은 파티가 일어난다. 게임을 하듯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무도 시키지 않은 셀프 도전을 해 왔던 셈이다. '언젠간 하다 보면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게 진짜 된다니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한 주 뒤, 발레 수업이 돌아왔다. 음악과 함께 스트레칭이 시작되고 차분하게 동작을 이어가는데 마음속으로 다시 다리 찢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긴장이 되었다.
"자, 이제 잠시 동안은 내 몸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어느 지점부터 더 이상 허리가 숙여지지 않고 근육이 긴장되는 게 느껴진다. 여기까지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내 몸의 한계인데,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바로 '호흡'이다. 숨을 후- 하고 내뱉으면 근육이 이완되어 다리가 조금씩 옆으로 벌어진다.
스트레칭의 포인트는 '이완'이다. 아프다고 힘을 주면 더 뻣뻣해진다. 중요한 건 호흡과 함께 몸에 힘을 빼는 것이다. 다만, 찌릿한 고통은 고스란히 전해지므로, 선생님 말씀처럼 그냥 잠시 내 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몸을 움직이며 배우는 것은, 생각이 너무 많으면 실행이 어렵다는 거다. 저 동작을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계산하기보다 일단 해 봐야 실력이 는다. 안 되는 동작은 반복하고, 반복하고, 될 때까지 하는 게 전부이다. 그래서 매 수업마다 같은 동작의 스트레칭을 하고, 같은 동작의 바(Bar) 운동을 한다. 내가 할 일은 '숨 한번 크게 쉬고 그냥 하기'일뿐이다.
조금씩 유연해지는 몸을 보며 자신감이 붙는다. 이제는 이것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에도 '차차 연습하면 되겠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몸이 유연해질수록 마음도 유연하게 흐른다.
발레는 꽤나 허들이 높은 활동이다. 수업 초반에만 해도 알아듣지 못할 불어에,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동작 때문에 도통 속도가 붙지 않는 느낌이었달까. 나름 춤을 좋아하고 몸을 쓸 줄 아는 편이라 자신했는데 언제쯤 되어야 춤다운 춤을 출수 있을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까마득하다. 다만 성장 속도가 더디긴 하더라도 어느 순간 목표지점에 다다를 순간은 온다는 기대감은 있다.
작은 성취가 주는 자신감, 그것은 차곡차곡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매일은 어렵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해 운동복을 입을 것. 그렇게 천천히 쌓아 올린 시간들이 있어 조금씩 변화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