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라이프웨어 매거진 리뷰
팬데믹이 장기화될수록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갖고 있던 것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 마을의 공동체 안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았듯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던 전통으로 회귀하려 한다. 그 가운데 내 곁의 이웃이 있고, 우리 동네가 있다.
유니클로의 라이프웨어 매거진 2021 F/W 다섯 번째 이슈, <Neighborhood Living>는 이웃과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의 멋진 단면을 순간적으로 박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법한 다정한 이웃의 일상을 유기적으로 변주한다. 그 중심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사람이 있다.
Story. 1. Barbican Neighbors_런던 바비칸 이스테이트에서 만난 사람들
바비칸 이스테이트는 2,000세대의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 단지다.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런던 북부 지역을 재건한 공간이다. 문화와 예술,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안에는 친밀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다. 이웃으로부터 피아노를 구입하고 자원봉사로 공동체 소속감을 다진다. 어느 노부부는 집집마다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영화를 즐기듯 들여다본다. 바비칸 사람들은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사유 공간에서 은밀한 일상 또한 온전히 즐긴다. 주택단지에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로마시대 고대 유적인 ‘런던 월’을 사색을 즐기고 도시의 소음과 자연의 소리가 혼재된 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Story. 2. Hello Johathan_조나단 앤더슨과의 인터뷰
유니클로 마니아들에게 친숙한 이름, 조나단 앤더슨. 2017년부터 유니클로와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영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이다. 그는 디자인에 '영국스러움' (Britishness) 을 담는다. 북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란 토대를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전통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미래 가치와 접목하고자 한다. 런던 소호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앤더슨은 인접한 카페 메종 베르토(Maison Bertaux)에 종종 들러 커피와 디저트를 즐긴다. 1871년에 문을 연 메종 베르토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카페테라스에 앉은 앤더슨에게 가게 주인이 말을 건넨다. “잘 지내죠?” 무심한 듯 건네는 짧은 인사는 앤더슨에게 그 어떤 말보다 따스하게 다가온다. 올 겨울 출시 예정인 UNIQLO & JW ANDERSON 컬렉션에서 선보일 메시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로와 위안을 담아 몸을 편안하게 감싸도록, 쉼의 분위기를 구현하고 싶다고.
Story. 3 Interview with Herzog & De Meuron _ 헤르조그 & 드 뫼롱이 말하는 이웃의 의미
현대 건축의 거장 헤르조그와 드 뫼롱 (Herzog & De Meuron)은 바젤을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스위스 북서부의 소도시 바젤은 중세부터 학술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도시의 비옥한 토양이 그들을 성장시킨 것은 틀림없지만, 헤르조그와 뫼롱은 지역사회에 애착을 갖고 이웃과 소통하며 몸소 바젤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바젤은 그들의 일상이자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1925년 문을 연 폭스 하우스 바젤 (Volkshaus Basel) 개축 프로젝트, 19세기 지어진 스타트 카지노 바젤(Stadtcasino Basel) 증축 작업은 헤르조그와 뫼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기존의 소재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며, 도시의 공간성과 지역색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다”라는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전통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
얼마전 나의 오랜 이웃이 이사를 떠났다. 백 살을 바라보는 한옥에서 평생 삶을 가꾼 노부부였다. 지난겨울, 바깥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할머니는 봄이 오기 전 터전을 정리했다. 이삿날 아침, 할머니가 대문을 두드렸다. 담벼락을 서로 맞댄 집에서 한 평생을 잘 살았으니, 우리도 잘 지내길 바란다고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무책임한 기약도, 주고받은 선물도 없었다. 말 한마디가 전부였지만 마음 속엔 고요한 울림이 퍼졌다. 한 세대가 저무는 뒤안길에서 남겨진 이웃에게 위대한 유산을 대물림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