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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y 30. 2020

작년에 왔던 머위대가 또 왔다.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 올 예정.

이맘때가 머위 철인지 마트나 길을 지나다 보면 머위대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작년에도 이맘때 집에 머위대가 한가득 들어왔었는데.’ 하며 나는 그냥 지나치곤 했다. 아니 그랬는데. 난 분명…


창과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도 무시하고 늦잠을 자야 하는 주말 아침. 이건 바로 안 나가면 안 되겠다 싶은 엄마의 날 선 외침에 나갔더니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게 거실 바닥에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때 직감했다. 돌아왔구나. 머위대….

그리고 ‘군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엄마는 길쭉한 머위대를 반으로 자르고 팔팔 끓여둔 물에 약 30초 정도 데친 후에 바로 찬물에 헹궜고, 자른 머위대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스테인리스 볼에 데친 머위대를 담고 찰랑거릴 정도의 물도 담았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볼은 내 앞에 두었고 그 옆으로 껍질을 버릴 볼과 벗겨낸 머위대를 담을 볼도 나란히 줄을 세웠다.


나 또한 군말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소싯적 고구마 순을 좀 벗겨본 실력으로 허리와 목이 박살 나는 자세로 앉은 후에. 물에 좀 불은 머위대 껍질을 하나씩 벗겨냈다. 반이나 줄었을까? 하고 보면 반도 안 줄었고 기지개를 필 때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올바른 자세를 하면 뭐하나 바로 구부정한 자세인걸.


엄마가 이래서 허리가 굽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니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손톱 사이엔 셀프 검정 프렌치 네일과 목욕탕에서 신나게 놀고 나온 어린이처럼 손끝은 쭈글쭈글해졌다.


“다했어!!!!!” 라고 외쳤더니 엄마는 손질한 머위대를 또 반으로 길게 자른 후 물이 담긴 깊이가 있는 팬에 색을 내기 위한 채를 썬 당근과 함께 넣었다.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적당량의 들깻가루를 넣어 준 뒤 팔팔 끓이면서 조리니까 엄마표 들깨 머위 볶음? 이 완성되었다.

들어간 게 들깻가루밖에 없는데 이상하게 맛있다? 입안에 퍼지는 들깨의 고소함과 약간의 짭짤한 맛. 소금도 들어갔나? 부드럽지만 씹히는 식감이 살아있는 머위대. 숙주나물 같기도 하고 그냥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갔다.

"밥반찬으로 진짜 제격이네." 하면서 밥은 안 먹고 머위만 먹고 있는 나와 그걸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엄마.


작년에도 이랬던 거 같은데. 어떻게 제철에만 하는 음식인데. 맛이 그대로일까? 나도 나중에 엄마처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맘대로.


아마 내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또 머위 대를 손질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엄마와 티격태격하며 보낸 시간을 기억하며 엄마처럼 하고 있지 않을까? 맛은 장담 못 하지만 말이다.


아, 일부는 건조기에 살짝 말렸는데. 말린 후에 볶은 머위대도 색다른 식감을 선사해서 입안이 즐겁다. 꼬득꼬득 해야하다고나 할까? 부드러운 식감보단 씹히는 식감이 더 살아있어서 입안에서 머위대와 들깨의 향이 오래오래 머물다가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진다. 물론 그때 한 젓가락 더 넣어두면 완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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